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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May 29. 2024

모기-우리의 여름은 전쟁터였다

여름의 한 쌍 ① 수박과 모기 : 가장 좋아하는 것과 가장 혐오하는 것

그들의 공격은 이 집에 이사 온 2021년에 시작되었다. 


봄을 앞둔 때에 이사를 온 우리 가족은 거실 통창으로 멀리 산이 보이고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이 집을 완벽한 낙원이라 여겼다. 어두워질 때까지 거실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아이들 숙제를 하고 TV를 보고 보드게임을 하고, 밤이 찾아오면 각자 씻고 안방으로 모였다. 


퀸 침대 옆으로 이불을 널찍하게 깔고 성인 한 명과 아이 한 명은 침대에, 나머지 두 명은 바닥 이불에서 잠을 잤다. 침대에서 자는 사람과 같이 자는 짝은 매일 돌아가면서 바뀌었다. 잠이 들 때까지 우리는 못 다한 이야기를 보따리 풀었고 누군가 한 명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목소리를 낮추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봄은 따뜻했지만 밤기운은 찼고 안방과 안방 베란다 사이 중문은 자기 전에 닫히고 아침에야 열렸다.

낙원의 침입자, 넌 누구냐

따뜻했던 봄에 여름이 야금야금 발을 들였다. 한 방에서 네 사람이 뿜어내는 열은 봄에는 온기였지만 점차 열기가 되어갔다. 우리의 밤 게임 중 하나는 네 사람 중 누가 안방과 베란다 사이 중문을 열고 닫는가였다. 처음에 열었다가 새벽이 되면 한기가 들어서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자기 전에 닫는 게 맞았다. 물론 승부와 관계없이 내가 보통 닫는 사람이었다.


더위가 베란다에서 안방까지 점령하자 이번엔 게임의 내용이 바뀌었다. 네 명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 놀이를 하는 동안 중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었다. 방은 작은데 에어컨 세기가 세서 우리는 보통 한 시간 동작 타이머를 설정했다. 에어컨이 꺼지면 중문을 열고 시원해진 바깥바람이 베란다 창을 통과해 중문을 거쳐 방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문제는 에어컨은 자동으로 멈추지만 창문과 중문은 알아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그날의 문 닫기 담당자가 필요했다. 열심히 게임을 해서 담당자가 가려졌고, 담당자가 에어컨 한기에 이불을 덮고 기분 좋게 잠이 들면 내가 일어나 창문과 중문을 열었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 네 명의 끈끈함은 괜찮았다. 침입자가 침입자들이 되기까지는 말이다.


바깥으로 통하는 베란다 창문과 안방으로 통하는 중문을 모두 열고 나의 자리로 돌아가 누운 어느 날이었다. 

“잉~~~, 이잉~~~, 엥~~~”

불길하고 낯선, 하지만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는 아주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낮은 소리였다.


보통 그것은 내 귓가에 맴돌기 마련이었다. 내 몸 구석구석을 냄새 맡으며 주둥이 침을 꽂을 적절한 장소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그것은 내 주위를 맴돌며 소리를 낼 터였다. 그런데 그날의 소리는 내 주위가 아니었다. 가까이 올 듯하다가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았다. 뭐지? 


나는 핸드폰을 찾아 들고 손전등 앱을 눌렀다. 갑작스러운 빛에 옆에서 자던 둘째가 눈을 움찔하더니 빛이 없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엥~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봉이의 팔에 내려앉는 모습을 목격했다. 동그란 어깨선 아래로 흘러내린 포동한 팔뚝 위에 말이다.


아!

나는 너무 그 녀석이 괘씸했다. 아니, 저것이 우리 귀한 아들을 공격하다니. 봉이가 어제저녁 허벅지를 긁어대더니 그게 바로 네 녀석 짓이었더냐? 이런 맹랑한….


퍽!

내 치밀어오르는 부아와 달리 그것을 내리치는 내 손의 위력은 매섭지 못했다. 그것을 내리치다가 아이를 때리게 할 수 있기에 내 무의식이 손의 힘을 조종했다. 대신 나는 사냥에 실패해 다음 착지점을 찾는 그것의 꽁무니를 계속 쫓았다. 새벽은 그렇게 싸움터에서 아침의 태양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나의 새벽을 빼앗은 자들이여, 기다려라

나는 그날 아침 반송장이 되어 일어났다. 아이들을 겨우 학교에 보낸 뒤 어제의 싸움터 침대에 픽 쓰러져 아침잠을 잤다. 자다가 눈을 뜨니 천장에 시커먼 점이 하나 보였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점프를 해서 벽에 손바닥을 댔다. “아얏!” 그것은 벽지에 묻은 오물이었다. 왜 오늘따라 그것이 눈에 들어왔던 걸까. 나는 쓰러지는 대신 일어나 약국으로 향했다.


뿌리는 살충제, 꽂아서 쓰는 매트형 살충제를 샀다. 마트에 가서 파리채도 하나 샀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손에 닿아서 다칠 수가 있기에 전기 파리채 대신 그냥 파리채로 샀다. 오늘부터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그날 저녁 잠자기 한 시간 정도 전에 안방에 들어가 전기 살충제를 꽂고 살충제를 뿌려두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에어컨을 한 시간 틀고 난 뒤 창문과 중문을 열었다. 다시 고요한 밤이 되었다.


아니, 고요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다시 소리를 내서 움직였다. 살충제는 그들에게 방향제 정도 같았다. 나의 핸드폰 손전등과 파리채가 새벽 내내 방 안을 날아다녔다. 나는 다시 아침에 쓰러졌다.


2021년 여름은 그렇게 내게 하루도 거르지 않는 새벽의 전투장이었다. 큰아이는 결국 자기 방에서 자겠다고 하며 안방의 끈끈함을 버렸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독립을 했다. 둘째는 끝까지 엄마와의 동거를 놓지 않았고, 둘째를 지키겠다는 생각에 내가 둘째를 데리고 둘째 방으로 피신을 했다. 안방엔 남편 혼자 남았다. 




2022년 여름. 

지난해의 긴 싸움을 기억하는 나의 뇌세포는 여름을 극도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여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내 수면을 앗아간 자리에 내 아이들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싹텄고, 남편은 나의 싸움에 한 번도 동참하지 않았다는 배신감마저 남겼다. 만신창이가 되었던 작년의 여름이 올해 다시 일어난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를 다했다. 그것들은 모기장이 아니라 배수구에서 올라올 수 있다는 얘기에 안방 화장실은 물론 베란다 배수구에 락스를 뿌렸다. 안방에 인구가 많아서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라면 부대원들을 분산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큰아이는 원래대로 자신의 방에서 자고, 둘째와 나는 둘째의 침대 매트리스를 거실로 옮겨 함께 잤다. 남편 혼자 안방에서 잤다. 작년처럼 떼로 올려오지는 않았지만 내가 새벽에 일어나 사투를 벌이는 횟수도 절대적 시간도 많이 줄었다.


2023년 여름.

나는 전기 파리채를 구입했다. 둘째가 권했다. 

“엄마, 내가 이런 거 만지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이제.”

이렇게 말하며 다이소에서 파리채를 고르던 아이가 어찌나 미덥던지.


둘째마저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자게 되자 나는 남편이 있는 안방으로 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안방에서 자는 일이 다시 공포로 다가왔다. 자기 전에 가까이에 전기 파리채와 일반 파리채와 핸드폰을 두었다. 


에어컨을 끄고 중문을 열었다. 더워서 중문도 창문도 활짝 열었다. 

소리가 났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을 들고 손전등 앱을 켰다. 방 안을 돌았다. 벽에, 천장에, 옷장에, 침대 옆에, 남편 등에 붙은 그것들을 한 마리씩 해치웠다. 

한 시간 눈을 붙였다. 다시 소리가 났다. 몸을 일으켜 새로운 녀석들과의 싸움을 반복했다. 

새벽 동안 두어 번의 싸움을 치르면 아침이 왔다.

끝까지 쫓아가 복수를 하겠다

남편은 가뿐한 얼굴로 출근을 했고 나는 남편의 도움을 포기했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나만의 외로운 싸움이라는 것을.


2024년 5월.

이렇게 갑자기 그것의 침입이 있을 거라 생각을 못 했다. 아직 밤공기는 싸늘했으니까.


그날은 남편이 출장을 가고 유난히 더웠던 날이었다. 

나는 혼자 안방에서 잠을 청했다. 공기가 답답했다. 일어나 중문을 열고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침대에 누우니 한가하게 불어오는 공기가 기분을 좋게 했다. 이거지.


살포시 잠이 들려던 찰나, 이잉~ 익숙한 소리가 났다.

나는 번개처럼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손전등 앱을 켰다. 순간 먼지처럼 날아가는 그것이 보였다. 전기 파리채도 그냥 파리채도 아무 무기가 없던 나에게 유일한 무기는 손바닥이었다. 


퍽! 

소리가 났다. 떨어진 시체는 없었다.

뭐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날아다니는 그것은 없었다. 

하, 이런.

나는 일어나 전기 파리채를 가져다가 내 옆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세수를 하는데 팔에 물린 자국을 발견했다. 

드디어 시작이군.  

나는 하루 동안 준비태세를 갖추었다. 


저녁이 되었다. 

문득 창문을 닫고 안방을 외부와 밀폐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창문을 닫고 중문을 닫았다. 커튼까지 쳐서 안방과 베란다 사이를 시야로도 차단했다. 안방 불을 끄고 잠이 들 때까지 어둡게 두었다. 

아이들과 잘 자라 인사를 나누고 안방으로 들어와 창문과 중문을 단속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너무도 개운한 상태로 잠에서 깼다.

그것들의 공격은 없었다. 나의 방어는 성공했다.




사실 작년 여름, 우리 집에 왜 모기가 많은지, 한 해만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왜 그렇게 많은지 너무도 궁금했던 나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제목이 ‘모기’였다. 


모기 암컷은 종족 번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활동이 활발한 그들은 단순히 냄새만 맡는 게 아니었다. 후각은 물론 청각과 시각까지 사용해서 흡혈의 가능성을 찾는다고 한다. 심지어 아무리 구멍이 작더라도 그것을 통과하도록 몸을 작게 만들어 기어이 흡혈의 진원지로 향한다고 한다. 소리도 매우 잘 듣고 형태 구분도 훌륭하게 해낸다고 하니, 내가 안방 베란다 창문을 열고 중문을 열어 불빛을 새어 나가게 했던 것은 모기를 유인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같은 엄마로서 너의 처지를 이해한다만 나에게도 자식이 있느니라

첫해에는 네 명의 건강한 사람이 있었고 신선한 피를 제공하는 아이가 두 명이나 있었다. 그것들은 열린 창문을 통해(혹은 베란다 배수구를 통해) 냄새를 맡고 그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오래된 방충망은 구멍이 성성하니 충분히 부비며 그곳을 통과했을 것이고,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빛이 꺼지면 어둠 속에서 아이들에게 향했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자는 표적들의 온몸을 구석구석 훑으며 주둥이를 꽂았을 것이다. 뚱뚱해진 그들 다음으로 홀쭉한 암컷들이 새로이 집 안에 찾아들었을 것이다.


나는 왜 이제서야 창문을 닫을 생각을 했을까. 모기가 들어올 가능성이 가장 짙은 창문으로부터 내 몸을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껏 왜 못 했을까. 작년에 그렇게 책을 읽고도 그 이론을 실제에 적용할 생각을 일 년이 넘어서야 했을까.


하하하.

잘 자고 일어난 다음 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니. 그냥 문을 닫고 불을 켜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니.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리라.


올해는 제발 이 방법이 무사히 통과하기를 바란다.

오늘 아침, 나는 구멍이 꽤 크게 벌어진 모기장 부분들에 꼼꼼하게 보수 테이프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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