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만드는 기대 수준

급의 언어, 결의 언어

by 허재영

“내일은 아빠가 회사 안가고 도아랑 놀을까?”

“티니핑도 보고, 키즈카페도 가고, 초코케익도 먹고, 다 할꺼야?!”

“내일은 일단! 롯데몰에 있는 큰 키즈카페만 가고 티니핑은 안추울 때 가자”

“내일은 추우니까?! 좋아!”


아이는 평일에 놀러 가자고 하면 아침, 점심, 저녁, 체력이 몽땅 사라질 때까지 노는 하루를 기대한다. 물론 그렇게 놀아본 날들도 많다. 하지만 반나절만 함께할 생각이라면, 나는 내일의 계획을 정확하게 말해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기 때문이다.


키즈카페를 이야기 할 때도 늘 구분해서 말해왔다. 롯데몰에 있는 큰 키즈카페, 집 앞에 있는 작은 키즈카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실내 놀이터. 당연히 아이는 ‘롯데몰에 있는 큰 키즈카페’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해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 작은 키즈카페나 실내놀이터로 향해야 하는 날들도 있다.


이럴 땐 반드시 이유가 필요하다. “오늘은 점심이 늦었으니까”, “오늘은 늦게 일어났으니까”.

이유를 함께 설명하면 작은 키즈카페나 아파트 실내 놀이터라는 선택도 아이에게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하루가 된다.


아이의 기대 수준을 미리 맞춰주는 일.

이건 내가 아이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자, 아이의 기대 수준을 관리하기 위한 소소한 노력이다.


브랜드와 제품 명칭


브랜드를 운영하는 체계를 설계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차원의 뼈대를 함께 잡아야 한다. 하나는 브랜드 차원의 운영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브랜드 뒤에 따라붙는 제품 명칭 차원의 체계다. 이 둘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서로의 빈틈을 보완하며, 소비자가 브랜드를 ‘이해하는 방식’을 완성한다.



삼성의 갤럭시는 ‘Z’ 시리즈를 통해 경쟁 대비 열위하다고 인식되던 혁신성을 보완해 왔다. 동시에 ‘Z’는 폴더블 폰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소비자에게 학습시키는 제품 명칭 차원의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모바일 생태계 전반에 대한 리더십은 ‘갤럭시’로 유지하면서, ‘Z’ 시리즈를 통해 새로움을 축적해온 성공적인 브랜드 운영 사례다. 이제 '갤럭시 Z'는 트라이폴드까지 확장되며 혁신성을 이어가고 있다.


명칭의 기대 수준


현대카드는 프리미엄 카드 시리즈를 컬러로 구분해왔다. The Black, The Purple, The Red, The Green 등 컬러에 따라 소비자는 연회비와 서비스, 혜택에 대한 기대 수준을 다르게 형성한다. 컬러 시리즈는 프리미엄 영역에서만 전개된다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있기에, 기대 수준 역시 안정적으로 관리된다.

이는 현대카드만의 방식은 아니다. 조니워커의 블랙·골드 라벨, 아멕스의 블랙·골드 카드, 세븐일레븐 PB 브랜드 Seven&i의 Gold 라인까지. 소비자들은 이미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컬러가 ‘급’을 구분하는 언어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학습해왔다.



얼마 전, 신라면 Gold의 출시 소식이 들렸다. 이미 신라면 Black이라는 프리미엄 라인이 존재하기에, Gold는 Black보다 더 높은 최상위 그레이드인지, 아니면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라인인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라면이라는 카테고리가 과연 프리미엄의 ‘급’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는 영역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느낀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신라면 Gold는 기존 신라면의 급을 높인 제품이 아니라, 육수의 베이스 자체가 달라진 제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Gold’라는 명칭이 주는 기대는 대다수 소비자에게 ‘더 높은 등급의 신라면’일 가능성이 크다. 즉, 제품의 실체를 보자면 ‘결이 다른 신라면’인데 제품의 명칭은 ‘급이 높은 신라면’을 약속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 기대와 어긋난 명칭 설계의 문제다.


추가적으로, 신라면에는 The Red가 있다. 공교롭게도 현대카드의 프리미엄 라인과 같은 제품 명칭인데, 신라면의 더레드는 더 매운 맛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신라면의 'Black'은 프리미엄을, 'Red'는 매운맛을, 'Gold'는 닭육수 베이스를 전달한다. 동일한 컬러 시리즈 안에서 ‘급’, ‘맛의 강도’, ‘베이스’라는 서로 다른 기준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컬러 명칭을 사용하는 데 있어 일관된 원칙이 부재해 보이는 이유다.


급의 언어, 결의 언어


'급'을 달리하고 싶은 제품 라인에는 '급'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반대로 '결'을 달리하고 싶은 제품이라면 '결'의 언어가 붙어줘야 한다. 급을 말하는 언어로 결을 설명하는 순간, 브랜드는 오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리고 오해는 언제나 해명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비효율을 만든다.


우리의 새로운 제품은 무엇을 달리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차이를 이름이 정확히 말해주고 있는가.

실체의 차별성과 명칭의 정합성에 대한 고민은 브랜드를 운영한다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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