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이 ‘배달앱’이라는 말을 지워야 하는 이유
“그건 아빠가 잘못한 거잖아!”
아이는 내 반응이 느려지거나 움직임이 굼떠지면 금세 불만을 표출한다. 예전에는 그저 짜증에 가까웠다면, 요즘은 분명하게 잘잘못을 따진다. 이렇게 하기로 했는데 하지 않았다거나, 동생이나 엄마의 요청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았다거나. 아이는 늘 이유를 덧붙인다.
억지라기보다는 논리에 가깝다 보니, 나는 사과하고 다시 행동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다행인 것은 다시 행동하면, 아이의 기분이 금세 풀린다는 것이다.
아이는 정말 잘못된 상황이 바로잡히는 순간을 바랐던 걸까?
이 구조는 아이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규모를 넘어선 브랜드들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질문 앞에 서는 순간 변명이나 사과는 큰 효과가 없다. 요구되는 것은 태도가 아니라, 새로운 구조와 행동이다.
그리고 새로운 구조에 앞서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관계에 대한 인식이다. 아이에게 나는 더 이상 돌보는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주체다.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규모가 커지고 일상에 깊이 침투할수록, 대중은 브랜드를 제공자가 아니라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행위자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브랜드는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판단받는다.
배달의민족은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되며 더 이상 ‘한 민족’이라는 프레임이 온전히 작동할 수 없게 되었다. ‘게르만민족’, ‘배신의민족’과 같은 비아냥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질문으로 관계를 형성해 온 브랜드의 역사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배민에 대해 ‘한 민족’이라는 전제를 공유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배경 위에서 음식 가격이 비싸다, 배달 속도가 느리다는 일상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 불만 위에, 독점과 갑질 같은 윤리의 언어가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고작 음식을 배달시키는 앱일 뿐인데 왜 윤리적 평가까지 들이대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식 배달은 이미 ‘고작 앱 서비스’라는 지위를 넘어 우리의 일상에 깊이 침투한 인프라가 되었다. 일상의 인프라가 되었다는 것은 작은 불편 하나가 생활의 차질로 직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제, 식사, 소통을 담당하는 네이버, 배달의민족, 카카오톡은 조금의 불편도 용납되기 어려운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배달의민족의 수수료율이나 광고비 정책은 늘 논쟁의 한가운데에 놓이지만, 일상 인프라가 아닌 무신사의 수수료율에 대한 비판은 그 밀도가 전혀 다르다. 이 차이는 플랫폼의 ‘선의’나 ‘태도’에서 비롯되기보다, 대중의 하루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는가에서 비롯된다. 일상의 필요를 담당하는 순간, 플랫폼은 더이상 기능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관계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배달의민족은 스스로를 '배달앱'으로 규정해 온 언어에서 벗어나야 할 지점에 와있다. 배달의민족은 배달 산업의 비용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설계하는 구조 설계자이자, 일상 깊숙이 작동하는 인프라 플랫폼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배달의민족이라는 브랜드는 편리와 성장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구조 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증명해내야 한다.
넷플릭스는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서 더 많은 양질의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위해 구독료 인상이라는 선택을 했다. 동시에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며 가격 인상이 일방적인 강제가 되지 않도록 선택의 구조를 함께 설계했다. 우버 역시 surge pricing에 대해 요금이 작동하는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 구조가 기사 보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가격에 대한 불만은 점차 구조에 대한 이해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가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설명이 아니라, 어떤 구조 위에서 함께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증명해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두 브랜드가 여전히 성장 궤도 위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배달의민족이 지금까지 사용해온 언어는 편리와 혁신의 언어였다. 그러나 일상의 인프라가 된 지금, 이 언어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배달의민족은 산업의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 산업이 왜 지속 가능해야 하는지, 이 구조가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서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어느 지점부터는 플랫폼이 책임져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배달의민족이 배달을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방식을 설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물론, 어디까지를 드러내고 어디까지를 이해시키는가는 전략적 선택의 문제다)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배달의민족은 앞으로도 ‘가장 편리한 선택지’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일상이 의존해도 괜찮은 ‘지속 가능한 구조’로 신뢰받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배민 2.0의 방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