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보단 외로움
건강 검진을 통해 발견된 좌측 유방의 엽상종. 일반 여성에게 흔히 발견되는 섬유선종과 달리 자라는 속도가 빠른, 지속적으로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양성종양이었다. 조직검사를 통해 종양의 크기와 상태를 파악했는데, 제법 크기도 한 데다 어차피 제거해야 하니 의사는 바로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 그래도 개인병원보다는 큰 병원이 낫지 싶어서 친정과 멀지 않은, 익숙한 동네의 2차 병원을 예약했다. 요즘 3차 병원은 암 같은 중증 질환이 아니라면 예약하기가 쉽지 않고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지난달에 수술 날짜를 잡고 왔다. 당일 입원 수술 후 바로 퇴원하는, 그러고 보면 크지 않은 간단한 수술일 것이다. 예전에 난소 혹과 자궁 근종 수술을 두 차례 경험했어서인지 그것보단 낫구나 싶었다. 입원도 안 하고 거동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테니까. 다만 어쨌거나 수술이므로 상주할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데, 2~3만 원 정도의 간병 서비스를 신청하면 굳이 누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차피 잠깐 몇 시간인데 남편 연차까지 쓰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것까지 신청해 뒀다.
이러한 근황에 대해 몇몇 지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보인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그렇구나, 괜찮을 거야, 그래도 다행이다- 하며 자상하게 위로해 주기, 사려 깊게 듣고 격려해 주기 등등. 그때마다 나는 고마웠고 안도했다. 그래도 진짜 가족만큼 걱정하고 마음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외로워졌다.
그 외로움의 이유에 대해 여러 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 엄마에게 말을 못 해서인 걸까.
수술 날짜를 잡은 날, 남편에게는 부모님들에겐 함구하라고 했다. 큰 수술 아니니 괜찮겠지 싶었고, 부모님들은 괜히 부풀려 걱정할 것 같았고, 그래서 그 걱정을 끼치는 게 싫었고, 괜한 걱정 어린 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나는 정말 괜찮았으니까. 이미 나보다 더 큰 문제들이 산적한 부모님에게 말해서 무엇하나 싶었다. 유방암 재발로 치료 중인 어머님에게도 그렇고, 아빠의 건강 문제로 걱정 한 짐 가득인 친정 부모님에게는 더더욱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다. 남들에게 얘기할 때처럼 무심히 쿨하게 씩씩하게 말해도 되겠지만, 왠지 엄마한테 말하면 시무룩하고 걱정스러운 진짜 내 모습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다. 엄마 앞에서만큼은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결국 남편은 어머님에게 수술 소식을 전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실직고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소식을 들은 어머님은 나와 통화하면서 본인의 걱정을 나에게 조금도 전가시키지 않았고, 차분히 일정을 듣고 다독여주셨다. 걱정스럽고 안타까워할 속마음은 예상되지만, 그것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 가만히 들어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정작 우리 엄마에게 얘기를 해야 하는데, 아마 끝까지 하지 않을 것이다.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 별 문제가 없다 하고 상처가 잘 아물면 그때 가서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을 예정이다. 반대로 내 자식들이 나처럼 행동했다면 몹시 서운하고 화가 나고 속상할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럴 예정이다.
병원과 엄마를 떠올리니 첫 아이 출산 때가 떠오른다.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친정 부모님이 도착하기도 전에 아기가 나왔는데, 모든 딸들이 그랬듯 나도 엄마를 부여잡고 엉엉 울었던 것 같다.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나를 낳았을까 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고 마냥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철없이 엄마에게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에 나는 외롭고 헛헛하다. 내가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걸 알면 우리 엄마 참 속상해할 텐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이러고 있는 나도, 참 말 안 듣는 딸이다. 걱정을 끼치기 싫은 착한 딸이거나 몰래 걱정을 숨기는 나쁜 딸이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씩씩한 마음을 잃고 싶지 않으므로, 글의 대문에 밝고 화려함이 넘치는 사진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