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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Nov 11. 2024

사춘기 부모의 여행법

따로 또 같이, 거리 두기, 내려놓음의 미학

중2, 초5

우쭈쭈 데리고 다니기도,

평화롭게  함께 하기도 쉽지 않은 조합이다.


사춘기의 초입과 절정을 지나고 있지만
이 시간조차 금세 지나갈 것임은 자명한 일.

둘 다 이래저래 툴툴댈 것도, 짜증 낼 것도 알면서도

우리는 7년 경주로 2박 3일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엔 포항까지 들르는 여정이다.



출발, 음악은 각자의 취향껏

같은 음악을 들으며 함께 여행은 끝났다. 출발한 차 안 분위기가 익숙해지자 각자의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저마다의 음악에 심취한다. 네댓 시간 장거리인만큼 지루함도 길다. 순수하게 디즈니 ost를 무한재생하며 신나게 따라 부르던 그 시간은 곱게 접혀 하늘 위로 진작에 떠났다. 그나마 짬짬이 이동 같이 차량 스피커로 멜론 차트를 들을 때는 괜한 너스레를 떤다.

로제가 브루노마스 소속사 들어가서 아파트 같이 부른 거래. 엄마는 아파트 노래로 줌바댄스 배운다니까. 데이식스는 가사가 정말 가슴을 후비지 않니. QWER은 김계란이 만든 거라며.


참, 이때 적당히 하고 멈춰야 한다. 괜히 오버하면 엄마만 떠들게 된다. 대화하는 척하며 아이들의 속내를 자꾸만 탐정처럼 캐내고픈 욕심도 내려두어야 한다.

그리고 속마음도 절대 발설금지 X

이 노래는 왜 가사가 들리지도 않는 영어야? 요즘 노래 무슨 소린지 하나 모르겠다 정말.




도움 받는 에미가 되어 본다

 

포항 환호공원의 명물이라는 '스페이스워크'가 첫 목적지. 본격적인 관람 전에 이미 오르막길이 있어 숨이 턱끝까지 찼지만, 좀만 더 힘내서 가보자고 꼬드긴다. 슬슬 지치기 시작할 무렵, 뻥 뚫린 바다가 보이면서 공원이름 마냥 '환호'가 절로 나온다. 그다음은 웅장한 철골 구조물에 압도될 차례.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멋진 계단을 보며 온 가족 엄지 척이고, 코스를 계획한 엄마는 몹시 뿌듯하다.

자 이제 올라가 볼까. 고소공포증 에미는 무섭지만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난간을 잡고 꿋꿋이 올라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철골 계단 바닥 틈으로 까마득한 저 아래가 보이니 다리가 쩌릿쩌릿해 온다. 아빠와 딸은 이미 저만치 올라가고, 아들은 나더러 뭐가 무섭냐고 핀잔이지만 뒤로 슬쩍 확인해 가며 엄마가 잘 오는지 보고 있다. 내려가는 좁은 계단은 저 먼저 내려가서 가이드도 되어주고. 짜식, 감동했다. 오히려 엄마가 조금 허술할 때 아이들은 동질감을 느끼며 자신감이 상승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된다.  



여행의 우선순위는 나여야 한다


폐렴의 끝무렵이었던 딸이 염려되어 옷차림이 걱정이었다. 안 추워? 옷 입을래?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묻다가 어느 순간에 깨달음이 왔다. 춥지 않은지, 다치진 않을지에 대한 염려는 한 번으로 족했다. 저가 추우면 입을 거고, 더우면 벗겠지. 이제 그냥 내 무릎과 건강만 챙길 것이다.

경주하면 천년의 신라가 집결된, 역사 탐방의 필수코스 아닌가.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 박물관 등을 둘러보며 머릿속에 역사의 상식을 집어넣을 적극적인 태도와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초등 저학년쯤이라면 이것저것 가르쳐주며 잘 보라며 확인해 가며 잔소리를 했겠지만, 이번엔 적당히 하다 멈추기로 했다. 남편과 주거니 받거니 감상할 뿐이다. 요즘 역사를 배우는 딸을 위해 준비한 여행이지만 배운 것을 다 기억하는지 확인할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 거다. 중3 때 한국사를 배울 아들에게 자세히 좀 보라고 다그치면 안 되는 거다. 다보탑에서 십원 짜리 동전의 김민지 괴담을 찾는 딸에게 눈을 흘기지 않았고, 1시간 걸려 도착한 석굴암을 3초만 보고 지나가는 아들놈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좀 더 보고 가자고 하지 않았다. 너네들이 알아서 느꼈기를. 엄마와 아빠는 마음껏 즐길 거야.



죽 끓듯 하는 감정 상태는 정상이다

오래간만에 오랜 시간 함께 하니 다양한 민낯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 조금 전에 멀쩡했는데 왜 저러지. 갑자기 말도 안 하고 퉁퉁 대며 짜증이다. 기분 좋더니 갑자기 왜 이래? 이유는 알 수 없다. 배고프거나 피곤할 때마다 으레 짜증 내던 어린 시절에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찾기가 힘들고 그조차 소모적임을 느낀다. 사소한 일이라면 굳이 감정 변화의 이유를 물을 필요도, 궁금해할 것도, 해결해 줄 필요도 없다. 시간 지나면 돌아오게 되어 있다. 말이 쉽지 트리플 F 엄마는 매일매일 도 닦는 마음으로 산다. 아이가 힘들면 도와주고 싶고 해결해주고 싶다. 그 이유를 파헤치고 싶다. 아이의 세계는 이제 나와 다른 세계이므로, 간섭해 봤자 엄마만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냥 내버려 두기가 나는 왜 이리 어려운 걸까. 남편 말마따나 거실의 화초 보듯 그냥 물 주고 알아서 자라겠지 하는 마음으로 두는 것이 현명할 것 같은데. 엄마는 저 수막새의 얼굴처럼 평화롭게 살아내고 싶다.


함께 하는 시간에 자족하리라

바쁘지도 않은데, 학원을 안 다니는 애들인데도 희한하게 얼굴 볼 시간이 없다. 저녁 식사 후 각자의 방으로 할 일을 하고 취미 생활을 위해 흩어지니 같이 모이는 시간이 생각보다 없다. 아이들이 커가며 당연한 수순이지만 왠지 모를 서운함을 선배 엄마들에게 토로하면, '앞으로는 더 시간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이 귀한 시간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음을 기억하며 것 하지 않는 이 시간조차 감사하기로 한다.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뜨겁게 감동했던 찰나의 순간까지도.

명절대이동이 없는 우리 가족은 이번 여행에서 차량 정체로 고속도로에서 6시간 머무는 최장 기록을 달성했다.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지만, 그 좁은 차 안이 냉랭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으며 평범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 감사했다.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함께 하는 시간에 자족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멈추다 서다 반복하며 도착하니 밤 9시. 늦은 저녁으로 삼각 김밥을 뜯어먹으며 각자의 일상을 준비한다.

사춘기 폭탄들과 2박 3일의 여정은 끝났고 사춘기도 언젠가 끝날 테지. 그때 되면 분명 그리워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부모가 되길 다짐하지만, 서서히 상승세를 보이는 사춘기는 여전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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