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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독서의 연결고리

아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

by 다독임

우리 집 남자들의 공통 관심사는 게임. 남자 중학생이 게임 좋아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남편은 마흔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직까지 게임을 좋아한다. 아들이 좋아할 법한 게임이 출시되면 일찌감치 구매해 시험 끝난 날 선물하는 자상함(?)까지 갖췄다. 무뚝뚝한 두 남자가 활발하게 대화하는 주제도 주로 게임공략과 전술에 대한 것들이다.


이러한 분위기 덕에 아들은 집 양지(陽地)에서 게임을 즐긴다. 거실 한복판에서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스위치를 하거나 서재 방에서 PC 게임을 하는데 일일 허용 시간 내에선 이용이 자유롭다. 그나마 스마트폰에 집착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무리 공부하고 게임을 한다지만 엄마 눈엔 늘 못 마땅한 게 사실이다. 공부 시간은 좀 더 길게, 게임은 시간 남을 때 적당히 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그래도 공부 시간을 채우고 당당하게 허락받은 게임 시간이므로 그 시간만큼은 터치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들이 요즘 즐겨하는 게임은 <검은 신화:오공>. 중국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게임인데. 중국의 서유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엄마가 보기엔 요상하고 기괴한 캐릭터들이지만 최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소파에 앉아있을 때 아들 등판에 눈빛 레이저를 쏘는 대신 되도록 책으로 시선을 내리깔면서.


며칠 전 문득, 아들이 서유기 책을 빌려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초등 6년 다독상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독서광이지만, 중학교 가서는 굳이 찾아가며 빌려오진 않는 터라 모처럼 반가운 소리였다. 게임을 하다 보니 서유기가 생각났고 책으로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나. 어쨌거나 책을 빌려달라는 말에 거절할 엄마가 어딨겠는가.

긴 연휴 전날, 같이 외출한 김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다. 총 10권 세트 중 6권까지만.


-기왕 온 김에 다 빌려 가지, 왜?

-됐어. 일단 이것만 읽을래. 다 못 읽을 수도 있잖아. 시간 없어.

(쯧. 시간이 없긴 뭐 없어. 연휴가 이렇게 길구만)


아들에게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은 내 맘 속 책장에 언제나 한 가득이다. 서유기는 내 위시 리스트에는 없었기에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빠르게 생각해 봤다.

-중국 고전소설이니 한자어가 많은 만큼 다양한 한자어를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겠지, 긴 흐름의 내용을 읽으며 사고를 넓히고 집중력과 논리력이 향상되는 유익함을 기대할 수 있겠지.

으이구. 독서의 순수한 유익은 일찌감치 뒷전으로 미뤄버리는 욕망 엄마의 시커먼 계산법이다.


지금 아들은 이틀 만에 서유기 5권까지 독파하면서 그냥 10권 다 빌려올 걸 하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아껴가며 읽는 중이다. 게임에서 보던 장면을 책에서 보니 더 흥미롭다는데, 비록 동기가 게임이었어도 그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책을 읽으며 즐겁게 몰입하는 경험은 분명 소중하다. 강제로 읽어야 하는 필독서를 눈으로 훑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독서를 통한 몰입과 사색, 지식의 확장은 무엇보다 귀하고 유익한 경험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다른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욕심도 올라간다. 꾸준한 독서가 공부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문제집을 더 풀어서 점수를 높이고 실력을 쌓았으면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어린 시절 꿀민이는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공룡 피규어를 손에서 놓지 않으며 공룡 소리를 내며 놀았다. 덕분에 아기자기한 공룡 그림책과 실사 팝업북 속의 크고 작은 공룡들과 상상의 백악기 시대에서 원 없이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그때처럼 아이가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꿈꾸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참 좋겠다. 다른 세계에 들어서는 두근대는 설렘과 몰입의 즐거움을 잊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쭉.


-게임 그만하고 책 좀 읽으면 좋겠어요.

이 문제가 해결되면 또 이런 고민이 생기겠지.


-책 좀 덜 읽고 공부 좀 하면 좋겠어요.

이 문제가 해결되면 또 이런 고민이 생기겠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이 문제는 입시가 끝나야 끝나는 고민일까.


아무리 엄마가 간절히 바란다 한들, 결국 실행의 주체는 아이다. 게임. 독서. 공부 모두 아이가 하는 것이니, 이 사이에서 본인의 밸런스를 찾아가도록 돕는 역할이 부모의 몫이겠지. 잔소리와 넋두리를 배부르도록 삼켜보겠다.


학원 휴강으로 널널한 설 연휴, 딩가딩가 여유롭게 서유기를 읽으며 넷플릭스를 보며 설렁설렁 공부하며, 게임에 최고의 집중력을 쏟더라도 마음이 평온하기를.

그래도 아들아! 조이스틱보다는 책과 샤프를 더 자주 잡았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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