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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로망 Aug 05. 2022

이별의 경험을 노래를 만드는 사람의 심리

노래가 될 수 있어요 당신의 아픈 기억까지도

왜 아픈 기억을 굳이 노래를 만드는 걸까?

헤어지고 깨지고 상처받은 경험과 기억들로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고, 게다가 그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부르는 뮤지션들은 대체 무슨 심보로 애써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걸까요? 아픈 기억은 가만히 두기에도 충분한 것을 굳이 되뇌고 드러내서 보여주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노래로 자신의 아픈 기억을 내보이는 이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다니는 교회 고등부 교사로 봉사를 하던 2014년 즈음, 학생들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 탓인지 기타 연주와 싱어송라이터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가사와 곡을 쓰는 과정에서 종종 학생들의 문의가 있었는데요, 어느 날 노래하고 연기하길 좋아하는 한 여학생이 자신의 이별경험을 바탕으로 쓴 가사를 보여주며 피드백을 달라고 했습니다.


따뜻한 카페 창문 옆 자리
자주 만났던 대학로 거리
너와 함께한 모든 것들이
혼자가 돼버린 오래된 추억


이 친구의 가사를 처음 읽었을 때 내면의 꼰대의 생각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따뜻한" 카페라는 말이 모호하고 임팩트가 없다

"너와 함께 한 모든 것들이"같은 구절이 들어간 기존 노래는 10개 이상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이별노래의 공통점은 혼자가 된다는 것인데, 참신한 표현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혼자가 돼버린"은 조금 식상하다.

추억은 대체로 오래된 것이라 "오래된"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건질 가사가 별로 없다는 결론이었는데 일단 가사에 대한 지적질은 접어두고 그 친구에게 곡을 쓰게 된 계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듣다 보니 단순히 표현을 바꾸는 것이 본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이별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를 감추기에 급급해 보였거든요. (사실 노래로 자신의 이별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남에게 내보일 용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내가 아는 사람 얘기해 줄게"라며 이야기를 꽁꽁 숨길 수는 없으니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내 경우엔 헤어질 때 그 사람과의 어깨 사이가 딱 처음 만날 때만큼 어색하게 떨어져 있어서 기분이 이상했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습관이 나올까 봐 이렇게 두 주먹을 꼭 쥐고 걷던 게 생각나"
"넌 헤어질 때 뭐가 제일 속상했어?"
"그날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상황이 있어?"


그렇게 가사 첨삭으로 시작한 시간은 어느새 각자 경험한 이별에 대한 회고의 시간이 되었고 그 친구가 충분한 자기 이야기를 나눠 준 덕분에 그 친구의 가사를 더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흘러간다 그대와 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간다
아무렇지 않게 잊어간다
몇몇 조각 빼곤 다 자리를 찾아간다

난 또 여전히 오늘을 보내고 있고
오늘은 여전히 또 그대를 보내고 있네
- 흘러간다(2019) 미발표곡


아픈데 왜 노래하냐고요? 아프니까 노래합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뮤지션은 왜 아프면서, 이별의 기억을 헤집어서 노래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힘들면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걸까요? 역시 저는 왜 이렇게 이별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걸까요? 궁금함에 아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상핵(붉은색 부분)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마약(코카인)을 할 때처럼 '미상핵'이라는 붉은색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이는 마약의 금단현상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 역시 이별 뒤에 상사병과 같은 금단증상을 겪게 됩니다. 이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상실로 고통받은 뇌를 보상해 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인데요, 뮤지션들에게는 그것이 음악이 아니었을까요? 미안함, 죄책감, 애잔한 아쉬움을 담은 이별노래는 무의식 중에 이별의 상처와 고통을 스스로 달래주고 슬픈 마음을 여미어 주는 범퍼가 되어 준 것이지요. (이상 자문 : 정지영 정신과 전문의)


출처:로맨틱 브레인, 류인균의 뇌 이야기


위 사진은 "고통스러운 기억과 연관된 경험"을 겪은 사람의 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노란색으로 표시된 영역이 그 고통의 기억이 저장되는 곳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경험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겠다라고 예측하는 것만으로도 동일한 뇌 영역이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이별노래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저의 이별 노래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 그때로 돌아가 그 당시 추스리지 못한 감정과 이해하지 못한 상대방을 정돈하고, 인정하는 회복제이자 해독제의 역할을 한 것이죠.


지금 헤어지러 갑니다 - 조대득밴드 : 여기까지(2013)

마음보다 조금 빠른 기차
여지에 찍지 못한 마침표
해야 할 말은 다 가져왔을까
그대와 헤어지러 가는 길

반쯤 꼬여 있는 이어폰에선
평소 잘 듣지 않던 노래
여느 때완 달리 잠이 오지 않아
새삼스레 어색한 풍경들

태연치 못한 내가 될까
익숙한 기억에 휘둘릴까
콧노래를 부른다 빈말을 흘린다
마지막 그대를 부른다

Chorus
짧진 않던 우리 시간들 익숙한 습관들
소리 없이 길게 스쳐간 바람과 풍경처럼
생각보단 훨씬 짧던 그대보단 짧아야 했던
마지막 인사를 하고

한 뼘 정도 멀리 떨어진 어깨 사이
너를 처음 본 그날처럼
둘 곳 없는 어색한 손들로
어디서 본듯한 인사만

쉽지 않은 너의 마지막 부탁과
반쯤 꼬여 있는 나의 맘
차창 너머로 서 있는 그대
이젠 떠나갈 기차

태연치 못한 내가 될까
익숙한 기억에 휘둘릴까
콧노래를 부른다 빈말을 흘린다
마지막 그대를 부른다

Chorus

내겐 사랑이었고
너에겐 아픔이었네

덧 1 : 서울-부산 열차를 타고 원거리 연애 중이던 사람과 헤어짐의 인사를 하러 내려가는 길에 만든 노래
덧 2 : 이제는 수년 지난 일로 노래가 남았을 뿐 더 이상 미련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ez7EmUvE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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