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D+28)_태국/방콕
하루 종일 사원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사원으로 유명한 나라니 사원을 보지 않고 여행했다 하기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이 사원, 저 사원 기웃거리는데 입장료는 입장료대로 비싸고 생긴 것은 다 거기서 거기다. 앙코르와트를 힘겨워하던 아들 입에서 이럴 바에는 앙코르와트가 좋았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두 번째 사원부터는 내가 사원 내의 어딜 봤고 어딜 보지 못했는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코끼리 바지 에피소드도 있었다. 어제 골드 마운틴에 들렀을 때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많기에(심지어 어떤 처자는 핫팬츠에 탑을 입고 경내를 활보했다.) 너무 짧지 않은 반바지에 운동화면 입장에 문제가 없겠거니 했다. 첫 번째 사원 프라깨우(왕궁 내에 있다.) 근처에 이르자 호객 행위 나온 이들이 '너희들 바지로 어림없다'며 빨리 긴바지를 사란다. 우리는 '너희들만 똑똑하냐, 나도 다 안다'라는 정신으로 티켓부스까지 향했다. 그런데 그들은 똑똑했고 우리는 멍청했다.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고 입구에서 파는 코끼리 바지를 구매해야 했다. 더 억울했던 건 사원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코끼리 바지의 시세를 봤더니 입구에서 팔던 금액의 절반이었던 것이다. 디자인도 더 화려하고 사이즈도 다양한 반값의 코끼리 바지를 터무니없는 곳에서 두 배 값으로 강매당한 것이다. 사원 입장료도 만만치 않은데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번쩍이는 사원에 지치고, 수많은 사람에 치이고, 무더운 날씨에 허덕이며 하루 일과를 마쳤다. 마지막은 시암스퀘어에서 그럴듯한 저녁을 먹는 것으로 정했다. 요즘 아들을 어르고 달랠 수 있는 방법은 한식뿐이니 하루 종일 고생한 친구에게 삼겹살을 대접하고자 했다. 그런데 정해 놓은 식당으로 가던 도중 떡볶이 뷔페가 눈에 띄었고 우리는 급히 계획을 수정하여 그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불과 10분 후 내 어금니에 있던 임플란트가 '우두둑'소리와 함께 빠져나왔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가장 난감한 장면을 고민했을 때, 항상 상위에 포진하던 것이 치아 문제였다. 한국에서도 비싼 치과 치료를 외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받아야 하나. 게다가 시간은 좀 오래 걸리느냔 말이다. 치료하고 본뜨고 박아 넣고 다시 정리하고. 한국에서 했던 기억으로는 길게는 몇 주까지 치료 기간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떠나오기 전에 치과는 몇 번씩 검진을 받았었는데 결국은 사달이 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임플란트가 부서지지 않고 본모습 그대로 빠져나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들이 떡볶이 뷔페가 들어선 건물 내에 치과가 있음을 전광석화 같이 찾아냈다는 점이다.
나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만찬을 앞에 두고 치과로 향했다. 치과에서는 일단 난색을 표했다. 내가 나는 여행 중이고 당장 내일 이곳을 떠나니 오늘 내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그들은 이미 오후 7시가 지난 시각에 진료는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한 번 더 징징거렸더니 의사가 나와 30분 정도 기다리면 봐주겠다 했다. 3시간은 못 기다리겠는가. 그렇게 치과 의자에 입을 벌리고 앉는데 까지 성공했다.
앞선 글에서 몇 차례 밝힌 바와 같이 나의 영어는 능숙하지 않다. 그저 어디 가서 밥 사 먹고 버스, 기차나 탈 정도인데 치과 진료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태국의 치과 선생님은 외국 세미나를 많이 다니셨는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셨다. 한쪽만 유창한 게 문제였지만 나는 있는 눈치, 없는 눈치를 모두 동원하여 대답했고 아주 난도 높은 수준의 문답까지 그럭저럭 진행할 수 있었다. 태국의 치과는 석션이 우리 보다 조금 늦은 덕에 입에 쓴 약이 오래 머물러 힘들었고, 얼굴에 천을 덮어주지 않아 볼썽사나운 모습을 초면에 그대로 노출해야 했다.(입이 뚫린 천을 목에 갖다 놓기에 덮어줄 줄 알았더니만 끝까지 목에 놔뒀다. 침을 흘릴까 봐 그랬을까) 하지만 나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했고 그간 여행 다니며 빌었던 신들 중 누군가는 분명 나를 도와주고 계시다 생각했다. 나의 진료는 안정적으로 모두 끝났고 나는 빠졌던 이를 제자리에 튼튼하게 붙인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왜 이 글의 제목이 '그랬나봐'냐고? 의사 선생님이 처음에 나에게 물은 것이 어디서 왔냐였다. 나는 으레 하는 질문이겠거니 생각했고 한국이라 답했다. 그런데 진료가 시작되자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아닌가. 그 노래가 김형중 님의 '그랬나봐'였다. 처음에는 우연히 한국 노래가 걸렸다 생각하여 운이 좋다 생각했는데 진료가 끝날 때까지 한국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치과 측에서 배려한 것이리라. 하루 종일 흘린 땀에 내 몸에서 좋은 향이 났을 리 만무하다. 여행 시작이래 면도도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했고 대충 걸쳐 입은 코끼리 바지며 어수룩한 영어까지. 그들이 나를 치료하지 않고 내쳤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진료까지 받다니. 난 아직 인류애가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태국의 한 치과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는 먼 훗날 우리나라에서 곤경에 빠진 여행객에게 꼭 갚아줄 것이다. 이제 튼튼한 이도 장착했으니 다시 한번 걸어 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