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피는 계절

20260306(D+59)_인도/벵갈루루

by 박대희

태양이 중천에 떴지만 객실 밖으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어제 느낀 벵갈루루가 너무 싫어서였을까.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아들도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숙소 방 안에 있자니 그놈의 본전 생각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고 우리는 매연 가득한 거리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호텔 앞 제과점에서 빵 몇 개를 사들고 찾은 곳은 랄박 가든이라는 곳이었다. 그래도 식물원은 이 탁한 도시 한 복판에서도 편하게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묵고 있는 숙소로부터 1km 거리라서 천천히 걸었다. 식물원에 들어서자마자 준비한 빵을 먹고 본격적으로 구경을 시작했다.


동물원이나 식물원 같이 넓은 부지에 펼쳐진 곳은 아무리 기준을 잡고 돌아보려 해도 몇몇 장소는 빠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꼭 보고 싶은 곳들을 정해 놓고 그것들을 중심으로 동선을 잡는데 그중 하나가 랄박 힐이었다. 언덕 근처에 다다르자 멀리서도 넓게 펼쳐진 바위 언덕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언덕보다 내 눈을 더 잡아 끈 것은 분홍색 꽃이 잔뜩 달린 커다란 벚꽃 나무 한그루였다. 엊그제 겪은 홀리 축제가 봄맞이 축제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봄이 왔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을 시작한 이래 무더운 나라들만 거쳐왔다. 평생을 날이 따뜻해져야 비로소 '봄이구나' 느꼈던 나로서는 시종일관 땀 흘리던 여행길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익숙한 벚꽃을 본 순간 이곳에도, 그리고 곧 우리나라에도 봄이 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인도의 겨울과 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별로 반갑지 않은 황사도 날아든다. 산에,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날벌레들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나른한 봄바람에 춘곤증도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새 학기가 시작된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다녀야 하는 학교 자체가 바뀌는 학생들은 이 무렵에 입학식을 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난다. 오늘 함께 벚꽃을 즐긴 아들도 한국에 있었다면 중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내 옆에서 인도를 헤매고 있다. 가끔 그가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들을 보면 친구들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누구와 누가 같은 반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두발 규정에 대한 이야기며 하나 같이 그 나이 때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아들은 그저 들을 뿐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그는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집단에 끼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옆에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조잘조잘하고 있으면 옛 생각이 나 우습다가도 또 다른 무게가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이 여행은 기획 당시부터 90% 이상 아들을 위함이었다. 나의 삶을 돌이켜 봤을 때 방향 없이 달려온 중고등학교 6년이 너무 아쉬웠었다. 그 결과가 다시 방향 없이 4년의 대학생활을 하게 했고 나는 마음에도 없던 회사를 들어가 16년을 일해야 했다. 40년 넘게 살면서 4분의 3 이상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온 것이다. 그래도 매 순간 운이 좋아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지만 과연 행복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 쉽게 그랬다고 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 원인이 철이 들기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진지하게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했음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들에게 넓은 선택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공부가 아니라도 먹고살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 이 세상을 함께 다니며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여행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고 그 방향에 맞춰 공부하는 것이 지금 1년 늦는 것보다 먼 미래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벌어 줄 것이라고 수시로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아들의 반응은 나를 수심에 빠트리기도 한다.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가 부지기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빠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이 여행이 내가 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다. 아들의 친구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들도 그들과 방법이 다를 뿐, 역시 미래를 위한 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입장에서 아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그것대로 폭력일 것이다. 지금은 조금 늦고 서툴러도 이 여행의 어느 시점에, 혹은 여행이 끝난 뒤 어느 시점에 아들 스스로 퍼즐 조각들을 맞춰보리라 믿는다. 혹자는 말한다. 갓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가 1년간의 여행에서 무엇을 그렇게 느끼고 깨닫겠냐고 말이다. 그들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념을 갖고 시작한 여행이다. 이제는 멈출 수도 없다. 나의 조바심을 드러내 아들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 나 홀로 조용히 빌어볼 수는 있다. 아빠의 신념이 옳았음을 아들이 증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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