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비

20260319(D+72)_네팔/포카라

by 박대희

여행을 시작한 후 오늘처럼 이동도 없고 일정도 없는 날이 있었나 싶다. 우리는 완전히 숙소에 틀어박힌 채 다음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데 몰두했다. 우선 엄청나게 먹기 시작했다. 트레킹을 하는 7일간은 라면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계란프라이 2개, 점심과 저녁은 라면이 일반적이었다. 그걸 먹고도 잘 걸었으니 이제 추억이지만 떨어진 체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열심히 자라고 있는 아들에게는 더 그랬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묵는 숙소의 사장님은 대단한 음식 솜씨를 자랑하셨다. 여간한 음식은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더 나았다. 아들은 메뉴판을 펼쳐놓고 마치 영양사 선생님이 식단을 짜듯이 내일 먹을 음식까지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계획대로 따라주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삼시세끼 배 터지게 먹은 것 같다. 시원한 네팔 맥주는 덤이었다.


아들의 일정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아침 먹고 침대에 뒹굴었고 다시 점심을 먹고 뒹굴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다. 아들이 침대에서 핸드폰 게임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카트만두행 버스와 비자 연장이 필요했다. 내일모레 카트만두로 떠나는 버스는 숙소 사장님께서 예약해 주셨다. 10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니 또다시 대장정이다. 비자 기간은 인도에서 정신없이 국경을 넘어오느라 체류일 계산을 잘못했다. 하루가 모자라 오늘 연장하러 가려했는데 이 역시 사장님께서 도움을 주셨다. 하루가 넘어가는 것은 문제없다며 굳이 연장할 필요 없다 하셨다.


아프리카 일정도 돌아봐야 했다. 마다가스카르로 넘어가는 날짜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우선은 안타나나리보에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숙소가 있어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한국에서 계획할 때 연락을 드렸었는데 우리가 도착하는 4월은 비수기라며 천천히 이야기하자 하셨고 오늘 연락드려서 최종적으로 예약을 완료했다. 마다가스카르도 워낙 이동이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이라서 첫 숙소는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전체적인 여행 컨설팅을 받은 후 본격적인 여행에 나설 생각이다.


밀렸던 글도 정리해야 했다. 노트북을 숙소에 놓고 다녀왔으니 자그마치 6일 치가 밀렸다. 산장에서 초안을 써왔지만 그대로 옮기기에는 엉망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 피곤한 몸으로 글을 썼으니 안 그래도 부족한 글솜씨가 오죽했으랴. 게다가 이미 자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해졌는지 오랜만에 펜으로 종이에 써 내려간 글은 비문도 많고 몇몇 단어도 계속 중복되었다. 그래도 누구에게 보일 수 있는 수준으로 수정해야 했기에 이리 다듬고 저리 다듬고 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럼에도 모두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며칠은 더 손을 봐야 끝이 날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을 숙소 로비 겸 식당에서 진행했고 자연스럽게 들고 나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인 게스트하우스다 보니 대부분이 한국 분들이었는데 누군가는 우리처럼 트레킹을 끝내고 쉬고 계셨고 누군가는 떠날 트레킹을 위해 준비에 정신이 없으셨다. 이 두 집단의 표정은 완전히 상반되었는데 전자는 한껏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었고, 후자는 다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이것저것 묻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해야 했던 일을 하면서 몇몇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드렸고 덕분에 정신없이 하루가 흘렀다. 하지만 매시간 여유가 넘쳤고 우리의 첫 번째 휴식일도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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