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 끝나고 난 후

20260318(D+71)_네팔/ABC트레킹 Day7

by 박대희

그야말로 ABC트레킹 대망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히말라야는 오늘도 쉽게 그 끝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침 9시에 출발한 우리 팀은 1시간을 내려가 시누와를 벗어났고 다시 1시간 반을 올라가 촘롱에 도착했다. 촘롱에서 시원하게 음료수 한 병씩을 들이켠 후 다시 1시간을 내려가 지프가 대기하고 있는 지누단다에 닿았다. 물론 큰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촘롱에서 지누단다 까지는 잘 정돈되지 않은 계단이 이어져 위험해 보였지만 조심한다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대기하고 있는 차를 타기 위해 건너야 하는 흔들다리였다. 이 다리는 계곡으로부터 100m 높이에 설치되어 있었고 길이가 자그마치 300m였다. 폭은 두 사람이 겨우 오갈 수 있는 정도. 바람은 또 왜 그리 스산하게 부는지 누군가 내게 다시 돌아 올라가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면 심각하게 그 길을 고민할 정도로 나는 이 다리가 싫었다. 하지만 그 우회로 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포카라로 돌아가고 싶다면 무조건 건너야 했다.


아들은 앞서 나가며 잘도 다리를 건넜다. 다리 위에서 뒤로 걸으며 점프까지 했는데 바나힐의 케이블카에서 함께 공포에 떨던 그 아이가 맞나 싶었다. 이 여행이 가져다준 또 다른 효과였을까. 아무튼 그는 어느 정도 고소 공포증을 극복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날뛰는 아들 걱정까지 더해져 성을 버럭 냈고 그제야 아들은 다시 앞을 보고 차분히 걷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나는 아무도 건들지 않는 흔들다리의 난간을 잡고 건너느라 손에 상처까지 입은 후에야 다리의 반대편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담력 테스트를 끝으로 우리의 ABC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돌아오는 길은 트레킹을 시작하던 그날처럼 오프로드로 시작됐다. 또다시 내 엉덩이는 고통받아야 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좁은 길목을 막고 있던 물소 떼 마저 정겨워 보였다. 그렇게 한층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출발지였던 포카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한 동안은 정신없었다. 산속에서 쌓인 빨래에 산에 들어가기 전에 모아뒀던 것들까지 얹혀 무게만 10kg에 달했다. 사흘 후면 다시 이곳을 떠나야 하니 밀린 빨래부터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빨래를 처리한 후에는 가이드 선생님과의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그는 늘 우리에게 감사한 존재였고 특히 아들에게는 더 그랬다. 즐거운 저녁식사와 함께 그와의 인연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허전함이 몰려왔다.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내가 여전히 여행 중이라 그런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힘든 여정이 끝나고 나면 늘 편안한 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고생을 하고 배가 고프고 잠을 못 자도 참고 견디면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의 사장님이 너무 잘 배려해 주시고 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시지만 역시 집과 같을 수는 없다. 어쩌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감정이 향수병에서 비롯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 7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느끼지 못했던 헛헛함을 히말라야의 끝자락에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큰 산을 하나 넘었다. ABC트레킹은 이번 세계일주 전체를 놓고 봐도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무탈하게 완료했음에 감사한다. 여행 전 가장 걱정했던 인도부터 아프리카까지의 여정도 어느덧 1/3 가까이 지나고 있다. 지나온 모든 하루가 고단했지만 시간은 또 흐르고 있다. 포카라에서의 남은 이틀은 쉬기로 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휴식이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집이 주는 안온함을 기대할 수 없지만 인도와 아프리카 사이에 이 정도의 오아시스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이곳에서는 아들이 무얼 해도 잔소리하지 않을 생각이다. 설사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침대에서 뒹굴어도 그저 내버려 둘 생각이다. 그는 지금까지 훌륭했고 그 정도의 휴식을 보상으로 받기에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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