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서 살아남는 법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by 대치동 비둘기
대치동의 밤


상대방을 배려하며 편안한 대화를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상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 함께 상대방의 전반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알맞은 대화나 행동을 보여야하며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과 괴리가 크면

관계와 대화는 지속되기 어렵다.






동네 풍경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때로는 살아가며 나를 방어하기도 하고

도움를 주곤 하는데,

무언가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해야만 하거나

반대로 잘 모르고 있지만 알고 있는 척 해야만

하는 경우를 종종 마주한다.




굳이 따지자면

다년간의 교사 생활과 학부모의 삶으로

나는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을

잘하는 편이다.

가끔은 나의 연기가 꽤 그럴 듯해져

상대방이 너무 편하게 본인 이야기를

다 해줘서 난처할 때가 생겨

마치 내가 상대방을 속인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별마당 도서관


강태공


대학교 때 나의 별명 중 하나

이 별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정말 예쁘고 단아하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같은 과 동기 언니가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앞 카페에 마주쳐서

장난으로 웃으면서

"언니 지난 주말에 누구랑 커피 마신거야?"

라고 물었더니 얼굴이 몹시도 빨개지면서

교회 오빠라고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는게 아닌가.

정말이지 놀리려거나

언니의 연애상황을 켜내려던

새까만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의도없이 장난 친 한 마디가

언니에게는 마치 다 알고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본 사람으로

나를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어째 뭔가 이상하고 민망하여

나는 못 봤고 그냥 물은거라고

사과하며 끝났지만,

아는 척 하면 다 아는 것 처럼 보이는

캐릭터인지 그 후에도 '강태공'이라는 별명이

나를 따라다녔고 괜시리 멋쩍은 일들이

소소하게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한강에서 바라본 강남



아이의 친구 엄마들, 살고 있는 대치동 이웃들,

또는 근무하는 강남에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 학생들,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 역시

나의 재능(?)을 살려 대화하는 편이다.

알아도 모르는 척

몰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 해야할 때

경청하고 공감하고 가만히 있는 청자로서의

자세가 갖춰져 있다.




예를 들면,

대화 속에 상대방의 환경, 직업 등

다양한 정보가 녹아 있어 의도치않게 느껴지거나

알게 되는 때 그런 재주가 필요하다.




갑자기

본인이 사는 곳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던지

직업이나 근무지를 밝힌다던지

이번 휴가지를 알려준다던지

이모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말한다던지

남편의 욕인지 자랑인지 모를 무언가를 알려준다던지하는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할 때

속으로는 놀라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끄덕이며 반응하곤 한다.

아마 상대방은 본인의 기준에서 바라볼 때

내가 비슷한 환경이라 가정하여 말하는 거라

짐작하며 어슴프레 아는 것도 같은

눈빛이나 표정을 유지하곤 한다.




솔직히

너무 큰 스케일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나도 그정도는 알거나

하고 있다고 느껴 편안하게 대화하는 대화 예절이

나이가 들어서인지 원래 그랬는지

몸에 잘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남과 비교되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다지 크게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리고

비교할 스케일이 되어야

질투나 시샘이 난다는 사실을,

대치동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대치동에 이사와 더 많이 세상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많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대치동의 겨울날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 배우는 자세로

항상 오픈 마인드가 되어 있긴 하지만,

때로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타이밍에

밀고 들어오는 자랑 섞인 정보들은

놀랍기도 하고 부러운 마음이 울컥 들게 만든다.




아이를 등교시키며 만난 아이 친구의 할머니께서

손주가 이번에 수학 경시 대회를 잘 봐서

상을 받았다면서 급 자랑을 하셨는데,

미처 제대로 된 반응을 못하고 쭈뼛거리며

쓰덕이기만 했다.

어른스럽게 축하해드려야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 대회 이름만 들어봤고

준비 과정이나 난이도도 모를 뿐더러

아이의 학년 아이들도 그 시험의 응시 대상이 되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회에서 수상하고 고득점을 받을 만큼

수학을 잘 한다는 것에 부러움이 밀려와

찰나의 순간 질투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대치동에서 '남편 자랑, 재산 자랑, 집안 자랑'은

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같은 농담은 진짜다.

그만큼 이 동네는 꽤나 다들 수수해보이고

겸손하고 내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다 파악하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모든 걸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같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가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꺼내놓는 정보나 말들에

너무 놀라거나 의아해하지말고,

가끔은 적당히 이해하는 척

크게 놀라지 않는 미덕이 필요한 동네이다.




전혀 모르거나

생각해본 적 없는 스케일일지라도

적당히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성품을 가졌다면,

대치동의 삶이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다양한 삶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치동 가로등


쓰고 보니

내가 사기꾼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한 느낌이 들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내가 지내는 사회가 어디든

묻혀서 어느 정도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 동네(대치동)에게 가면

재산도 연봉도 제일 적어서 주눅들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꼴이 될까봐

걱정과 우려를 할테지만,

적당히 묻어갈 줄만 안다면

그리 스트레스받을 일도 주눅들 일도 없는

사람사는 동네일 뿐이다.



대치동의 밤


강남 한 복판 사교육 일번지
대치동


나는 지금

대치동 한 복판에 살고 있다.

오늘도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는

따스한 마음으로 크나큰 결심을 하고

이사를 선택하거나 라이딩을 선택하는

그런 동네에 살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와의 괴리감이나

낯설은 느낌, 부러움과 시샘의 묘한 감정,

가지각색의 생각들이 섞여

스치고 지나가는 일상들 속에

어느덧 대치동에 자리잡고

사계절을 두 번 떠나보냈다.




대치동에서 살 수 있을까?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오만가지 걱정과 생각으로

시도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에 타고난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그다지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무던한 성품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마 당신의 앞에 있는 누군가도

나처럼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치동 밤 열 시> 최종화 끝.






<대치동 밤 열 시> 를 마치며


이 글은 빼곡히 써내려간 제 일기장의 일부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알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사람이

대나무숲을 찾아가

비밀을 터놓고 속병이 치료되었던 것처럼

저에게는 제 일기장이

편안히 고민을 털어놓을 장소가 되어 주었습니다.



브런치북에 작가가 되어

월/수/금 3일 연재라는 일정에

하루도 빠짐없이 모두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마음 속 깊이 응원해준 가족들과

지금 저의 부족한 글을

읽으며 다양한 생각을 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제 글 중 어떤 글은

밤 11시가 다되어서야 업로드를 할 만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가능하면 저의 실명이나 근무지가 밝혀지지 않고

지나가는 가벼운 이야기이길 바랬지만,

쉽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운이 좋았는지

다음 메인이 소개되어

<강남 엄마아빠들의 직업군>이라는 글은

조회수가 10,000회를 돌파했다는 알림을 받아

무척이나 떨리고 신났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은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일기장 중 후반부의 이야기들은

<대치동 낮 두 시>라는 제목으로

찾아뵐게요.




지금까지 읽어주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존재를 알아차리셨다 하더라도

오늘 저의 글 제목처럼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해주시길 바라는 자그마한 욕심을 가져봅니다.



함께 해주시고 읽어주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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