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이 열린다

새로운 해양 질서의 서막

by 글곧

얼음 위에서 읽는 세계 지도

2024년 여름, 북극해 해빙 면적은 역대 두 번째로 작은 수치를 기록했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에 따르면 북극해 9월 최소 해빙 면적은 1979년 위성 관측 시작 이래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현재는 1980년대 평균 대비 약 40% 이상 감소한 상태다. 과학자들은 2030년대 중반이면 여름철 북극에서 처음으로 ‘사실상 무빙(practically ice-free)’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극해 얼음 면적은 급격히 줄었고, 그 자리에 두 개의 항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 해안을 따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동항로(NSR, Northern Sea Route)와, 캐나다 북극 군도를 관통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북서항로(NWP, Northwest Passage)다. 그러나 북서항로는 운항 가능 기간이 극히 짧고 수심이 얕아 대형 선박의 통항이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국제 해운업계가 말하는 ‘북극항로 개척’은 사실상 북동항로를 의미한다.


기존 항로의 균열, 새로운 길의 등장

세계 무역의 약 90%는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다. 원유, LNG, 컨테이너, 건화물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명의 물자는 대부분 선박에 실려 대양을 건넌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 거대한 물류 흐름은 오랫동안 수에즈 운하와 말라카 해협이라는 두 개의 병목을 통과해 왔다.

그러나 이 두 지점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2021년 수에즈 운하를 막아선 에버기븐호 사태는 6일간 운하를 봉쇄하며 하루 약 9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무역 손실을 야기했다. 2023년 말부터는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이 이어지면서 주요 해운사들이 수에즈 대신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우회를 선택했고, 이로 인해 항해 일수가 10~14일 늘어났다. 말라카 해협 역시 연간 9만 척 이상의 선박이 통과하는 초과밀 항로로, 해적 위협과 지정학적 불안이 상존한다.

북동항로는 이러한 취약성에 대한 구조적인 대안이다.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면 약 2만 2,000킬로미터이지만, 북동항로를 이용하면 약 1만 5,000킬로미터로 거리가 30% 이상 줄어든다. 단순히 빠른 길이 하나 더 생긴 것이 아니라, 세계 물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숫자로 읽는 북극의 변화

북동항로의 성장세는 통계로 확인된다. 북극항로(NSR)의 운영 주체인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Rosatom)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북동항로를 통한 화물 운송량은 300만 톤을 넘어섰다. 이는 2019년의 68만 톤과 비교하면 불과 5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2024년 한 해 동안의 운항 횟수도 97회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운송 화물은 주로 원유, LNG, 석탄, 비료, 철광석 같은 대량 자원이 중심을 이루지만, 컨테이너와 일반화물, 수산물도 실리기 시작했다. 특히 컨테이너 운송의 성장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2024년 북동항로를 통한 컨테이너 운항은 총 17회 이루어졌으며, 이 중 중국 선사 뉴뉴쉬핑 라인(NewNew Shipping Line)이 13회, 총 2만 TEU 이상을 운송했다. 로사톰은 2025년 컨테이너 운송이 2024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 의미 있는 사건은 2025년 9월에 있었다. 중국 하이지에 해운(Haijie Shipping)이 칭다오를 포함한 중국 3개 항만과 로테르담을 포함한 유럽 4개 항만을 연결하는 ‘북극 익스프레스(Arctic Express)’ 서비스를 개시한 것이다. 수에즈 경유 시 약 36일이 걸리던 항해를 18일로 절반 가까이 줄인 이 노선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속도가 아니다. 기존 북동항로 운항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의 단순 운송이었다면, 이 서비스는 여러 항만을 순차적으로 기항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기선 서비스를 북극항로에서 최초로 실현했다는 점에서 이정표가 된다. 북극이 실험적 항로에서 상업적 정기항로로 전환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중국의 북극 전략과 쇄빙선의 미래

북극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은 이미 본격화되었다. 중국은 2018년 공식 북극 정책 백서를 발표하고 스스로를 ’근북극국가(Near-Arctic State)’로 규정하며 북극에 대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식화했다. 이후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북극항로 주도권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중·러 정상회담의 일환으로 열린 북극항로 협력위원회에서 양국은 항해 안전, 화물 운송량 확대, 물류 경로 개발, 해빙 정보 교환 등에 합의했다. 같은 해 6월에는 로사톰과 중국 해운기업들이 연중무휴 북극 컨테이너 노선 개설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했다. 현재 북동항로는 7월에서 11월 사이 4~5개월만 운항이 가능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2030년까지 연중 운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야심 찬 계획을 뒷받침하는 것이 차세대 쇄빙 컨테이너선이다. 뉴뉴쉬핑은 현재 4,400 TEU 용량의 아크(Arc) 7급 쇄빙 컨테이너선 5척을 발주해 건조 중이다. 아크 7급은 최고 빙해 등급으로, 최대 2.1미터 두께의 해빙을 자력으로 돌파할 수 있으며 양방향 쇄빙 기능을 갖춰 빙해에서도 자유롭게 선회하고 후진이 가능하다. 이 선박들이 완공되면 북극항로의 운항 가능 기간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중국만이 아니다. 캐나다는 2024년 북극 방위 및 인프라 강화 계획을 발표했고,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도 북극 전략 프로젝트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북극은 이제 지구 끝의 오지가 아니라, 21세기 지정학의 새로운 중심축이 되었다.


우리의 전략적 선택

이 전환의 시대에 한국의 위치는 어디인가. 한국은 선복량 기준 세계 4위의 해운 강국이다. 국적 선사들이 글로벌 항로에서 경쟁하고 있으며, 한국 조선소들은 세계 LNG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는 이미 쇄빙선과 빙해 저항 선박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한국은 북동항로의 아시아 거점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부산항은 동북아시아 최대 환적 허브 중 하나로, 북동항로가 본격화될 경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물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다. 이미 부산항은 연간 2,200만 TEU 이상을 처리하는 세계 7위권의 항만이며, 북극 정기항로가 확대되면 일본, 중국 남부, 동남아시아 화물을 아우르는 광역 환적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한국은 또한 북극 거버넌스에서도 존재감을 키워왔다. 2013년부터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 옵서버 국가로 참여하고 있으며, 다산과학기지를 운영하며 북극 연구 역량을 축적해 왔다. 이제는 이 과학적 자산을 해운·물류·조선 산업의 실질적 경쟁력으로 연결시켜야 할 시점이다.


열린 항로가 품은 의미

부산에서 로텔담까지 북극항로를 이용해 운송하려면 부산에서 출항 후 일본 북쪽 또는 태평양 측으로 올라가, 베링해의 베링해협(Bering Strait) 진입하고, 이후 추크치해(Chukchi), 동시베리아해(East Siberian), 라프테프해(Laptev), 카라해(Kara)를 통해 북극항로를 나가 바렌츠해(Barents)를 거쳐 노르웨이해를 통해 로테르담항에 도착할 수 있다.

북극항로의 개척을 단순히 물류 효율화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그 본질을 놓친다. 세계 해양 질서의 구조적 재편이다. 수백 년간 고착된 수에즈-말라카 중심의 동서 물류 축이 흔들리고, 북극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추가되고 있다. 그 변화 앞에서 어떤 나라는 새로운 축의 설계자가 되고, 어떤 나라는 뒤늦게 합류하는 참여자에 머문다.


한국의 해운·조선·물류·친환경 선박 기술은 지금 이 전환기에 전략적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아시아 관문으로 키우고, 쇄빙 기술과 LNG 추진 등 친환경 빙해 선박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며, 북극 거버넌스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한국 해운의 다음 장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얼음이 녹고 있다. 그 자리에 새로운 세계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한국은 그 지도 위에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지금이 바로 그 답을 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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