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은 대학생 때부터 직장생활 초년 차 즈음까지 자주 갔던 곳이다.
단발성 휴가를 낼 때면, 종로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인사동을 거쳐 쭉 삼청동까지 긴 호흡의 산책을 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흥미가 줄고 더 좋은 곳들이 많아져 추억 속의 장소로 남겨두었다.
어제 몇 년 만에 삼청동에 갔다.
북한식 음식을 파는 곳에서 식사하고 카페가 지겨워 전통 찻집을 갔다.
삼청동의 거리는 내가 예전에 다녔을 때보다 한산했고 상가 10곳 중 3곳은 비어 있었다.
사람에 치여 불편할 정도로 북적거리는 분위기는 옛 이야기고 조용한 거리가 익숙해 보였다.
전통 찻집에 도착했을 때, 20팀 대기가 있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원의 피드백을 받았다.
이왕 온 김에 가보자는 마음으로 웨이팅을 걸고 남은 시간 동안 삼청동을 크게 돌고자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가 국립 현대미술관에 테라로사 카페가 입점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핸드드립 커피도 마실 겸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동네에 올 때 마다 지나치고 봐왔지만, 막상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들어서니 도심에서 보기 드문 넓은 잔디에서 아기들은 뛰어놀고 강아지는 산책하고 있었다.
결혼식 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도 있었고 몇몇 커플은 따뜻한 커피를 갖고 벤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이 동네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낯선 곳에 간 순간처럼 재미있고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한참 동안 미술관을 구경하고 핸드드립 커피도 마시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찻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 동네에 대한 애잔한 연민은 기대감으로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구석구석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오늘도 익숙함에 따라 항상 가던 곳에 가고 하던 것만 했다면, 그 동네에 대한 연민을 가진 채 종지부를 찍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알던 것보다 더 좋은 게 이미 그곳에 있었다.
단지 익숙함에 속아,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게 어디 그 동네에만 해당하는 말일까.
이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은 목적을 갖고 창조되었고 시간이 지나 낡고 닳아도 처음 만들어질 때 부여된 창조성은 보존된다.
물론, 사물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서 보면 되지만, 사람은 익숙함에 소원해지기 시작하면 떠나가고 없겠지만 말이다.
지나간 것을 후회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있는 존재를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해온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이미 갖고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