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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깨진 신용의 대가 (레고랜드 사태)

레고랜드 PF ABCP 채무불이행 사태에 관한 단상

지난주 월요일 아침,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건설사(시공사)의 고금리 단기 자금 대출 의뢰가 들어왔다.

해당 건설사는 기존 여의도에 있는 대부분 증권사와 거래 이력이 있고 해당 건설사가 준공을 보증하면, 별다른 이견 없이 투자를 진행할만큼의 우량 건설사다.


근데, 그러한 대형 회사가 고작 50억 원의 단기 자금이 소화되지 않아, 더 규모가 작은 회사에 대출을 문의했다. 그 회사의 장기 신용등급은 A+다.

채권시장에서 A+ 등급은 투자 저격 등급으로 분리하고, 1년 이내 부도할 확률은 0.1%로 매우 안정적인 상태의 회사에게만 부여한다.


이렇게 우량한 회사의 신용이 박살 난 것은, 9월 28일 있었던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매입확약(만기 시 대환이 안되면 대신 채무를 상환하는 금융 기법)을 제공하는 PF ABCP의 기한이익상실(EOD) 선언에 기인한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강원도가 최대 주주인 지방공기업이다. 3대 신용평가사(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방공기업의 신용을 지방자치단체에 준하는 국가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국가 등급이란, 장기 AAA 등급, 단기 A1 등급으로 장/단기 채권 등급 체계상 최상위에 속한다. AAA 등급의 1년 이내 부도율은 0%에 수렴한다.


하지만 0%에 수렴하는 부도율이 깨진 것이다. 해당 채권은 지난 9월 28일 만기가 도래하였고 이에 대한 매입확약 의무가 있는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기업 회생 진행을 발표했다.

채무 불이행 금액은 2,050억 원으로 채권 시장의 규모를 따지면, 큰 금액은 아니지만, 최상위 등급을 부여받은 회사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채무불이행 선언을 했다는 것이 시장에서 꽤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증권사와 건설사다. 증권사와 건설사는 부동산 PF를 진행할 때 자기 자본(Equity)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용도를 이용하여, ABCP를 발행하여 단기로 자금 조달하여 사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대환(리파이낸싱)하는 방식을 취한다.


9월 말 이후 증권사와 건설사는 기존 ABCP를 대환하기 위해 모집을 하였는데, 시장에서는 AAA 등급의 채권마저도 회수가 어려운데, A+ 등급에 속한 채권이 시장에서 소화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최근 한 2주일간 시공사와 증권사의 부도 가능성이 점화되었다.



지난주 강원도에서는 해당 ABCP의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예산을 배정하고 내년 초까지 상환 계획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채권 시장의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자본 시장에서는 서로 간의 약속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 역시도 투자를 진행할 때 교묘하게 조건이 바뀌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검토를 중단한다.

그런 측면에서, 채권 시장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집단의 약속 불이행은 시장 전반의 신용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신용이란 한 번 깨지면 대가가 큰 법이다. 아무리 다음번에 잘하려고 해도 그 신용을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 한 번을 깨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기 때문에, A+ 등급 이상의 회사 부도율(채무불이행)은 0%에 수렴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자본시장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고 다시금 돈 벌 궁리를 할 것이다. 그게 자본시장이 갖고 있는 자생력이자 힘이다.


다시 또 그런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는 지방공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체계를 단순하게 국가와 준하게 보기보다는, 중앙정부의 관리와 지원에 근거하고 사업의 공공성 등을 면밀히 살피고 필요시 지방공기업 및 지방자치단체 간 차별화된 신용등급 체계가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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