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한 달간의 출산 휴가가 끝난다. 1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이직을 할 때조차 2주 이상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한 달은, 길지 않았지만 분명히 인생에 남을 시간이다.


10대에는 혈기 왕성한 청소년이었고, 20대에는 원하는 커리어를 향해 달렸다. 30대가 되어서는 나의 쓸모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일했다. 성과로 평가받고, 연봉으로 증명되는 삶 속에서 나는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믿음이 흔들렸다.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신감은 퇴색됐고, 나 역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나의 쓸모는 결국 급여 명세서에 적힌 숫자만큼이라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려웠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는 누군가의 손과 품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우리 아기는 안겨서만 잠들었고, 하루 24시간 누군가는 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다.


퇴근 후 급히 저녁을 먹고, 아이에게 수유를 한 뒤 안아서 재우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됐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아이도 나도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요령이 생겼다. 아이를 배 위에 조심스럽게 안착시키고 함께 잠드는 순간,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전부라는 사실. 그리고 꽤나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 이 쓸모는 회사에서처럼 계산할 수 없고, 비교할 수도 없지만 아이에게는 세상의 중심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존재는 나에게 묻고 있던 질문에 답을 주었다. 이 작은 존재를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는 존재하는구나. 가족 앞에서 더 이상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한 달 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조금씩 변해가는 아이를 하루 종일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 이제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돌아가면 이 감정은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의 이 벅찬 마음만큼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아기야, 너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을 살았어. 사람들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 희생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너를 안고 있는 이 시간들은 무언가를 내어주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으로 채워지는 시간임을.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언젠가 이 기억이 희미해질 날이 오더라도, 이 한 달만큼은 분명하다. 내 삶에 ‘쓸모’라는 단어의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 시간이었음을.


모든 부모님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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