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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 후기(스포), 정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복귀작, 몰입도 최강 영화 '버닝' 후기

최근 개봉한 영화 ‘버닝’에 대한 리뷰를 남기려고 합니다. 본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어 영화 관람 예정에 있으신 분은 보지 않기를 추천드립니다.




영화 리뷰는 2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달에 여러 편의 영화를 감상하지만, 리뷰를 쓸 만큼 재미가 있거나, 여운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버닝’은 특별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몇 시간 동안 머리 속에 머물며 많은 궁금증이 생겨났고 서점으로 달려가 원작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읽었을 정도니까요.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이지만, 시간 흐름과 인물의 감정 변화를 따라 적어보고자 합니다.


Best Scene1. 서로 비슷한 듯 다른 ‘종수(유아인)’와 ‘해미(전종서)’의 만남


해미는 핸드폰 오픈 행사 아르바이트 중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인 종수를 만납니다. 반갑게 인사를 한 후 해미는 그 날 저녁 같이 술을 먹고 싶다고 청합니다.

술자리에서 해미는 최근 자신이 팬터마임을 배우고 있다며, 귤을 먹는 연기를 합니다. 이에 종수는 무미건조하게 소질 있다는 말을 건넵니다.

이에 해미는 귤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언제, 어디서든 귤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종수는 아직 크게 와 닿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


여기서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종수와 해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수는 진실(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초점이 있지만, 해미는 진실보다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그날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이 아프리카로 장기간 떠날 것이며, 매일 자신의 집으로 와서 반려묘에게 밥을 줄 것을 부탁합니다. 다만, 고양이는 낯선 사람이 오면 꼭꼭 숨어서 절대 나오지 않으니 절대 볼 수 없을 거란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해미가 종수에게 팬토마임을 보여주는 장면, 없었다는 것을 잊으면 돼.>


Best Scene2. 게츠비 ‘벤’의 등장으로 셋의 불안한 관계는 시작된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공항으로 마중 나온 종수에게 여행지에서 만난 ‘벤’이란 남자를 소개합니다. 셋은 공항에서 술집으로 자리를 이동합니다. 종수는 벤에게 하는 일에 대해 묻자 벤은 ‘그냥 노는 거예요’라고 대답합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더욱 느끼겠지만, 벤은 무언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메타포 즉 은유를 통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면에 숨겨진 답을 찾도록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답을 찾기 원하는 종수에게 벤은 이질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술자리에서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를 하며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물을 쏟아 냅니다. 그때 지켜보던, 벤은 자신은 울어본 적이 없으며 눈물을 보이는 사람이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또한, 이렇게 감정적인 해미와 종수를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술자리가 끝난 후 벤은 고급 스포츠카에 해미를 태운 후 헤어집니다.


여기서 해미와 종수 / 벤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해미와 종수는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속해 있는 흔들리는 청춘이라면, 벤은 이런 청춘의 흔들리는 감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하고 싶은 것을 하여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종수의 낡은 트럭 옆에 벤의 고급 스포츠카가 서있는 것만으로도 큰 이질감과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나(종수)와는 분명 다른 사람, 그 이질감과 위화감이 지독하게 느껴진다. >

Best Scene3.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비닐하우스. 메타포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강한 충돌


소 가축장을 청소하고 있는 종수는 해미의 전화를 받습니다. 현재 벤과 함께 종수의 집 근처에 왔으니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 소식에 종수는 벤과 해미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벤은 대마초에 불을 붙여 깊이들이마신 후 해미와 종수에게 대마초를 나눠줍니다. 해미는 대마초의 기운으로 지는 노을 앞에서 나체로 아프리카 토속 춤(*)을 춥니다.

(*) 아프리카 토속 춤은 크게 두 가지인데,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의 춤입니다. 리틀 헝거는 단순히 배고픈 사람을 뜻하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를 찾는데 배고픈 사람을 뜻합니다.


해미는 노을이 지기 시작했을 땐, 리틀 헝거의 춤을 추었지만, 노을이 거의 다 졌을 때 즈음엔 그레이트 헝거의 춤으로 바뀝니다. 춤사위가 끝난 후 해미는 잠이 들어버립니다.


그렇게 종수의 집 마당에서 벤과 종수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종수가 자신이 어렸을 적 집 나간 어머니의 옷을 태운 경험을 말하자 벤은 ‘저는 쓸모없는 비닐하우스를 태워요.’라고 말합니다. 종수는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에 벤은 사실 오늘 곧 태워버릴 비닐하우스를 현장답사 차 방문했다고 말합니다.

종수는 그건 범죄행위가 아니냐고 묻지만, 벤은 명백한 범죄행위이지만, 그런 쓸모없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에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이어 벤은 동시 존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도덕성이 동시 존재의 균형이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나는 파주에도 있고, 반포에도 있어요. 나는 서울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어요. 그 둘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 균형이 있어야만 동시 존재가 가능해지는 거예요.”


종수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이 자신과 상관이 없음에도, 이상한 낌새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내 욕설과 함께 자신은 해미를 사랑한다고 벤에게 말합니다. 벤은 이런 종수에 더 큰 흥미를 느끼는 듯 미소를 띱니다.


그날 이후 종수는 해미와 연락이 닿지 않아 끊임없이 찾아다닙니다. 매일 아침마다 종수는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쓸모없어 보이는 비닐하우스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분명 벤은 종수의 집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 하였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벤은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동시 존재라는 것도, 이 세상을 메타포로 이해하고 있는 벤의 생각을 설명하는 대사입니다. 이에 반해 종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종수는 눈에 보이는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녔지만, 벤의 타버린 비닐하우스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종수의 현실 세계와 벤의 메타포의 세계가 충돌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종수네 집 마당에서, 대마초를 나눠피는 장면 의식의 경계가 흐려질 때 즈음 중요한 말들이 오간다.>

Best Scene4.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쯤, 그저 느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종수와 관객들

해미와 연락이 닿지 않자 종수는 해미의 주변으로 단서를 찾아 나가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해미의 집에 도착합니다. 해미의 집 문이 닫혀있자, 집주인에게 고양이 밥을 줘야 하므로,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거기서 집주인은 해미의 집에는 고양이가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해미의 집에 들어섰을 때, 해미의 집은 완전히 비워졌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양이의 존재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종수와 관객들은 조금 혼란에 빠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마지막에 단서가 나오겠지’라는 마음으로 영화에 다시 몰입합니다.


두 번째, 해미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 도착합니다. 종수는 해미의 가족들에게 어렸을 적 집 근처에 우물에 해미가 빠진 적이 있냐고 묻습니다. 가족들은 자신의 집 근처에는 우물이 없었으며, 빠진 적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해미는 원래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잘한다고 첨언을 합니다.

그 이후 종수는 10여 년 만에 집을 나간 어머니를 만났고 어머니에게도 우물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때 종수의 어머니는 우물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종수의 머리 속은 복잡해집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에 대해 구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관객 역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고 감정적으로 지치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 종수는 벤의 집 근처에서 그를 기다립니다. 벤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낡은 트럭에 타고 있는 종수를 발견하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청합니다. 벤은 오늘 친구들과의 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종수에게 같이 있자고 이야기합니다.

이어 벤은 종수에게 무슨 글을 쓰고 있냐고 물어봅니다. 이때 종수는

‘아직 무엇을 써야 될지 모르겠어요. 사는 게 수수께끼 같아서 아직 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이 영화 전체를 꿰뚫는 메시지와 같습니다. 너무 거짓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거짓 사이에서 표류하는 종수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 우리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종수는 벤에게 해미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하지만, 벤은 듣지 못하여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종수는 벤 집 화장실에 들어갑니다. 화장실의 서랍장을 여니, 자신이 해미에게 선물했던 손목시계와 다른 여성 액세서리가 모여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종수는 벤이 비닐하우스가 아니라 해미를 없어지게 했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러던 중 벤의 집에 있던 고양이가 집을 나갑니다. 이 고양이가 해미의 집에 있던 고양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조심스럽게, ‘보일아’라고 불러봅니다. 보일이란 말에 반응하는 것을 보며 종수는 벤이 해미를 헤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파티 중간에 종수는 빠져나옵니다. 벤은 이런 종수를 따라 나옵니다. 그러곤 종수에게

‘ 종수씨는 너무 진지해, 그냥 가슴에서 울리는 베이스를 느껴.’

라고 말합니다.


이는 종수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거짓과 진실을 쫓다 보니, 오히려 더 복잡해진 머리, 그리고 언젠가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완전히 박살 냅니다. 무언이 진실인지가 아니라, 그저 느껴야 알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2시간 동안 정답만을 쫓아온 내 모습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릅니다.


이어 벤은 ‘아 아까 물어보려던 게 뭐였죠?’ 종수는 ‘아 이제 알 것 같아요. 괜찮아요.’라고 말한 뒤 신속히 집을 빠져나옵니다.

<벤의 집 근처에서 잠복하다가, 벤에게 걸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장면이었는데 모든 관객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Best Scene5. 없었다는 것을 잊으면 돼, 메타포 세계로의 입성


종수는 해미의 집에 들어가 소설을 써나 가기 시작합니다. 분명 이전에는 수수께끼 같은 세상이 어려워 쓰기 어렵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저 느끼기 시작했다. 종수는 자위행위 도중 해미를 침대로 불러들입니다.


이는 영화 초반 해미가 팬터마임을 하며, 없었다는 것을 잊으면 언제든 느낄 수 있다는 말을 종수가 완전히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종수는 진실과 거짓이 중요하지 않은, 메타포의 세계로 입성한 듯 보입니다.


종수는 시골 논으로 벤을 부릅니다. 그리곤 미리 준비해둔 칼로 벤을 수차례 찌릅니다. 벤은 처음 도망가는 듯이 보였지만, 이내 편안한 표정으로 종수를 껴앉습니다. 벤은 여태까지 자신이 비닐하우스를 태워왔지만, 어쩌면 자신도 그런 비닐하우스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큰 저항을 하지 않을 체 덤덤히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종수는 자신의 옷을 전부 벗어 벤의 차에 넣을 후 불을 지릅니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과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영화


사실 영화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방식을 택한다던가 밀도 높은 대화를 통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합니다.

셋의 불안한 관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이어지다 보니, 다 보고 났을 시점에는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볼 때 단서를 찾아 해석하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이 영화는 비웃듯이 할 수 있으면 해봐라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즈음엔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맞고 틀린 게 아니라 네가 느끼는 거야.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정말 관객의 지적 능력을 최대로 높이도록 돕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버닝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버닝을 검색하고 리뷰를 읽어봅니다. 하나 같이 모두가 다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런 점에서 버닝은 정말 좋은 영화이자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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