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

by 이인삼각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상담 직원을 마주쳤다. 빨간 아디다스 짝퉁 추리닝, 검정 슬리퍼, 담배 한 개피와 라이터를 들고 있는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외부 손님 오셔서 이 광경을 봤다면 얼마나 창피 했을까’ 짜증이 올라왔다. ‘어느 팀 소속인지 알아내서, 담당 리더까지 불러 뭐라고 해야하나’ 잠시 고민하는데 같이 근무하는 듯한 동료와 낮은 대화 소리가 들린다. ‘뭐, 그럭저럭 버티고 있어요. 할만 해요. 헤헤’.


지친 쇳소리 목소리와 여전히 가늘게 떨리는 그의 손목에 시선이 머물다가 불현듯 내 안의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친구의 사연은 무엇일까? 여러 번 취업에 실패했을까? 공무원 시험을 연달아 보았지만 유달리 시험날 운이 없었나? 아니면 가난한 시인인가? 몸이 아파서 계속 가난한 엄마에게 짐이 되고 있을까? 어느새 옆 동료와 ‘괜찮아요’, ‘화이팅’ 인사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그의 좁은 어깨와 가는 등이 보인다.


좋은 일자리가 점점 부족하다고 일자리의 양극화를 우려할 때 좋은 일자리로 상징되는 직업은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상장기업등의 정규직을 말한다. 그것은 고용안정 또는 높은 연봉으로 대표되며, 즉 삶을 꾸려 나가는데 있어서 큰 두려움 들을 최소한 극복했거나 방어할 조건들의 확보로 설명할 수 있다. 소개팅이나 맞선에서도 같은 ‘좋은 일자리’ 사람들끼리 그들만의 리그로 배우자를 찾는다는 기사도 읽었다. 사실 나도 미국유학을 다녀와서 외국계 컨설팅 회사가 첫 직장이었으니 소위 좋은 일자리로 경력을 시작했고, 아마도 그 덕택에 인연과 운이 이어져 지금 대표이사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좋은 일자리를 위해 알바를 해서 스펙을 쌓고 노량진에서 밤새 수험 서적과 싸우고 체력장도 준비하는 젊은 후배들을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 한 구석으로는 나의 아이들도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 할 텐데 근심과 염려가 매일 바닥에 계속 흐르고 있다. 깊은 강처럼 근심과 염려가 멈추지를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담직원들과 그들의 고단한 서비스 업무를 매일매일 바라보면서 상대적으로 느끼는 낙차 큰 괴리감이 있다. 너희들의 나쁜 일자리 덕분에 나는 좋은 일자리를 누리고 있는 것인가? 그 낯설고 미안함, 불편한 죄책감 때문에 나는 항상 질문들에 쫓긴다. 너는 누리기만 하다가 갈 것인가? 아니면 너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런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용의 안정은 최소한 만들자 마음 먹는다. 일할 의지가 있다면 계속 근무는 제공해보자.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새롭고 다양한 서비스 업무들을 늘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근무하는 동안에는 착한 환경은 제공하자. 깨끗하고 안전한 물리적 공간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인격적인 배려가 살아있어야 한다. 반말 찍찍하고 사람을 낮게 보는 무례함은 없어야 한다. 끝으로 자주는 아닐지라도 성장의 기회는 계속 제공되어야 한다. 승진, 승급, 연봉 인상을 넘어서, 보람이 있고, 배움이 있고 키가 클 수 있는 일을 구조하고 설계해줘야 한다. 외길이 아닌 다양한 가지들이 뻗어 있어서, 여러 색깔로 자기를 찾아갈 수 있는 성숙의 가능성들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 뒤로 그 직원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기도는 기억이 난다.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어떤 꿈과 좌절이 있었는지, 골짜기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많이 지치고 아파 보입니다. 그가 여기서 일을 하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여기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웃고, 건강해지고, 살아갈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동료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자신감이 일어나고, 굽은 등이 펴지고, 혹시 가능하다면 새로운 기회를 만나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는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톨스토이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천사는 이야기 한다. 과연 오래 일할 수 있을까?, 충분한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염려와 근심을 많이 줄여줄 수는 없을지라도, 한 사람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그래서 그가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는 곳이 좋은 일자리가 아닐까 소망을 가져본다. 생명에 생기를 더하기, 숙제로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