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면담

그의 인생에 경례하기

by 이인삼각

회의 끝나고 강 팀장이 지나가듯 이야기 한다.


‘저기, 윤 Supervisor(SV)가 퇴사 한답니다.’


윤 SV라면, 눈 웃음 예쁘고 여자 상담직원들에게 인기 많은 관리자 중의 한 명 아닌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경험이 많지 않을 텐데 타고난 리더십이 있는지 상담직원들이 잘 따르고 윗사람들도 아껴 하는 사람이었다. 남자 리더가 귀한 우리 회사에서 참 잘 뽑았다 내심 고마워 하고 있었는데 속이 쓰렸다.


‘이유가 뭐랍니까’.


‘회사에서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여러 번 설득했는데 쉽지가 않네요.’


상담직원만큼은 아니지만, SV 퇴사가 낯선 일은 아니다. 보통은 ‘알겠습니다’ 또는 ‘할 수 없지요’ 할 텐데,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혹시라도 내가 면담을 해서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있을까? 그렇게 웃으며 일하던 사람이 왜일까 순수한 호기심도 일었다.


쭈뼛하고 윤 SV가 찾아왔다. ‘사실은 아버지가 그만 두라 하셔요.’. 연봉이 너무 낮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 남자가 오래 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즉 연봉이 쉽게 오를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 가정을 꾸며야 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마음이 확 와 닿았다.


콜 센터의 초급 관리자, Supervisor 는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급여 면에서 상담 직원과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 잠깐의 경험으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특히 가정을 꾸미고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남자 직원들에게는 ‘장기적인 커리어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롤 모델이 많지 않았다.


‘아버지 친구분이 충청도에서 공장을 하시는데, 그리로 가라 하셔요. 연봉도 높고 숙식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기술을 배워두면 그래도 나중에 써먹을 곳이 있지 않냐고 하셨어요.’. 아버님 말씀에 조목조목 반박은 애초부터 어려웠다.


그의 결정에 최대한 예를 다해주고 싶었다. 그의 현재에 의미를 주고 싶었다.


‘거짓말 하고 싶지 않다. 아버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다만, 내가 보는 사실들 몇가지만 나누고 싶다. 첫째, 우리 산업이 계속 커지고 있다.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뒤로 후퇴할 수 없다. 더 친절하고 높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 콜센터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 밖에 없고 선진국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둘째, 우리 회사가 업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힘들었지만 꾸준히 따라잡아 현재 1-2등을 다투고 있다. 계속 성장하는 시장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1등 회사이기에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셋째, 콜 센터 업종에서 남자 리더가 절대 부족하다. 아직까지 남자가 대부분인 고객사와 협업을 위해서 남자 리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많은 여자 리더와 균형을 위해서라도 좋은 남자 리더들이 필요하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다.’


‘한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고 돌아서는데 표정 변화는 없었다. 몇일이 지나 잊고 있었는데 월례 조회 때 까불대고 옆 동료와 수다 떠는 윤SV 얼굴이 보였다. 다행이다 싶고, 나 때문이었을까 조금 우쭐해졌다.


윤 매니저는 이후 Manager, Account Manager, 그리고 팀장으로 계속 성장했고, 고마운 사람이 되 주었다. 얼마가 또 지났을까 윤 팀장이 퇴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만 높이 평가한 고객사에서 정규직으로 스카우트 한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영화 ‘사관과 생도’가 생각났다. 해군 항공 사관학교 신입생으로 입대하는 잭은 여러 마음의 상처로 인해 문제 훈련생이 된다. 호랑이 훈련 교관인 하사 폴리에게 찍혀서 퇴교 직전까지 가는 험난한 과정을 겪는다. 영화 마지막 장면, 드디어 하얀 정복의 신임 장교가 된 잭에게, 주임 상사 폴리가 엄숙하게 경례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고졸 학력에 콜센터 상담 직원 경력 뿐인 비전 없는 20대 남자. 숙식을 제공하는 지방 공장에서 조금 나은 미래를 기대했던 평범한 그가 대기업 정규직 관리자가 되었다. 하얀 목걸이 줄에 반짝이는 대기업 명찰을 하고, 로고 큼직한 명함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특유의 눈웃음을 보여준 그에게 나도 크게 거수경례를 했다.


아름다운 그대의 미래를 위하여,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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