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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7. 2017

Part 5. 1 꿈의 길 #1, 히말라야 무동력 횡단

파키스탄 산악스키

DREAM ROAD(꿈의 길)


히말라야

산스크리트로 hima는 '눈', ālaya는 '보금자리' 또는 '집'을 결합한 단어이다.

이 거대한 산맥은 파키스탄 북부의 낭가파르바트(8,126m) 산에서부터 티베트 남차바르와(7,755m) 산까지 서에서 동으로 2,400km를 잇는다.  남북 간의 너비는 200~400km, 전체 면적은 59만 4,400㎢이다.


파키스탄에서 시작해 대부분은 인도 영토이며, 산맥 중간에 네팔 및 부탄 왕국이 있다. 서쪽의 사막에서 동쪽의 밀림까지 태고의 원시림, 만년설을 두른 봉우리, 깊디깊은 계곡, 억겁의 냉기를 간직한 빙하는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이다.

남극, 북극과 함께 히말라야는 세계 3대 극지로서 탐험가의 영혼을 자극하는 곳이다. 한편, 하늘과 향해 솟은 고산들이 가득해서 일까?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해서 일까? 지구 상에서 가장 영적인 지역 중 하나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배낭여행을 돌아온 나에게 가슴 떨리는 소식이 찾아왔다. 박정헌 대장이 '이카루스의 꿈' 이후 3년을 준비한 원정대의 마지막 탑승권을 얻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이 원정은 SBS스페셜의 '인생횡단' 촬영팀과 함께하여, 3부에 걸쳐 방영될 것이라고 했다.


 X-히말라야 원정대는 국경과 종교를 초월한 세계 평화, 세계 자연문화유산 히말라야 보전과 홍보, 한국인의 도전정신 고양과 문화교류에 이바지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서 인류 본원의 자연 에너지를 이용한 무동력 익스트림 히말라야 횡단을 시작했다.


7월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공항, 공항을 나서자 한국의 8월의 더위가 그리 울 정도의 뜨거운 열기가 원정대를 맞이했다.

푹푹 찌는 더위를 피해 우리가 달려간 곳은 히스파 빙하(Hispar Glacier)였다. 히스파 빙하는 파키스탄 북부 지역의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49km 길이의 빙하로서 히스파라 패스(Hispara Pass)에 위치한 63km 비아포 빙하(Biafo Glacier)와 더불어 극지방을 제외하고 가장 긴 빙하지대를 이루는 곳이다.

최고 고도는 5,128m로 100km가 넘는 이 거대한 빙하 세상은 고대 두 산악 왕국, 서쪽의 나갈(Nagar 현재 훈자의 남쪽)과 동쪽의 발티산(Baltistan)을 이어준다.

비아포 빙하의 아스꼴리(3천미터)라는 작은 마을이 우리 원정대의 출발점이었다.


 마을에서 모닝 짜이를 마시며 쿠키를 먹은 후, 따뜻해진 배를 문지르며 트레킹을 출발했다.

여권 검사 및 방문자 출입 서류를 등록하며, 문명과 단절된 미완의 세계로 진입한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빙하 길이 나타났다. 빙하를 밟으며 걷고 있다는 행복한 설렘도 잠시 쌀쌀한 날씨가 옷을 파고들어온다.

처음 마주한 빙하와 크레바스에 논란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크레바스는 점점 커져갔다.

산악스키를 위한 빙하 트레킹을 나선지 이틀째,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경건함이 부족해서였을까? 가이드는 오후 5시경 길을 잃어버렸다. 짐을 가지고 먼저 올라간 셰르파와 포터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는 당황하여 끊임없이 휘파람으로 동료를 찾았고 원정대는 극심한 추위와 탈진 증세로 조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빙하를 타고 불어오는 찬바람과 시퍼런 어둠 사이 검은 크레바스는 가슴 깊은 곳까지 두려움을 몰고 왔다. 엄습한 공포가 나를 잠식하지 않게 냉정하려고 노력했다.


 랜턴 불빛에 의지해 얼마나 헤맨 걸까? 길을 잃어버린지 몇 시간이 지나도 앞서간 포터와 셰르파를 찾지 못했고, 처음 겪는 죽음의 공포와 피곤은 일행의 걸음 속도를 현재하게 느리게 만들었다.

박대장님은 우리를 소집했고 촬영팀과 대원들의 눈길은 대장님의 얼굴을 향했다.

"어두운데 계속해서 걷는 것은 위험하니, 비박을 고려해보자"

그때였다. 저 멀리 산 중턱에 깜박이는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낱같은 한 줄기 빛은 모두를 안도의 한숨짓게 했다.

빛을 따라 한 시간을 걸어, 마중 나온 셰르파와 포터를 만날 수 있었고, 다시 한 시간을 더 걸어서야 노란 텐트를 볼 수 있었다. 혹독한 신고식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텐트가 쳐진 곳은 30m 정도의 계곡길을 건너야 갈 수 있었다. 빙하 위에서 조난 당한 6시간 동안의 두려움에는 미치지 않았지만, 뼈 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빙하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음 날은 조금 일찍 텐트 사이트에 도착하여, 멋진 풍경을 뒤로한 채 인터뷰도 하고 어제저녁 그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다. 고도가 4천 미터를 넘어서고 있었고 물은 점점 귀해졌기에 마지막 샤워가 될 것이다.

   빙하지대를 걸은지 5일 만에 눈이 나왔다. 눈과의 만남은 스키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칼포라에서 스노우레이크까지 오르는 길은 짐을 썰매에 실어 몸에 연결하여 산악스키로 올랐다. 만년설을 처음 접한 촬영팀은 피곤함에 초주검이 되었지만 스노우레이크는 이름 그대로 온 세상은 눈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아니! 눈의 바다에 가까웠다.


 스키 등반을 계획했지만, 눈의 세상에 들어온 우리를 못 마땅하게 여겼는지 날씨가 심술을 부려 텐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 날은 내 생일이었고 난 다시 한번 산과의 인연에 감사를 표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광활한 눈과 자연의 품 속에서 생일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난 분명 축복받은 사람이다.'

다음 날은 새벽부터 내린 눈을 털어내고 스키 등반에 나섰다.

경사가 완만한 능선길로 등반하여 하강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스키로 히말라야의 눈 위를 내달리는 기분은 한마디로 '짱'이었다.

새벽에 내린 눈은 건조했지만 스키를 타기 충분한 양이었다. 고글 너머 만년설로 뒤덮인 산들이 우리를 구경했고, 평화로운 고요는 우리를 축복했다.

 사실, 상현이는 산악스키 국가대표 출신이고 박정헌 대장님은 산악스키의 전문가였지만 나는 이 원정에서 산악스키를 처음 접한 초보 중 왕초보였다.

오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내려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안재민 촬영감독님이 나의 어정쩡한 자세를 보시더니, 한 마디 날리셨다.

"그럴 거면 시원하게 굴러!"

"하하하.. 노력해볼게요(긁적긁적)"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실천이 쉽지 않았다. 몸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무서워서 그런지 엉덩이가 뒤로 빠져 속력은 더 올라가고 컨트롤 능력은 없었다. 당연히 넘어졌지만, 그 모습은 스펙터클하지 못했다. 핑계를 되자면 한국의 스키장 같았으면, 시원하게 구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신이 다스리는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이었다.

내 부족한 스키 실력과는 상관없이 대장님과 상현이의 멋진 모습은 카메라에 기록되었고, 히스파-비아포빙하를 찾은 주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어느덧 스노우레이크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을 남겨둔 체 히스파 빙하로 넘어가기 위해 스노우 레이크를 내려다보던 고개를 향한다.

 고개의 정상이 눈에 보이자 능선에 오른 포터와 셰르파들이 '파키스탄 진다발! 파키스탄 진다발(파키스탄 승리)'를 외치며, 마지막 힘을 짜내어 이 트레킹의 최고 고도 5,500m 지점을 향해 오른다.

원정대와 촬영팀은 의류와 장비라도 갖췄지만, 파키스탄의 가난한 산골마을에 살며 1년에 겨우 몇 팀 찾아오는 원정대에 포터와 셰르파로 일하는 이곳 사람들의 장비는 아주 열악하다. 더구나 전문적 산악 교육을 받지도 않았기에 이들에게는 오천 미터의 설산을 넘는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낡은 신발과 옷에 스며든 땀이 얼어붙은 표면을 보며 삶의 강인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눈 덮인 지대를 지나고 빙하가 드러났다. 빙하는 더위에 지친 친구들이 녹은 파란 물 위에 떠 있었고, 조금 더 지나자 계곡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도가 내려가면서 눈의 세상은 야생화 천국으로 바뀌었다. 보라색, 노란색, 각양각색의 야생초들이 문명세계가 가까워져 옴을 알리고 있었다. 고산에만 핀다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에델바이스도 보였다.


흙탕물의 계곡을 맨발로 지나던 상현이는 예리한 돌에 발이 찢어져 어려움을 겪었다.

절뚝절뚝 한 발 한발 걷는 것이 고역이었으리라.

최고 고도를 넘어왔지만 환경이 편안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새벽은 추웠고, 내리쬐는 햇살을 뜨거웠다. 더구나 안전한 식수원이 부족하여 원정대 모두 갈증을 안고 걸어야 했다.


제법 키가 큰 나무들이 보이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마을에서 올라온 꼬마들이 음료수와 과자를 잔뜩 가지고 지친 원정대에게 장사를 했다. 우리는 음료수의 꼼짝없는 포로였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지친 육신을 달랬다.


마을 너머 산 중턱에 노을이 걸리고, 힘든 여정을 무사히 마친 모두를 위해 대장님은 양고기파티를 열었다. 길을 잃어 원정대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가이드도, 무거운 촬영 장비, 식량, 각종 장비를 언제나 웃는 얼굴로 들어준 포터도, 찢어진 발가락을 절뚝이며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내려온 상현이도, 유일한 여자로서 말 못한 고생을 했을 김현정 조연출도 한 손에는 양 꼬치를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문명세계로 귀환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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