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불행사회가 던진 가장 불편한 질문
오늘 나는 “자살은 더 이상 자살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붙잡고 한참을 서 있었다. 이 말은 과격하다. 더 정확하다. 우리는 죽음을 개인의 선택으로 정리해버리는 데 너무 익숙해졌다. 그러나 숫자는 매번 같은 질문으로 되돌려 세운다. 2024년 자살 사망자 14,872명, 자살률 10만 명당 29.1명. 2011년 이후 가장 높았다.
여기서 내가 정말 듣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왜 죽고 싶었나요?”가 아니라 “당신을 죽음 쪽으로 ‘밀어낸’ 것은 무엇이었나요?”
책 《최소불행사회》가 불편한 이유는 행복을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딱 한 가지를 묻는다. “더 나빠지지 않을 방법이 있느냐”고. 이건 낙관이 아니라 유지보수다. 사회를 ‘꿈’으로 설계하지 말고 파국을 막는 안전장치로 다시 짜자는 제안이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읽었다.
행복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그래서 국가는 행복을 강제하면 안 된다. 하지만 불행은 놀라울 만큼 공통적이다.
병원비와 돌봄비에 무너지는 ‘돌봄 파산’
고립 속에서 늙어가는 1인 가구
서로를 모르는 세대 간 단절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회적 고립
고립은 통계로도 모습을 드러낸다. 2024년 고독사 사망자 3,924명(전년 대비 +7.2%).
이 지점에서 “자살은 타살”이라는 문장이 이해된다. 누가 칼을 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안전망의 나사를 풀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칼은 한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지만 그 손을 떨리게 만든 구조는 사회 전체의 책임 영역에 있다.
《최소불행사회》의 해법들이 ‘금기’처럼 들리는 게 정상이다.
폐교를 시니어 대학 타운으로 바꾸자, 돌봄 연대 비용을 지금 올리자, 수도권 메가시티세 같은 새로운 재원을 말하자, 고령화 기금을 만들자 듣는 순간 불편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불편함이 싫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불편함은 “누군가의 고통을 개인 탓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배운 건 측정 방식이다.
행복을 KPI로 삼으면 국가는 자꾸 성과를 ‘홍보’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을 KPI로 삼으면 국가는 사고를 줄이고 고장을 고치고 낙오를 회수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즉,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더 높은 천장”이 아니라 “더 단단한 바닥”을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부자도, 빈자도 모두 늙고 약해진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돌봄은 미래의 나에게 드는 보험이 된다. 보험은 개인 혼자 설계할 수 없다. 연대는 기술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동적인 캠페인이 아니라 최소불행을 막는 시스템 설계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소불행 사회”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돈(소득/주거) 인가,
관계(고립/세대 단절) 인가,
돌봄(의료/요양/가족 부담) 인가.
만약 지금 이 글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 자살예방상담전화 109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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