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이다”는 사과가 아니다

책임 회피의 정치학

by DataSopher


정치인의 사과는 대체로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없거나, 가짜이거나.


“유감이다.”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안타깝다.”

“본의는 아니었다.”


이 문장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입니다.

책임의 주어가 없다는 것.


사과는 원래 문장의 구조가 단순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 언어는 철저하게 계산된 문법을 사용합니다.

행위는 삭제하고 영향은 축소하고 책임은 희석합니다.


왜일까요?

사과는 리스크이고 책임은 공격 포인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지층 정치에서 사과는 ‘패배’로 번역됩니다.

정치는 반성보다 결집을 택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정치가 사과를 포기하면 사회는 무엇을 배우는가.


우리는 매일 TV와 SNS를 통해 그 장면을 학습합니다.

책임 회피, 말 돌리기, 상대 탓, 맥락 왜곡.

우리 일상에 스며듭니다.


회사에서

“내가 잘못했다” 대신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가정에서

“미안하다” 대신 “너도 잘한 건 아니잖아?”


정치인의 언어는 사회의 평균을 낮춥니다.

시스템 붕괴의 전조입니다.


OECD 조사에서 한국의 정부 신뢰도는 최근 몇 년 사이 뚜렷하게 하락했습니다.

신뢰는 인프라입니다.

도로처럼, 전기처럼, 눈에 안 보이지만 사회를 지탱합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들은 선의를 전제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든 관계는 계약이 되고,

모든 대화는 증거가 되고,

모든 결정은 방어가 됩니다.


회의는 길어지고 규정은 두꺼워지고

서로를 믿지 못하니 시스템이 비대해집니다.


정치인의 사과 한 문장이

국가의 거래비용을 높이는 이유입니다.


더 위험한 건 모방 효과입니다.


사과하지 않는 정치인을 오래 보다 보면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1. 냉소한다. “원래 저래.”

2. 닮아간다. “나도 굳이 사과 안 해도 되겠네.”


냉소는 참여를 죽이고

모방은 윤리를 마비시킵니다.


그렇게 사회는 조용히 둔감해집니다.


사과하지 않는 정치인은

자존심을 지킨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준을 낮춘 것입니다.


사과는 약함이 아닙니다.

권력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사과는

“나는 책임을 질 만큼 강하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책임질 용기가 없는 리더십을 보고 있습니다.


더 솔직해져봅시다.


정치인이 사과하지 않는 건

전략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그리고 그 계산은

시민의 기억력이 짧다는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왜 사과하지 않는 사람을 계속 용인하느냐입니다.


투표에서, 여론에서, 일상에서

우리가 요구하지 않으면

기준은 더 낮아집니다.


정치는 시민의 평균을 닮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과를 하지 않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사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문장은 단순하지만

사회적 복원력을 높이는 문장입니다.


정치가 망가뜨린 기준을

시민이 복원하지 않으면

그 비용은 결국 우리 몫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과하지 않는 정치인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이 불편하다면,

아마 지금 이 글이 필요한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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