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이후, 먼저 온 미래까지
시대를 생각하는 내 인생 최선의 작가, 장강명
가끔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살던 시대의 로그(log)를 복구하는 기분이 든다. 어떤 작가는 문장을 쓰고 어떤 작가는 세계를 그린다. 그런데 장강명은 이상하게도 시대를 ‘측정’한다. 온도계처럼. 아니 더 정확히는 센서 네트워크처럼. 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말과 침묵, 제도와 시장, 유행과 불안이 동시에 찍힌다.
그의 이력 자체가 그 감각을 설명한다. 기자로 일했고 소설가가 됐고 그 사이에 취재의 근육을 잃지 않았다. “월급사실주의 소설가”라는 소개는 농담 같지만 한국의 많은 불행이 사실 월급(=고정비)과 계급(=기회비용)에서 출발한다는 걸 생각하면 꽤 정확한 분류다. 그는 2011년 《표백》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댓글부대》 등 여러 작품으로 문학상도 받았다. 요즘은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을 운영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혼자 쓰는 작가가 아니라 읽는 사람들의 집단지성을 실험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내가 장강명을 “인생 최선”이라고까지 말하게 된 이유는 그가 위로를 잘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그는 위로를 너무 빨리 주지 않는다. 그 대신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너는 이 시대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나?”
그 질문은 늘 불편하다. 불편함은 대개 진실의 선행지표다.
장강명의 소설이 시대를 다루는 방식은 ‘거대한 담론’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작고 구체적인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댓글, 취업, 합격, 당선 같은 단어들이 그의 세계에서는 사회 시스템의 버튼이 된다. 버튼을 누르면 어떤 감정이 출력되는지 어떤 사람이 배제되는지 어떤 믿음이 강화되는지 그는 그 인과를 보여준다. (이게 내가 말하는 “데이터적 소설”이다. 숫자를 쓰지 않아도 변수와 결과가 선명하면 데이터다.)
최근작 흐름에서도 그의 관심사는 선명하다. 예를 들어 2025년에 나온 르포 성격의 책 《먼저 온 미래》는 AI 이후의 세계를 ‘바둑’이라는 특정 장에서 관찰한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바둑은 직관과 계산, 장인정신과 확률이 맞부딪히는 곳이고 AI가 인간을 압도한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그 영역을 통해 “인간의 전문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재정의되는지 묻는다.
여기서 나는 장강명을 비판적으로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가끔 너무 정확해서 독자가 스스로를 변명할 틈을 안 준다. 어떤 독자에게는 그게 “차갑다”로 읽힐 수 있다. 또 어떤 독자에게는 현실을 지나치게 ‘체계’로 환원한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지점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본다. 지금 한국 사회는 친절한 서사보다 정확한 진단이 더 부족하다. 위로는 넘치는데 구조가 안 보인다. 장강명은 구조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 있나?
장강명의 책이 주는 희망은 “다 잘 될 거야” 같은 종류가 아니다. 그의 희망은 더 공학적이다. 관측 → 언어화 → 공유 → 수정. 우리가 시대를 읽을 수 있다면 최소한 시대에 속아 넘어가진 않는다. 내가 장강명을 읽고 느끼는 가장 큰 효용은 이거다.
시대는 늘 우리를 조용히 설득한다. 장강명은 그 설득의 문장을 해체한다.
해체할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조립할 수도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는 장강명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 결론에 도착한다.
좋은 작가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운영체제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결론.
장강명은 바로 그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시대를 생각하는” 작가라고 부른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시대에 그 역할은 너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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