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하는 사람은 정말 게으른가

포괄임금제가 숨긴 한국 회사의 진실

by DataSopher

회사에서 누군가를 두고 “일을 못한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 말은 대체로 아주 단정적입니다. 느리다, 센스가 없다, 성과가 없다, 책임감이 부족하다.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을 들을 때마다 늘 한 가지가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정말 일을 못한 것인가, 아니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었던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한국의 많은 직장은 오랫동안 사람의 능력을 결과로만 판단해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개인의 재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업무 설계, 보고 체계, 불필요한 회의, 상사의 즉흥적 지시, 퇴근 후 연락, 모호한 역할 분담, 그리고 무엇보다 끝없이 늘어나는 노동시간이 결과를 바꿉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믿었던 것들 중 상당수는 사실 개인의 자질보다 시스템의 결함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포괄임금제가 등장합니다. 포괄임금제는 원래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일부 직무에서 정액으로 수당을 미리 반영하는 취지로 설명돼 왔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자주 “얼마나 더 일해도 추가비용이 거의 늘지 않는 구조”로 작동했습니다.


2026년 2월 고용노동부는 서비스업, IT·소프트웨어, 영상·콘텐츠 등 청년 다수 고용사업장 약 100개사를 대상으로 포괄임금 오남용 기획감독에 착수했고, 실제 일한 만큼의 연장·야간·휴일수당 미지급 여부와 근로시간 기록·관리 부재를 중점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스스로도 이 문제가 현장에서 반복되는 ‘공짜 야근’ 구조라고 본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더 깊어집니다.

회사는 시간을 싸게 쓰는 데 익숙해질수록 일을 비효율적으로 설계해도 아프지 않습니다. 회의가 길어도, 보고가 중복돼도, 야간 메시지가 쏟아져도, 누군가의 저녁과 집중력과 수면이 비용 처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관리자는 시스템을 고치기보다 사람을 탓하게 됩니다. 업무 프로세스가 낡았는데 “요즘 직원들은 끈기가 없다”고 말하고, 목표가 비현실적인데 “일머리가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구조의 실패가 개인의 무능으로 됩니다. 그러면서 회사는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합니다.




한국은 여전히 오래 일하는 사회입니다.

KOSIS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865시간으로 일본 1,617시간, 캐나다 1,697시간, 미국 1,796시간보다 길었습니다. 게다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2025년 이슈페이퍼에서 한국의 취업자 기준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평균보다 130시간 길고, 주 5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자 비율도 OECD 평균보다 높다고 짚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여전히 시간을 많이 투입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설계와 낮은 신뢰를 메우는 문화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오래 일하는 조직이 꼭 더 잘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시간 노동은 판단력을 흐리고, 창의성을 깎고, 실수를 늘리고, 관계를 거칠게 만듭니다. 결국 회사는 더 많은 시간을 가져갔지만 더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면 다시 사람을 압박합니다. 이 악순환 속에서 “일 못하는 사람”은 계속 생산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무능한 사람이 많은 사회가 아니라 무능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직장이 많은 사회에 더 가깝습니다.




법적으로도 포괄임금제는 무제한 면허가 아닙니다. 대법원은 노동관계법령 적용을 회피할 의도로 형식적인 소정근로시간 합의를 두는 경우 그 효력을 부정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즉, 외형상 계약을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실질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최근 정부도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과 감독 확대를 통해 포괄임금 오남용을 줄이고 근로시간 기록·관리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을 예고했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 출발점이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사람을 비용으로만 보면 시간을 무한정 가져가려 하고, 사람을 성과의 주체로 보면 시간을 존중하게 됩니다. 전자는 “버텨라”를 요구하고, 후자는 “잘할 수 있게 설계하자”를 고민합니다.




좋은 조직은 사람을 오래 붙잡아두는 조직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더 명료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조직입니다. 그리고 좋은 사회는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더 오래 일하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니라 제대로 일한 시간에 정당한 값을 치르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일을 못하지?”가 아니라

“왜 이 조직은 사람이 잘 일할 수 없게 만드는가?”로요.




문제의 시작은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구조의 무책임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구조를 가장 오래 숨겨준 언어가 바로

‘일 못하는 사람’이라는 너무 쉬운 낙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포괄임금제의 핵심 문제는 책임의 비가시화입니다. 회사가 시간을 공짜처럼 쓰면 관리의 무능은 감춰지고 노동자의 삶만 닳습니다.


“일 못하는 사람”을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부터 공개하는 조직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게 공정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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