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동화 ♣
봄볕이 마치 햇솜을 넣어 만든 이불속처럼 따뜻합니다.
윤희는 아침밥을 먹기가 무섭게 햇볕이 잘 드는 공터로 나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늘도 옆집에 사는 찬수와 재미있게 부부 놀이를 할 생각입니다.
찬수는 신랑, 그리고 윤희는 으레 신부가 되는 신혼부부 놀이입니다.
윤희는 예쁜 장난감 살림살이들을 예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밥도 짓고 찬수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립니다. 찬수가 좋아하는 얼큰한 콩나물국도 이미 끓여 놓았습니다.
"찬수가 오늘은 왜 이렇게 늦을까? 아마 회사 일이 더 바빠진 모양이지."
윤희가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가끔 아빠가 회사에서 늦게 돌아올 때마다 엄마가 혼자 중얼거리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회사 일이 바쁜 게 아니라 혹시 어디서 술타령이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던데……. 우리 신랑은 술을 너무 좋아해서 그게 늘 걱정이라니까"
바로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갑자기 윤희의 등을 톡톡 건드립니다. 그건 보나 마나 늦게 나온 찬수가 윤희 앞에 바로 나타나기가 쑥스러워서 하는 짓임에 틀림없습니다.
윤희는 늦게라도 나와 준 찬수가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운했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맙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맨날 이렇게 늦으면 어떻게 해?"
윤희는 약간 눈을 흘기면서 일부러 토라진 듯한 목소리로 화를 내며 뒤를 돌아봅니다.
"어엉? 그런데 찬수가 아니잖아?"
윤희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금 윤희의 등을 건드린 것은 찬수가 아니라 윤희네 바둑이였습니다.
"그렇게 몰래 와서 장난을 치면 어떻게 해! 빨리 저리 비키지 못해!"
바둑이한테 속은 윤희는 화가 났습니다.
손으로 바둑이의 등을 힘껏 때리면서 어서 저리 가라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하지만 바둑이는 지금 윤희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때리고 소리를 질러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윤희가 때리면 때릴수록 뭐가 그렇게 좋은지 꼬리까지 번쩍 쳐들고 힘껏 흔들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면서 있는 대로 야단법석을 떱니다.
"으아앙~ ~ 난 모른단 말이야, 이잉~~~ "
윤희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바둑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그동안 정성껏 차려 놓은 식탁이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고 만 것입니다.
잘 차려 놓은 밥도, 반찬도, 그리고 찬수가 좋아하는 콩나물국도 모두 엎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이잉~~~ 이게 다 찬수가 얼른 나오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란 말이야."
윤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 길로 곧 찬수네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분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잉~~~ 찬수야! 너 왜 여태까지 안 나오느냔 말이야?"
어느새 찬수네 집 문 앞에 다다른 윤희는 큰 소리로 찬수를 불렀습니다.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아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면서 몇 번이고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그러자 조금 뒤에 조심스럽게 방문이 열리면서 찬수 엄마가 나타나면서 환한 얼굴로 반깁니다.
"아이고 우리 이쁜이 왔구나?“
"찬수 집에 있어요?"
윤희는 여전히 잔뜩 심통이 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너희들 또 소꿉놀이하려고 그러는 거지?"
"……?"
윤희는 대답 대신 고개만 약간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찬수 엄마의 입에서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넌 아직 멀쩡하구나. 우리 찬수 녀석은 어제저녁부터 감기에 걸려 방에서 지금 끙끙 앓고 있다니까."
"네에? 감기에 걸렸다고요? 왜요?
윤희는 찬수가 아프다는 바람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찬수가 소꿉놀이를 나오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왜긴 왜야. 너희들 어제도 늦게까지 밖에서 소꿉놀이를 하지 않았니? 요즈음 봄철이긴 하지만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윤희 너도 찬 바람 쐬지 말고 조심해야 된다 이거야. 알아들었니?"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난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왜 찬수만 걸렸지?"
윤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찬수 엄마가 말했습니다.
"호호호……. 아마 우리 찬수보다 윤희가 더 예쁘고 건강하니까 찬수만 걸린 거 아닐까? 우리 찬수는 워낙 약골이지 않니?"
"으응, 그랬었구나!"
"아줌마, 저 그럼 찬수 얼굴 좀 보러 잠깐 방에 들어가도 돼요?"
"안 될 거야 없지만 너까지 감기 옮으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난 예쁘고 건강해서 감기는 잘 걸리지 않거든요."
"그래? 그럼 잠깐 들어가 보렴. 호호호…….“
윤희의 대답에 찬수 엄마는 입가에 절로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면서 윤희를 방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음, 아직도 이마에 열이 이렇게 많은데요. 이걸 어쩌면 좋지?"
찬수의 이마를 짚어 본 윤희는 금방 울상이 되고 맙니다.
"약은 먹이셨어요?“
"아암, 벌써 먹이고말고."
"그럼, 이번엔 콩나물국을 끓여다 먹여 볼까요? 찬수는 콩나물국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감기에는 따끈따끈한 콩나물국이 아주 그만이래요.”
윤희의 말에 찬수 엄마는 연신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윤희가 너무 귀엽고 대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콩나물국이라니? 그게 어디 있는데?"
"아까 소꿉놀이하려고 제가 끓여 놓았거든요. 그런데 찬수를 기다리는 동안에 우리 바둑이가 모두 엎어 버리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또 끓이면 금방 되니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아셨죠?"
윤희는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니다. 됐다, 됐어. 넌 정말 아는 것도 많구나. 윤희가 우리 찬수 걱정을 이렇게 하는 걸 보니 내일 당장 시집가도 되겠는걸. 호호호…….“
찬수 엄마는 윤희가 대견스럽고 귀여워 못 배기겠다는 듯 두 팔로 꼬옥 껴안았습니다.
"......?"
갑자기 찬수 엄마 품에 안기게 된 윤희의 표정은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그런 윤희의 표정이 그렇게 흐뭇하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