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동화 ♣
할아버지는 어쩌다 남풍이 불어오는 날이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뒷동산 위로 올라가서 연을 날리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날리는 연은 늘 태극무늬가 큼직하게 그려진 방패연이었습니다.
연을 하나만 날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대여섯 개, 그리고 열 개도 넘는 연을 들고 뒷동산에 올라 하늘 높이 날리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젊지도 않았습니다. 머리가 온통 백발로 뒤덮인 팔십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연을 그렇게 열심히 날리곤 하였습니다.
그날도 마침 이른 아침부터 할아버지가 기다리던 남풍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가 춤을 추며 흔들릴 정도로 제법 강한 남풍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허어, 오늘은 다른 날보다 연이 더 높이 잘 날아오르겠는걸!“
할아버지의 표정이 금세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해맑아졌습니다. 신바람이 난 할아버지의 입어서는 어느새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조금 서툴기는 했지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르고 있었습니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토옹일…….“
할아버지는 곧 벽에 걸려 있는 연을 서둘러 챙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정성 들여 만든 방패연이 방 안 가득 무려 수십 개나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요즈음 며칠째 쉬지 않고 정성껏 만든 연들이었습니다. 방바닥 여기저기에는 창호지와 댓가지 등 연을 만들 때 쓰는 재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첫눈에 봐도 할아버지가 연을 얼마나 열심히 만들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간 나는 대로 연을 만드는 일이 유일한 취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연을 만들 때마다 질긴 창호지를 적당히 자른 다음, 그 창호지 위에는 늘 판에 박은 듯한 똑같은 내용의 글씨를 정성껏 써놓곤 하였습니다.
”임자, 임자가 보고 싶어 정말 미칠 것만 같소. 우리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살아남아서 부디 건강한 몸으로 그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합시다."
할아버지는 몹시 외로운 분이었습니다.
해마다 6·25 전쟁이 일어났던 6월이 오면 그 외로움과 그리움이 더욱 뼛속까지 깊이 파고들곤 하였습니다.
원래 할아버지의 고향은 북한이었습니다. 결혼을 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그놈의 날벼락 같은 6.25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북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할아버지 역시 불행하게도 하루아침에 정든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홀로 남쪽으로 내려온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70여 년이란 기나간 세월을 홀로 외롭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가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토록 부모 형제가 그립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북에 홀로 남겨 놓고 온 아내였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늘 할아버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기나 한지 워언,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할아버지는 자나 깨나 아내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그야말로 피가 마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문득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옳지! 그렇게 하면 혹시 소식을 전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때부터 아내에게 소식을 꼭 전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연을 만들어 날리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입니다.
혹시 운이 좋으면 북에 두고 온 아내가 그 연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바로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연을 열심히 만들게 된 이유가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다음 날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연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드는 연은 대부분 큼직한 방패연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풍이 불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뒷동산으로 올라가 연을 날리며 수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이 하늘 높이 까마득하게 날아올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연실을 뚝 끊어버리곤 하였습니다.
연이 북쪽으로 멀리 날아가서 가족들 또는 아내의 눈에 띄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연을 날려버린 뒤에는 다시 또 다음 연을 날리는 일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북쪽을 향해 날려 버린 연의 수만 해도 어림잡아 수백 개, 아니 천 개가 훨씬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애타게 그립고 보고 싶은 가족과 아내의 소식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볼 수가 없는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음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불안하고도 조마조마합니다. 몇 해 전부터는 자신의 건강이 전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쇠잔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몇 해를 더 보내다가는 그리운 가족들의 소식을 들어보기는커녕 그 전에 숨을 거두고 말 것만 같다는 불안한 생각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집니다.
"내 형제 그리고 내 아내를 만나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람. 천에 못된 놈들 같으니라구!“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습관처럼 원망스러운 욕설이 흘러나왔습니다.
해마다 이산가족들을 하루속히 만나게 해달라고 그토록 매달리며 애원을 하고 있지만, 북한 놈들은 그때마다 무슨 꿍꿍이 속인지 이런저런 핑계로 뒤로 미루곤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곧 벽에 걸려 있는 여러 개의 연들 중에서 일곱 개를 골라 방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방바닥에 내려놓은 연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가 어젯밤에 밤을 꼬박 새워 가며 새로 만들어 놓은 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들마다 늘 그랬듯 할아버지가 손수 또박또박 눌러 쓴 글씨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바람이 이렇게 잘 부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편지를 더 많이 써 둘 걸 그렸지!“
할아버지의 표정은 금세 아쉬운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곧 연과 얼레 그리고 꽤나 여러 뭉치나 되는 실타래까지 챙겨 들고 서둘러 문밖을 나섰습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뒷동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젊은이들도 쉽게 오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제법 가파른 산이었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세게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헉, 허억, 어이구, 숨 차라, 쿨럭쿨럭…….”
산을 오르고 있는 할아버지는 오늘따라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아무리 참아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연신 거친 기침 소리도 심하게 나옵니다.
숨이 차고 힘에 겨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땅바닥에 잠깐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를 쓰고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연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날려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있는 힘을 다해 무리를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의 일이었습니다.
"연 할아버지가 그만 쓰러지셨대요.“
"오늘도 연을 날리려고 산을 올라가다가 쓰러지신 것을 등산객이 발견했다지 뭐여요."
"자나 깨나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그렇게 무리를 하시더니 그예 돌아가시고 말았구먼, 쫓쯧쯧…….“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술렁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무심한 남풍은 점점 더 강하게 잘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가 날리는 연은 더 이상 하늘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