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들국화 꽃다발

♣ 창작동화 ♣

by 겨울나무


"으이그, 바보처럼 왜 말을 못하고 친구들한테 늘 놀림을 받을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민수는 요즈음 윤희를 볼 때마다 공연히 마음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마음만 아픈 게 아닙니다. 어떤 때는 울컥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합니다.

윤희를 볼 때마다 공연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윤희와 민수는 같은 반입니다. 더구나 같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윤희는 남달리 얼굴이 잘 생기고 예쁘게 생겨서 누구나 첫눈에 반하곤 합니다. 한마디로 얼짱입니다.

그런데 민수가 가끔 윤희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는 것은 윤희가 너무 착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어수룩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유 없이 괴롭혀도 단 한 번도 대드는 법이 없이 그냥 져 주기가 일쑤였습니다.

윤희는 그렇게 어수룩하고 착해서 아래 학년인 조그만 아이들한테도 놀림을 받는 아이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린아이들이 때려도 마치 바보처럼 아무 대꾸 없이 그냥 맞기가 일쑤입니다.

더구나 윤희에게는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누가 말을 시켜도 여간해서는 전혀 대답을 안 합니다.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못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윤희가 말을 하는 걸 본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선생님이 말을 시켜도 안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다 누가 말을 걸어오면 고작 고개만 끄덕이거나 좌우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하는 것이 의사 표현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윤희는 늘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받거나 바보 취급을 받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윤희였기에 별명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윤희를 부를 때마다 친구들은 이름 대신 바보, 병신, 쪼다. 똘아이, 벙어리, 천치 등으로 부릅니다.

‘그렇게 예쁘고 착하게 생긴 아이가 왜 말을 못하는 거지?’

민수는 그런 윤희를 볼 때마다 몹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공연히 속이 상하고 가슴 속이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일은 오늘 또다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마침 학교에서 음악 실기 시험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저마다 설레는 마음을 달래가면서 이 시간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오늘 이 시간을 위해 그동안 연습도 많이 하였습니다.

마침내 음악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출석부 순서에 따라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습니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친구들이 한 명씩 긴장된 얼굴로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저마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해온 노래를 친구들 앞에서 마음껏 뽐내며 부르곤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고운 노랫소리는 교실 가득 곱고 아름답게 울려 퍼져 나가곤 하였습니다.

”히야아~~! 끝내주게 잘 부른다!“

”짝! 짝! 짝……!“

숨을 죽이며 노래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친구들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함성을 지르며 힘찬 박수를 쳐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마침내 윤희의 순서가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윤희가 나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윤희의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차마 그냥 넘어가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자, 이번에는 윤희 차례인데 어떻게 할까? 이런 기회에 윤희도 한번 멋지게 불러보지 않을래?”

“……!!”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윤희에게로 쏠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윤희 차례가 돌아오면 어떻게 넘어가게 될는지 벌써부터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든 시선이 윤희에게 쏠리고 있는 동안 교실은 마치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자리에 앉은 채 망설이고 있던 윤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것입니다. 그리고는 조금도 서슴없이 선생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의외라는 듯 아이들의 눈이 모두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짝! 짝! 짝!”

“히야,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이지? 윤희가 앞으로 나가고 있잖아?”

“그러게 말이야. 쟤가 웬일이니?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겠는걸”

아이들은 저마다 신기하다는 듯 두 눈이 둥그렇게 된 채 웅성거리며 박수 소리가 교실 안 가득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윤희의 움직임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윤희가 뜻밖에 앞으로 나가자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그 누구보다도 민수였습니다. 윤희가 과연 음악 시간을 어떻게 넘기게 될까 하고 속으로 은근히 애를 태우며 걱정을 하고 있던 민수였기 때문입니다.


민수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듯 아무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숨을 죽인 채 초조한 마음으로 윤희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다시 수군거리며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히야! 별꼴을 다 보겠네. 쟤가 정말 노랠 부르려고 나간 걸까?”

“그걸 누가 알겠니. 더 두고 봐야 알지.”

“지금까지 벙어리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럼 그게 아니었나 봐. 그치?”

이번에는 선생님까지 의외라는 듯 그러나 몹시 고맙다는 듯 윤희를 바라보며 재촉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와! 우리 윤희가 오늘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왔네. 자, 그럼 기왕에 나왔으니까 어서 한번 멋지게 불러보렴. 그럼 무슨 노래를 불러볼까?"

“……!!”

선생님이 몇 번이나 이렇게 물으며 재촉을 해보았지만 굳게 꼭 다믈고 있는 윤희의 입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그러자 한동안 멀거니 윤희만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이 마치 벌집이라도 쑤셔 놓은 듯 다시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으이그, 내가 벌써부터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정말 답답해 미치겠네!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면 왜 앞으로 나간 거니?"

"그래, 그러니까 빨리 불러 봐. 아이고오, 속 터져라.“

“으이그,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 벙어리가 노래 부르는 것 본 적이 있냐?“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민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안 되는 일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선생님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선생님! 윤희 대신 제가 노래를 부르면 안 될까요?”

이번에는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민수에게로 쏠렸습니다. 민수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씨근덕거리며 선생님의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정말 웃긴다. 그치? 노래를 대신 불러주겠다네.”

"누가 아니래. 하하하…….“

"민수 쟤 미친 거 아니니? 정말 웃기고 있네. 음악 시험을 보는 건데 대신 부르겠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호호호…….”

그러자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성만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윤희를 가장 많이 괴롭혀 온 성만이였습니다. 그런 성만이가 킬킬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야! 너희들, 민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나 하니? 민수가 바로 윤희 애인 아니니? 쟤네들은 벌써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이런 때 민수가 대신 불러주지 않으면 누가 불러주겠니, 내 말 틀렸니? 으하하…….”

"하하하……. 누구누구는 애인이래!”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래. 호호호…….”

성만이의 말에 배꼽을 잡고 웃고 떠드는 소리로 교실은 금세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야! 성만이 너 정말 죽고 싶어?”

그렇지 않아도 잔뜩 화가 나 있던 민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고 말았습니다. 민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제 책가방을 번쩍 들더니 성만이를 향해 힘껏 내던졌습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어이쿠우!"

순식간에 날아오는 책가방으로 공격을 받고 머리를 맞은 성만이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신음소리까지 내고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날 가장 즐거워야 할 음악 시간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모든 수업이 끝난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에이 바보 같으니라구! 윤희가 앞으로도 아이들한테 놀림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집을 향해 돌아가고 있는 민수의 표정은 우거지상이 된 채 어둡습니다.

민수는 지금 오늘 음악 시간에 벌어진 일로 인해 선생님한테 늦게까지 벌을 받고 이제야 혼자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수의 생각은 여전히 윤희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윤희가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한테 놀림 받을 생각을 하면 그렇게 속이 상하고 답답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민수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어서 더욱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가고 있던 민수가 문득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아, 그런데 뜻밖에도 윤희가 저 앞에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윤희는 민수가 오기만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

뜻밖에 윤희를 발견한 민수는 몹시 반가웠습니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윤희는 민수가 벌을 받게 된 것이 저 때문이라는 듯 몹시 미안한 얼굴로 민수를 빤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습니다.

“……!?”


그런 윤희의 까만 눈동자와 표정이 오늘따라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민수는 덤덤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윤희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뜻밖에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말을 꼭 한번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말은 입속에서만 뱅뱅 돌뿐 차마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윤희도 아무 말이 없이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민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윤희는 등 뒤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얼른 보기에도 예쁜 들국화를 꺾어서 만든 꽃다발이었습니다. 민수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들판 여기저기를 쏘다니면서 정성껏 만든 꽃다발인 모양입니다.

한동안 민수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던 윤희의 얼굴이 갑자기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순간, 등 뒤에 감추고 있던 꽃다발을 갑자기 민수 앞으로 불쑥 내밀었습니다.

"얼른 집에 가지 않고 누가 이런 걸 만들어 달랬어?"

“…….”


민수는 윤희가 내밀고 있는 꽃다발을 거칠게 낚아챘습니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런 윤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윤희가 준 꽃다발을 소중히 손에 든 채 아무 말없이 다시 가던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윤희는 그런 민수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민수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미안한 듯 생글생글 웃으며 민수를 따라가고 있는 윤희의 표정은 저도 모르게 얼굴 가득 해맑은 미소가 번지며 생기가 돕니다.


해님은 아까부터 그런 민수와 윤희의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빙그레 웃는 얼굴로 두 아이의 머리 위를 포근한 가을 햇살로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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