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동화 ♣
해님이 환한 얼굴로 둥실 떠오르는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해님은 곱고 고운 빛깔로 반짝이는 금가루를 온 세상에 골고루 뿌려주고 있었습니다.
햇빛은 아파트 베란다의 안쪽 깊숙한 곳까지 밝고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베란다의 깊숙한 그곳, 그곳이 바로 좀 엉뚱하긴 하지만 금붕어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아, 오늘도 또 벌수 없이 지독하게 심심하고 따분한 하루를 견뎌야 하는구나!’
해님이 베란다의 안쪽까지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잠이 깬 금붕어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습니다. 금붕어가 그렇게 긴 한숨만을 쉬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 것도 꽤 오래 전부터의 일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금붕어는 정말 외롭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말 동무를 해줄 친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늘 이렇게 혼자 허전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외로운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곁에 진구가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가슴이 아플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인 줄은 정말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생지옥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지금 금붕어가 살고 있는 곳은 15층짜리 아파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 수진이네 집의 베란다였습니다.
그곳 베란다에는 돌로 만들어진 아담한 절구통이 하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금 금붕어는 그 절구통 속에 갇힌 채 혼자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금붕어가 이떻게 하필이면 그런 질구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느냐고요?
아마 벌써 3년 전의 일이었을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수진이네 가족들이 이 아파트로 새로 이사를 오는 날이었습니다.
"수진아. 이 금붕어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 조금 전에 먼저 살던 집에서 이삿짐을 나르다가 어항을 깨뜨렸지 않니?”
부지런히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던 수진이 엄마가 비닐봉지에 든 금붕어가 눈에 띄자 수진이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물이 담긴 하얀색 비닐봉지 속에서는 빨간 색깔의 예쁜 금붕어 한 마리가 귀여운 모습으로 비닐 봉지 속에서 아직도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봉지 속이 너무 답답하여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습니다.
"글쎄에, 금붕어를 어쩌면 좋지?“
수진이가 우물쭈물하면서 얼른 대답을 못하자 엄마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하였습니다.
“옳지! 우선 저기 있는 절구통 속에 물을 부어놓고 기르면 되겠구나!”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베란다에 있는 돌로 만든 절구통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는 곧 절구통 속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속에 금붕어를 넣었습니다.
“자아, 어떠니? 시장에서 산 우리로 된 어항보다도 훨씬 더 색다르고도 멋이 있어 보이지 않니?”
엄마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 금붕어가 절구통 속에서 힘차게 헤엄을 치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수진이에게 물었습니다. 수진이가 보기에도 여느 어항들보다 훨씬 더 멋있고 좋아 보였습니다.
“히야아~~~ 정말 괜찮아 보이는걸! 으음, 그런데 엄마!”
“그런데 또 뭐야?”
“그런데 금붕어가 한 마리밖에 없잖아. 그래서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여. 그때 한 놈이 죽지만 않았어도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수진이는 문득 먼저 살던 집에서 살 때 어느 날 제 풀로 불쌍하게 죽은 금붕어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그건 크게 걱정할 필요없어요. 네가 이 다음에 더 예쁜 놈으로 몇 마리 사다 넣으면 되지 않겠니?”
"아참, 그러면 되겠구나!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야! 호호호…….“
”우리 수진이가 좋다니까 엄마도 기분이 너무 좋은걸. 호호호…….“
수진이는 신바람이 난 듯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엄마도 덩달이 수진이를 따라 밝아진 표정으로 소리내어 웃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절구통 속에는 금붕어가 좋아하는 소라와 조개껍데기가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예쁜 조약돌과 고운 은모래도 쌓였습니다. 그동안 수진이가 신경을 써서 보는대로 정성껏 모은 것들이었습니다.
비록 절구통 속이기는 하지만 이제 금붕어가 생활을 하기에는 그런대로 아무 불편이나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그 모두가 마음씨가 곱고 착한 수진이 덕분이었습니다.
금붕어는 그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수진이에게 늘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수진이가 그토록 금붕어를 보살피고 정성을 다하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금붕어의 가슴속은 날이 갈수록 허전하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뼈가 저릴 정도로 외로움과 허전함이 금붕어의 가슴속에 마치 앙금처럼 쌓여만 가고 있었습니다.
“치이, 아무리 맛있는 먹이만 매일 배부르게 잘 주면 뭘 해, 곁에 말동무를 할 친구가 있어야지!”
금붕어는 수진이가 베란다로 나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에 부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친구를 에려다 준다던 수진이는 어떻게 된 일인지 그때마다 물을 갈아주거나 먹이를 주는 것만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3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 버린 것입니다.
“치이, 금붕어를 더 사다 넣겠다더니 그새 혹시 까맣게 잊어버린 거 아니야?”
금붕어는 외로움과 허전함을 견디다 못해 날이 갈수록 마음속에 깊은 병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이 집 식구들 모두가 너무나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더 밉고 야속하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금붕어는 이제 모두가 귀찮고 싫었습니다. 소라나 조개껍데기도 싫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조약돌이나 모래도 그 모두가 귀찮고 보기조차 싫었습니다. 그리고 베란다 창문 밖으로 시원스럽게 보이던 하늘도 이제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마 이런 게 바로 우울증이란 병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점점 입맛도 떨어지고 온몸의 힘이 쭉 빠진 채 이제는 지느러미만 조금씩 흐느적거리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집 식구들은 전혀 아무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구나 겉으로 드러나는 병은 잘 알 수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깊숙이 쌓인 병은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어느 새 3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금붕어는 커다란 어항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던 그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지곤 하였습니다.
“내가 왜 그때는 그 녀석을 그토록 귀찮게 굴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녀석이었는데…….”
그리고 그때 친구들에게 짓궂은 행동을 했던 일을 이제와서야 뒤늦게 크게 후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금붕어와 함께 같은 어항 속에서 지내던 친구 중에는 몸뚱이 색깔이 온통 새까맣고 못생긴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눈알이 툭 불거지고 볼품이 없게 생긴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툭하면 ‘못생긴 놈'이라고 흉을 보며 놀리곤 했던 일이 그렇게 후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금붕어가 그렇게 옛날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골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고 계시던 할머니가 연락도 없이 수진이네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얘, 에미야! 그리고 수진아! 이리 좀 와 보렴!”
집안 구석 여기저기를 꼼꼼히 둘러보던 할머니가 갑자기 엄마와 수진이를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듯 베란다에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게 이사올 때 이 절구통 속에 넣었다던 그 금붕어란 말이지?”
할머니는 절구통 속에 있는 금붕어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예, 맞아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어머니?”
엄마는 무슨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할머니를 바라보며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절구통 속에 금붕어가 왜 아직도 한 마리뿐인 거지? 더 사다가 넣었는데 또 죽어버린 거니?”
“……!”
“……!”
느닷없는 할머니의 물음에 엄마와 수진이는 그만 뜨끔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이 벌겋게 된 채 아무 대답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금붕어가 그동안 혼자 외롭게 살고 있다는 일을 까맣게 잊은 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요.
“예 있다. 당장 시장에 가서 몇 마리 사 오너라. 너희들은 세상을 오래 살아보지 못해서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렵고 힘든 것이 바로 외로움이란 걸 말이다.”
할머니는 주머니에 있던 돈을 건네주며 금방 언짢아진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어, 어머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돈은 도로 넣어두세요. 제가 바로 사올게요.”
엄마는 금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곧 부리나케 밖으로 나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수진이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엄마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히야, 신난다! 그러게 외로움을 겪어 본 사람만이 남의 외로움과 고통도 알아준다니까!”
금붕어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리고 온몸에서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새로운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