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소이산 정상에서 만난 제비꽃]
며칠 전, 강원도 철원의 ’노동당사‘와 ’백마고지 전적비‘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평소에 꼭 한 번 가 봐야 되겠다고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벼르고 별렀던 곳이었다.
교과서와 백과사전에서만 가끔 보아왔던 노동당사 앞에 다다르니 감회가 깊었다.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심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저 당사 안에서 결국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니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노동당사 바로 앞에는 철원역사와 사진관 우체국 소학교 등, 갖가지 오밀조밀하게 꾸며진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전시관을 대충 둘러보고 소이산 장상을 가보기 위해 ’모노레일‘에 오르게 되었다. 모노레일의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급경사가 있어서 스릴 또한 그만이었다.
마침내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말로만 듣던 철원평야를 바라볼 수 있었다. 짐작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드넓은 철원 평야, 지금은 민통선으로 묶여서 출입증이 있는 농부들만 드나들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가기 전에 계단 밑 틈바구니를 비집고 피어있는 제비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매력이 있는 보랏빛깔의 제비꽃이었다.
몹시 반가운 나머지 허리를 굽힌 채 한동안 제비꽃을 감상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이 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던 추억이 새롭고 그립기도 하였다.
사실 평소에 나는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에게 유난스럽게 꽃을 선물해본 적도 없고 또한 꽃다발 선물을 받아도 그다지 반갑지도 않은 멋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고 또한 향기도 별로 없는 꽃들에게만은 유독 애착이 가고 사랑을 하는 편이다. 달개비꽃, 달맞이꽃, 제비꽃, 나팔꽃, 붓꽃, 찔레꽃, 애기똥풀 등의 들꽃들을…….
제비꽃을 바라보며 어느 새 권길상 작곡의 ’앉은뱅이꽃‘이란 동요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었다. ’앉은뱅이꽃‘이란 제비꽃의 또 다른 이름이다.
♬ 보랏빛 고운 꽃 우리 집 문패 꽃
꽃 중에 작은 꽃 앉은뱅이랍니다♬
제비꽃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과거에 익혀 두었던 제비꽃의 여러 가지 이름을 다시 상기해 보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제비꽃처럼 이름이 많은 꽃도 드문 것 같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올 때 피는 꽃이라 하여 붙여진 ’제비꽃‘
키가 작다고 하여 '앉은뱅이꽃',
반지를 만들어 손까락에 끼울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반지꽃‘
서로 마주 선 모습이 흡사 씨름 선수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씨름꽃,
작고 귀여운 모습이 마치 병아리와 같다고 하여 '병아리꽃',
그밖에도 오랑캐꽃, 장수꽃, 외나물꽃 등이 있으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만 해도 무려 여덟 가지나 되니 이 얼마나 많은 이름을 가진 꽃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제비꽃은 종류 또한 이름만큼이나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는 몇 가지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모난 달걀형 꽃잎에 짙은 보라색 줄무늬가 있는 ‘왜제비꽃’
둘째, 잎에 알록달록한 줄무늬가 있는 ‘알록제비꽃‘
그 밖에도 잎새 모양이 단풍잎과 비슷한 ’단풍제비꽃‘, 잎사귀 모양이 가늘게 갈라진 ’남산제비꽃‘, 원줄기가 없고 전체에 털이 돋은 '잔털제비꽃’, 흰꽃 아래쪽 꽃잎에 자주색 줄무늬가 선명한 ‘콩제비꽃’,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란색으로 피는 ‘노랑제비꽃’ 등의 여러 종류의 제비꽃들이 분포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아’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양치기 소년인 ‘아티스’를 몹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은 ‘이아’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소녀 ‘이아’가 나중에 죽어서 제비꽃이 되었다는 애달픈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제비꽃의 꽃말은 ‘겸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