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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y 25. 2023

처녀 실종 미스터리 사건(2)

[한국 전쟁이 낳은 비극]

그날 저녁 혜경이가 마치 목이 졸려 죽은 개가 끌려다니듯 금순이 아버지한테 조리돌림을 당하고 난 뒤에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악몽과도 같은 그 사건은 잠잠해지면서 마을은 한동안 평온을 찾은 듯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혜경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그날 당한 심한 곤욕과 큰 충격을 받았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머리와 온몸에 큰 상처를 입었음은 물론 그날의 충격으로 인해 별 도리없이 심한 몸살로 자리에 누워 앓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는 치료를 받고 싶어도 치료를 받을만한 변변한 병원도 없었다. 병원이라고 해야 약 이십 리 정도 걸어 나가야 읍내에 있는 작은 병원을 갈 수 있었다. 병원은 두 군데였다. 그러나 이름만 병원이지 크게 다치거나 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춘 병원이 아니어서 그저 간단한 감기나 경미하게 다친 환자만 소독을 하고 치료해 주는 것이 모두였다. 짖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그 시절에는 미개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만일 혜경이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해도 고작해야  항생제 주사나 맞고 상처 부위의 소독과 치료, 그리고 붕대를 감아주고 약을 주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혜경이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지 지금까지 그냥 집에 누워서 앓고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를 일이다.      


그때는 누구나 웬만하면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으레 병이 다 나을 때까지 집에 누워서 앓곤 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어쩌다 상처가 나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해도 치료할 변변한 약이 없어서 길바닥에 고운 흙을 나을 때까지 바르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혜경이가 다시 가출을 하다


그렇게 다시 여러 달이 지났다.      


혜경이는 다행히 그동안 죽지 않고 용케도 살아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병이 나아서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혜경이는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자 어느 날 또다시 집을 나가더니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동안 사귀고 있던 미군과 아예 살림까지 차렸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일이 그렇게 되자 딸을 잃은 금순이 아버지는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혜경이네 집에 가서 혜경이가 간 곳을 알려 달라고 혜경이 엄마를 무섭게 닦달하곤 하였다.      


그러나 혜경이 엄마 역시 딸이 간 곳을 알수 없으니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때마다 당하기만 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다시 여러 해가 지났다.      


혜경이는 이제 미군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문이 다시 돌게 되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그나마 딸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혜경이 엄마는 그만 기운이 빠지면서 맥이 풀리고 말았다. 금순이 아버지 역시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혜경이가 미국으로 건너간 뒤부터 혜경이는 다달이 엄마 앞으로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기 시작했다. 생활비를 얼마나 보내오는지는 그 액수는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그 바람에 혜경이네 식구들은 그 덕분에 다른 집들보다 풍족한 살림살이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혜경이 엄마는 애연가였다. 그 시절에는 속이 거북한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담배를 피우곤 하였다. 속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담배가 최고라는 인식이 굳어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혜경이 엄마 역시 속병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혜경이 엄마 역시 담배를 즐겨 피우곤 하였다. 그런데 성냥도 몹시 귀하던 시절에 혜경이 엄마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지포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곤 하였다. 그 지포 라이터 역시 혜경이가 미국에서 보내준 것이라고 하였다.       


혜경이네 가족     


혜경이네 식구는 두 내외 슬하에 딸만 둘을 기르고 있었다. 혜경이 동생인 혜란(가명)이는 혜경이보다 한참 아래인 여덟 살 정도 터울이었다. 그리고 혜란이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자주 만나 친하게 어울려 놀기도 하였다.      


그 시절에는 어느 집이나 가난하여 자식들을 웬만하면 초등학교만 졸업시키고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여자아이들은 더욱 그랬다. 집에서 바느질만 잘하고 살림만 잘하면 그만이지 공부는 해서 어디에 쓰느냐는 인식이 굳어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60여 호나 되는 우리 마을에도 중학교에 진학하는 여학생들은 한두 명 정도 손을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혜란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보란 듯이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모두가 미국에 있는 언니가 다달이 생활비를 넉넉히 보내준 덕분이라고 하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정말 사람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 속담은 어쩌면 바로 혜란이 같은 여자아이들을 두고 생긴 말인 듯싶기도 하다.   

   

혜란이가 어렸을 때는 이웃에 살면서 나와 자주 만나기도 하고 그런대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혜란이와 그렇게 가깝게 지낸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을 끝으로 슬그머니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혜란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 친다 해도 하면 아는 체를 하기는커녕 바로 외면을 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한 일이라고는 없었다. 그런데 번번이 그런 태도로 나오니 나로서는 여간 민망하면서도 야속하며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왜 모르는 체 하느냐고 쫓아가서 따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집안 살림이 우리 집보다 좀 넉넉해졌다고 도도해져서 그런 것인지 갑자기 성격이 새침떼기로 변해서 그런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웃에 살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하루아침에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 변하다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나 역시 어쩌다 그와 길에서 마주쳐도 모른 체하고 외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뒤에도 그를 만날 때마다 여간 어색하면서도 거북하기가 짝이 없었다.     

   

혜경이에게서 소식이 끊어지다     


그러나 그나마 다른 집들보다 조금 넉넉했던 혜란이네 집 형편이 마냥 길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까닭인지 미국으로 간 언니가 다달이 부쳐주던 생활비가 아무 소식도 없이 갑자기 딱 끊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에 있는 혜경이에게 그 당시에는 마음대로 안부를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아무 소식도 없이 생활비가 끊어지게 되자 혜란이는 학교 납부금을 낼 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 혜란이는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별 도리없이 혜란이는 고등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혜경이와의 소식이 끊어지게 되자 혜경이 어머니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애가 타게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죽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고가 있는 것인지…….     


그러나 야속하게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게 되자 혜경이 어머니는 슬픔과 한탄으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따라서 집안 살림 역시 옛날처럼 도로 어렵게 되었다.  


혜란이마저 집을 나가다     


학교를 중퇴한 혜란이는 한동안 집 안에만 머물며 지내기가 답답했는지 갑자기 서울에 좋은 직장에 취업하게 되었다면서 홀연히 상경하게 되었다. 취업이 어려운 세상에 시골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좋은 직장을 구했다니 재주가 참 뛰어나게 좋은 아이가 아닐 수 없었다.     

  

서울로 올라간 혜란이는 가끔 부모님 앞으로 편지를 집으로 보내곤 하였다. 그런데 혜란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까막눈(한글 미해득자)이어서 한글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편지가 올 때마다 혜란이 어머니는 편지를 읽어달라고 나에게로 달려오곤 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혜란이 어머니에게 혜란이가 보낸 편지를 읽어드리곤 하였다. 편지 내용을 보니 혜란이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어느 회사의 사장 비서직을 맡아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편지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안부를 전하곤 하였다.     

  

내가 할 일은 편지만 읽어드리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편지가 올 때마다 혜란이 어머니가 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하면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대신 답장을 써주는 일도 도맡게 되었다.( * )      


                 - 다음 회에 다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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