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쌓은 성

[아는 것이 힘]

by 겨울나무

지나칠 정도로 독서를 좋아하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그래서 하루에 적어도 두서너 권의 책을 읽지 않고는 직정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에도, 수라를 들 때에도 임금님의 손에서는 언제나 책이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샤워를 할 때에도 책을 한쪽에 펴놓고 하다가 책이 온통 물에 흠뻑 젖는 일도 예사였습니다.


그래서 날이 가면 갈수록 임금님의 실수는 점점 더 늘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수라를 뜨다가 엎지르는 일, 책을 읽으며 걷다가 넘어져 심하게 다치는 일 등…….


그러나 임금님은 크게 다쳐 치료를 받고 있을 때에도 책만큼은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는 버릇이 습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임금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신들을 향해 독서를 열심히 하라는 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봐라! 공부란 죽을 때까지 해도 못다 하고 죽는 법이니라. 그러니 내 곁에는 항상 책이 쌓여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해 놓도록 하여라!“


임금님은 늘 읽을 책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임금님의 명령을 거역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는 당장 청천벽력 같은 호통을 듣기가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신들 모두는 나랏일을 보살피는 일보다는 임금님이 읽을 책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일에만 모든 신경을 쓰기에 바빴습니다.

또한 임금님은 임금님 자신만 독서를 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들은 물론, 온 나라 안의 백성들에게도 늘 책을 읽으라고 권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주 독서 대회를 열고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부터 무조건 높은 벼슬자리에 앉히곤 하였습니다.

임금님의 뜻을 알게 된 백성들은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다른 일은 모두 젖혀 놓고 오직 독서를 하는 일에만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나라 백성들은 농사일은 뒷전이고 어느 집을 가나 값진 가구나 물건 대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으로 발을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신들 중에 한 사람이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다는 듯 임금님 앞에 나가 간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하! 이제 그만하면 이 나라 백성들 모두가 책을 어지간히 보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 그래서 어쩌란 말이오?“


임금님은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되물었습니다.

"아뢰옵기 황공한 말씀이오나 독서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라 살림살이에 힘을 기울여 주심이 더 시급한 일이온 듯 하옵니다.“

"나라 살림에 힘을 기울이다니 그건 또 무슨 뜻인고?“

"백성들이 농사는 짓지 않고 온통 독서에만 매달리다 보니 식량도 이제 거의 바닥이 나고 있는 줄로 아옵니다.”

“그래요? 그래서 어쩌란 말이오?”

“식량도 그렇지만 더구나 소문에 의하면 욕심 많은 이웃 나라에서는 군사들을 더욱 늘리는 한편 그동안 강한 훈련까지 받고 있다고 하옵니다.”


“아, 그래서 나보고 그걸 어쩌란 말이오?”

임금님은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귀찮다는 듯 짜증섞인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전하, 그리고 그들은 많은 무기까지 준비해 놓고 머지않아 우리나라로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허, 말이 많소. 예로부터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지 않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니 쓸데없는 걱정 그만하고 어서 물러가시오.“


임금님은 여전히 홍미도 없고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대꾸했습니다.


임금님의 무심한 태도에 대신은 다소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뢰옵기 황송하오나 지금 이 나라 백성들 모두의 생각이 저와 같은 줄로 아옵니다. 만일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면 책을 많이 읽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이라도 곧 책읽는 일을 중단하고 우리도 군사력을 기르른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온 줄 아옵니다. 전하!“


그러자 몹시 화가 난 임금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호통을 치고 말았습니다.


"아니, 뭐라고? 이 나라에서 그나마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는 그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고작 그것뿐이란 말이오? 책을 많이 읽어서 안 되는 일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오? 꼴도 보기 싫으니 어서 썩 물러가시오!“


임금님은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읽던 책을 보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큰일은 벌어지고야 말았읍니다. 대신이 걱정했던 대로 전쟁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전하! 큰 일 났습니다. 이웃 나라에서 수백만 대군을 이끌고 지금 우리 나라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쳐들어 오고 있사옵니다.“


잔뜩 겁에 질린 대신 하나가 숨이 턱에 닿을 듯한 목소리로 임금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에도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아무 걱정 말라는 듯 천천히 입을 열어 명령하게 되었습니다.


"알았소. 짐도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느니라. 너무 격정 말고 지금 곧 서둘러 백성들을 시켜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책으로 겹겹이 성을 쌓도록 하시오!“


임금님은 이렇게 엉뚱한 명령을 내리고는 다시 책을 읽는 일에만 몰두하였습니다.

대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임금님의 명령 대로 온 나라 백성들에게 책으로 성을 높이 쌓도록 명령했습니다.


나라 안 방방곡곡에는 삽시간에 여기저기 책으로 겹겹이 쌓은 성이 육중하고도 높다랗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새까맣게 몰려든 이웃 나라 군사들은 성을 뚫기 위해 마구 활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쏜 화살은 책으로 쌓은 성에 모두 박히기만 할 뿐 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이웃 나라 군사들이 이번엔 모두가 힘을 합해 창과 칼을 휘두르며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성밑으로 개미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임금님은 때를 놓치지 않고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했습니다.


"잘 들어라! 모두 힘을 합해 성을 바깥쪽으로 무너뜨리도록 하여라!“


임금님의 명령에 따라 백성들은 힘을 합해 책으로 쌓은 성을 한꺼번에 밖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밀기 시작했습니다.


"으아악~~~“

“으아악~~~”


성이 무너짐과 동시에 적군들의 비명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모여들었던 적의 군사들은 거의 모두가 책에 깔려 숨이 넘어가고 겨우 목숨을 건진 적군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이 보란 듯이 백성들을 향해 다시 소리쳤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이 걱정했던 전쟁은 모두 끝나고 말았소. 아는 것이 힘이오. 지금부터 모든 백성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더욱 열심히 책을 읽도록 하길 바라오.“

임금님은 이렇게 명령하고는 다시 여유만만한 자세로 성 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책벌레 임금님 만세!"

"우리 임금님 만세!“


백성들의 함성 소리를 들은 임금님의 얼굴에는 어느새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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