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엄마의 표창장

by 겨울나무

학교 공부를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은미의 표정이 오늘따라 더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은미는 지금 불편한 다리를 양쪽 목발에 의지한 채 한 걸음 두 걸음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잔뜩 일그러진 울상입니다.


'치, 엄마가 상을 받는다고? 상을 주는 사람들도 눈이 멀었지. 우리 엄마가 무얼 잘했다고 상을 준담!‘


조금 전, 학교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며칠 뒤 돌아오는 어버이날에 은미 엄마가 표창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여러 친구 앞에서 자랑스럽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은미는 엄마가 상을 받게 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에 조금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뜻밖이라는 듯 입을 쑥 내민 채 잔뜩 못마땅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은미네 학교에서는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장한 어머니 표창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어버이날에는 엄마가 상을 받게 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은미는 문득 비록 두 다리가 불편하긴 했지만, 전혀 힘든 줄을 모르고 마냥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지난날의 행복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두가 엄마의 정성 어린 도움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학교에 오갈 때 그리고 학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은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은미의 손발이 되어 주던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금쪽같은 딸이라며 오직 은미만을 정성을 다해 보살피며 끔찍이 사랑해 주던 엄마였습니다.


은미는 그런 엄마가 여간 자랑스럽고 고마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약 두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은미야, 너 지금 바쁘니? 얘기할 게 있으니까 잠깐만 이리 건너와 보렴,"


엄마가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은미는 급히 안방으로 건너갔습니다.


"엄마, 무슨 일인데 그래?“


엄마는 잠시 은미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 엄마의 표정은 오늘따라 이만저만 복잡해 보이는 게 아닙니다.


”너한테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할 게 있어서 불렀단다.“


은미 역시 궁금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뭔데? 어서 말해 봐.“

”다른 게 아니라 며칠 뒤부터는 엄마가 먼저 다니던 직장에 다시 나가기로 했거든. 그러니 어쩌겠니. 내일부터는 혼자 학교에 다녀야 할 것 같은데…….“


”……!“


”힘은 좀 들겠지만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엄마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니겠니?“


”……!“


은미는 너무나 기가 막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혼자 다니기에 불편한 줄을 뻔히 잘 알고 있는 엄마입니다. 그런데 혼자 다니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야속하기도 하고 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정이 떨어진 건 아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옆에 앉아 모른 체하고 듣고만 있는 아빠도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은미를 끔찍이 사랑해 주던 엄마와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딴사람처럼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입니다.


”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라고 입이 닳도록 말할 땐 언제이고, 이젠 나보다는 직장이 더 소중하다 이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에 어느새 은미의 두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은미는 별 도리없이 혼자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제부터는 혹시 엄마가 다시 데리고 다닌다 해도 싫다고 거절했을 은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해도 그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그 뒤로 두 달이 지난 자금까지도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은미의 손과 발이 되어주던 엄마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은미는 이제 혼자 생활을 하는 일이 점점 더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흥, 엄마가 없다고 내가 학교에 못 다닐 줄 알고?“


은미는 여전히 엄와 아빠가 그렇게 원망스럽고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사이에 어느새 집에 다다랐습니다.


"은미야, 오랜만이구나. 요즘 혼자 학교에 다니느라 고생이 많지?“


집에 도착하자 뜻밖에도 이모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쳇,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더니 지금 누구 약을 올리나!“


이모는 은미네 집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달려와서 내 일처럼 도와주곤 하는 고마운 분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이모까지 반갑지 않았습니다.


"은미야, 너 표정이 왜 그러니? 이젠 이모도 반갑지 않은 모양이구나?“


”…….“


다른 때 같으면 반가움에 펄쩍 뛰며 이모의 품을 파고들었을 은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이모를 보고 반기기는커녕 소가 닭을 보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꾸 외면하는 은미였습니다.


은미의 그런 태도에 이모가 조금 서운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은미야, 오늘 이모가 갑자기 너희 집에 오게 된 것은 말이지, 조금 전에 엄마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셨기 때문이란다.“


”……?“


은미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그러나 은미는 이번에도 아무 대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직장에 나간 엄마라는 생각에 병원에 가든말든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모가 몹시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넌 엄마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데 궁금하지도 않니? 엄마가 오늘 병원에 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게 다 너를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이란 말이야.”

’치이, 나 때문이라고?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은미는 방까지 따라 들어오며 자꾸만 귀찮게 말을 걸고 있는 이모가 너무 귀찮았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은미를 몰라라 하고 직장에 열심히 다니다가 몸살이 난 엄마, 그런데 그게 은미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이모는 은미가 듣든 말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은미야, 너 그러면 못써. 알고 보면 이 세상에서 너희 엄마처럼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는 아마 둘도 없을 거다.”


이모는 오늘따라 은미가 싫어하든 말든 여전히 엄마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이모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보니 엄마는 그동안 은미를 두고 직장에 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은미를 위해 꼭 해주고 싶은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은미 혼자의 힘으로 강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자신감만은 반드시 길러주고 말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모의 말을 듣고 보니 엄마는 직장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직장을 핑계로 약 두 달 전부터는 은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은미의 뒤를 몰래 따라다니며 돌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마침내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지병으로 앓고 있던 빈혈로 인해 그만 길바닥에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이모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은미는 문득 머리에 번개처럼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언젠가 하굣길에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서 우산을 씌워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 가끔 발을 헛딛고 넘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누군가가 다가와서 은미를 도와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그동안 은미도 모르게 먼발치에서 몰래 숨어서 따라다니다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누군가를 시켜 은미를 돕곤 했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 그런 소문이 학교까지 퍼지게 되어 은미 엄마를 장한 어머니로 뽑게 된 것입니다.


이모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난 은미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 ) 물들며 화끈거리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그런 깊은 속마음을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그동안 엄마를 미워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새삼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모 어느 병원이야? 나 지금 당장 엄마한테 데려다줘!“


지금까지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있던 은미가 갑자기 이모를 향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런 은미의 표정은 오랜만에 해바라기 꽃보다도 더 환하고 밝게 활짝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에구머니나! 깜짝이야. 왜 이렇게 소리는 지르고 야단이니? 그래, 잘 생각했다. 어이구, 귀여운 것아."


이모도 덩달아 활짝 웃는 얼굴이 되어 몹시 귀엽다는 듯 은미의 볼을 살짝 꼬집었습니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급히 서두르고 있는 두 사람의 손길이 점점 더 바빠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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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익히기 >


※ '벌겋다' 와 '빨갛다’


'벌겋다': 어떤 사물이나 그 빛이 어둡고 연하게 붉다.


<쓰임의 예>

* 이모가 은미에 대한 평소 불만을 솔직하게 말하자, 은미의 얼굴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 옆집 아저씨는 항상 벌겋게 술기가 오른 얼굴로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빨갛다': 어떤 사물이나 그 빛이 핏빛이나 잘 익은 앵두의 색깔을 가진 상태에 있다.


<쓰임의 예>


* 잘 익은 사과으 빛깔이 빨갛다.

*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바람결에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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