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꽃

[조화는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향기가 없다]

by 겨울나무

한동안 뜸했던 꽃가게에 마침내 손님 하나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얼른 보기에도 마음씨가 곱고 착하게 생긴 예쁜 아가씨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어떤 꽃을 찾으시는지요?”


꽃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한창 이 꽃 저 꽃에 물을 주고 있던 꽃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반색을 하면서 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어떤 꽃이 가장 아름답고 예쁜지요? 그런 꽃을 몇 송이 사러 왔거든요.“


꽃가게를 찾아온 손님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묻곤 하였습니다. 이 아가씨처럼 열이면 열 사람 모두가 모양이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예쁜 꽃을 찾곤 하였습니다.

“글쎄요. 좋아하는 꽃이 손님마다 다들 다르니까요. 향기도 좋아야 하고요. 그럼 이쪽으로 좀 와 보실까요?”

주인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장미꽃과 백합꽃이 있는 곳으로 아가씨를 안내하였습니다. 금방 받아 놓은 장미꽃과 백합꽃은 마치 새벽 이슬이라도 맞은 듯 싱싱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벌써 여러 해째 꽃가게 운영을 해오고 있는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꽃 가게를 처음 시작했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딱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손님들 대부분이 이 아가씨처럼 예쁜 꽃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꽃의 가치와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아름답고 예쁜 모습에 있을 테니까요.


결국, 그 아가씨는 별로 마음에 드는 꽃이 없다며 그대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모양이 예쁘고 아름다운 꽃이라!”


아주머니는 요즘에 와서야 뒤늦게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꽃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예쁘고 아름답게 생긴 꽃을 좋아하고 있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말입니다.


"아하! 바로 그거야, 그거!“


손님이 그냥 나가자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손뼉을 쳤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꽃을 손으로 직접 만들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입니다.


그다음 날부터 아예 가게 문까지 닫아버린 아주머니는 오직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꽃을 만드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아주머니는 마침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정도로 예쁜 꽃이라면 가게에 내놓기가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게 될 거야!“


주인아주머니의 예상은 곧 맞아떨어졌습니다. 소문을 듣게 된 손님들은 가게에 꽃을 내놓기가 무섭게 너도나도 그 꽃을 사기 위해 매일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꽃이 귀해서 돈을 주고도 사기가 어렵게 되자, 심지어 꽃을 만들기도 전에 미리 돈부터 주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머니는 이제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미리 주문 받은 양이 너무 많아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동안 다시 여러 날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차츰 뜸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꽃을 사 갔던 사람들의 불평이 가득한 목소리들이 아주머니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꽃이 아무리 아름답고 예쁘면 무얼 해, 향기가 전혀 없는 걸.”

“꽃의 생명은 뭐니뭐니 해도 향기가 좋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고 말고요. 그런데 이 꽃은 아름답기는 해도 향기라고는 전혀 없어요.”


아주머니가 만든 꽃을 보고 마치 비웃기나 하듯, 사람들 모두가 입을 모야 한 목소리로 비웃거나 투덜거리곤 하였습니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향기가 없는 꽃! 그런 꽃은 아무리 예쁘고 아름답다고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아!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기가 뛰어난 꽃을 만들 수 있을까?”


아주머니는 다시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에는 또다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향기까지 물씬 풍겨나오는 만들어내고야 말았습니다.

“우와아! 세상에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꽃은 난생처음 보는걸!”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향기가 아주 죽여 준다니까.“


"이렇게 훌륭한 꽃이 있는데 앞으로 누가 그까짓 생화를 사겠어. 이제 다른 꽃가게들은 다 망하고 말겠군. 다 망했어.”


“과연 꽃 중의 꽃 황제꽃이로다!”


아주머니가 만든 꽃을 아주머니가 만든 꽃을 본 사람들은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꽃, 그리고 그윽한 향기 또한 어느 꽃 못지 않게 감미로우며 냄새가 오래 가는 꽃을 두고 다른 꽃을 거들떠볼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누구의 입에서부터 나왔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아주머니가 만든 꽃을 황제꽃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아름답고도 고귀한 꽃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꽃의 인기가 이토록 높아지게 될 줄은 아주머니조차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황제꽃을 사려는 사람들이 다시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게다가 방송국이나 신문사, 그리고 잡지사들까지 앞다투어 소개를 하게 되자 황제꽃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꽃의 인기만 높아진 게 아닙니다. 꽃을 만든 아주머니의 이름 역시 꽃보다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꽃 만드는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소문을 들은 돈이 많은 사업가들도 귀찮을 정도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장 짧은 시간에 황제꽃을 얼마든지 많이 만들 수 있는 큰 공장을 세우겠다고 설쳐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 수출을 하게 되면 당장 돈방석에 올라앉을 것이라며 군침을 흘리면서 김칫국부터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멀리서 이 소문을 들은 벌과 나비 한 쌍이 꽃구경을 하기 위해 이곳을 어렵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우와아, 드디어 찾았다!“

"아아, 바로 여기였구나!“


벌과 나비는 미처 숨돌릴 사이도 없이 열려 있는 꽃가게 안으로 소리도 없이 날아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꽃가게 여기저기에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갖가지 꽃들을 둘러보며 냄새를 맡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황제 꽃에 사뿐히 올라앉아 냄새를 맡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얘, 그런데 이 꽃 냄새가 이상하다. 그치?”

황제 꽃에 올라앉아 먼저 냄새를 맡아보던 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며 나비를 향해 중얼거렸습니다. 벌의 말을 들은 나비도 곧 냄새를 자세히 맡아보고는 님새조차 맡기 고약하다는 듯 낯을 잔뜩 찡그리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이건 진짜 꽃 냄새가 아닌 것 같은걸!”


“사람들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 이런 가짜 냄새를 맡고 좋다고 모두들 떠 대고 있으니까 말이야."

"맞아.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게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까 모두들 바보인가 봐. 이런 냄새가 좋다고 그냥 속아 넘어가다니 말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얘, 난 이 황제 꽃인지 뭔지 냄새 때문에 더이상 못 있겠는걸!“


벌도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비를 향해 얼른 나가자고 금방이라도 가게에서 벗어나려는 듯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니까. 나도 구역질이 날 정도라니까.“


나비 역시 우거지상이 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벌을 따라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황제꽃은 벌과 나비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황제 꽃은 여전히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를 뽐내면서 지금도 그 자리에 거만스럽게 버티고 앉아서 팔려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