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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r 10. 2021

보기 좋은 떡

[겉=속(?)]

미(美)는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노력과 조화 속에 있다. 
< J. F. 밀레 >
미(美)는 잘 읽은 과일이며 그것은 썩기 쉽고 오래 갈 수 없다. 
< F. 베이컨 >     
사랑스럽지 않은 아름다움은 미끼 없는 낚싯바늘과 같다. 
< R. W. 에머슨 >     







얼마 전의 일이다.      


병원에서 준 처방전을 가지고 약을 사기 위해 동네 약국에 가서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뒤,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인과 그의 딸로 보이는 소녀가 약국 문을 열고 뒤따라 들어섰다. 딸은 초등학교 3, 4학년쯤이나 된 어린 소녀였다.      


“어어 오세요! 무얼 드릴까요?”     


약사가 먼저 그들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     


그러나 엄마는 인사말 대신 고개만 약간 끄덕이고 나서 소녀의 눈치를 잠깐 살피더니 조심스딸을 향해 조심스럽고 입을 열었다.     


"아까 병원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올 때 같이 타고 있던 그 애 너도 봤지?“     


”으응, 아까 그 여자아이 말이지?“   

  

엄마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비해 딸의 대답은 왠지 퉁명스럽고 거칠었다.   

   

”응, 그래. 그런데 그 애는 너보다 훨씬 키가 작아 보이던걸.“       


그러자 딸의 대답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욱 날카롭게 높아지고 있었다.    

  

”또 그 소리야! 다 듣기 싫어! 엄마는 나보다 키가 좀 작아 보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번번이 그런 말만 하더라.“     


그게 아니라 그 앤 너보다 나이도 더 먹은 것 같더라고. 그런데 키는 너보다 훨씬 작아 보이니까 하는 소리지.“     


“글쎄, 그만두라니까! 엄마는 내가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줄 알고 번버이 그러는 거지? 알았어.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창피하게 떠들지 말고 좀 조용히 하란 말이야.”     


딸은 어림도 없다는 듯 여전히 엄마를 향해 눈까지 흘기면서 팩 토라진 목소리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조금 난처해진 얼굴로 이번에는 약사에게로 다가가더니 입을 열었다.       


“요즘 새로 나온 약이 없을까요? 먹기만 해도 키가 쑥쑥 자라는 약 말이에요.”     


한동안 모녀의 신경전에 나의 시선 역시 소녀에게 쏠리고 말았다.      


’아하! 키가 작아서 고민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그제야 곧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녀는 친구들보다 자신이 키가 작다는 고민을 견디다 못해 약국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소녀는 첫눈에 보기에도 결코 작지 않은 키였다. 그만하면 체격도 좋고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소녀에게 한마디 쓸데없는 말을 건네게 되었다.      


"넌 그만하면 키도 큰 편이고 체격도 아주 적당하고 좋아 보이는데 쓸데없이 웬 키 걱정을 하고 있구나?“ 

    

나는 그 소녀가 듣기 좋으라고 빈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기왕에 내친김에 그만하면 아주 보기 좋은 체격이니 아무 걱정 말라는 말을 덧붙여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건 쓸데없는 잔소리이며 오지랖이었나보다.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해본 말이었는데 소녀의 엄마는 나의 진심을 다른 각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아저씨가 괜히 위로해 주려고 하는 말씀이란다.”     


나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소녀 역시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아예 딴청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약사(여성)까지 소녀의 편을 들고 나서고 있었다.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그건 다 옛날 어른들 말씀이고요. 요즘 세상에는 얼굴도 얼굴이지만, 우선 키가 커야 이담에 취업할 때 면접관의 눈에 들게 되고 어딜 가나 대우를 받게 된다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까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요.”     


난 공연히 쓸데없이 남의 참견을 했구나 하고 곧 후회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라면 중간이나 갈 것을…….      


난 졸지에 무안을 당하고 말았다는 생각에 더 이상 아무 대꾸도 못한 채, 민망스러운 웃음만 흘리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와 비슷한 일은 또 또 한 번 일어나고 말았다. 의자에 앉아있던 그 소녀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게 되었다. 한동안 그것을 도로 집을 생각을 하지 않고 한동안 딴청을 하고 있기에 다시 좋은 일을 한답시고 한마디 하게 되었다.      


“거기 의자 밑에 떨어진 거 네 거 아니니?”     


그러자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제야 소녀는 의지 밑에 떨어져 있던 물건을 손으로 집으면서 팩 토라진 목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어요. 나중에 가져가라고 귀찮아서 그냥 두었던 거라고요.”     


난 크게 실망한 나머지 또 한 번 실망과 후회를 하고 말았다. 이럴 때는 빈말이라도 고맙다는 인사말 한 마디 정도는 해야 예의가 아닌가.    

 

그 소녀 역시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가르침을 통해 형식적인 외모나 겉치레보다는 실속이 더욱 소중함을 귀가 아프도록 배우고 익혔으리라.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그런 훌륭한 교훈과 가르침들 모두가 우이독경이나 공염불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언행일치가 안 되고 있는 학생들이 더러 눈에 띄고 있는 것이 문제라 하겠다.          


자신의 모습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남보다 더 예뻐지려는 욕망,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본능이라 하겠다.      


그러나 요즘은 속은 어찌 됐든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게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간도, 상품도, 언어도, 그 모두가 겉만 번지르한 것이 많아지고 있든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성형외과가 벌써부터 호황을 누리는 세상이 된 것도 어쩌면 예사로운 일만은 아닌 듯하다. 속이야 어찌 됐든, 겉모양만 교묘하게 슬쩍 바꿔치기한 이른바 짝퉁 명품들이 활개를 치게 된 것도 하나의 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유행이나 겉모양만을 무작정 따르지 않는 것이 진정 현명한 사람들의 판단이요, 올바른 미덕이 무엇인가도 이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오늘따라 문득 근면, 검소, 저축을 강조하던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정책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절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오늘은 조금은 부정적이고 우울한 글을 올리게 되어 마음이 무겁고 편치 않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보기 좋은 떡이라 해서 모두가  맛있는 떡은 아님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는 터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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