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소원의 집

by 겨울나무


그다지 크지 않은 어느 지방 도시의 변두리였습니다. 그곳에서 약국 건물 왼쪽 골목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얼른 보기엔 흡사 여관처럼 생긴 아담한 집이 눈에 띕니다.


그 집 대문 앞에는 한두 번 읽어 봐서는 얼른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소원의 집’〗


그렇습니다. 이 집이 바로 요즈음 온 장안은 물론 세상이 온통 시끌벅적할 정도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소원의 집’ 이었습니다.


이 집이 언제부터 문을 열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누구나 이 집에 오기만 하면 신통한 약의 처방으로 자신이 원하는 꿈이나 소원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믿고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아니, 뭐가 어쩌구 어째? 약으로 사람들의 소원을 해결해 준다는 말이지?“


“아암, 그렇고 말고, 나도 처음엔 절대로 믿지 않았지만, 그 집에서 약을 지어다 먹고 효과를 본 중인들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나?”


“옛기, 이 사람! 오래 살다 보니 별 뚱딴지 같은 소릴 다 듣겠군.”


사람들은 서로 모이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소원의 집' 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식이 뛰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로 그 소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 처방해 주는 약을 먹고 사람들마다의 소원이나 뜻을 이룰 수 있는 게 사실일까요?


그러나 어찌 됐든 그것은 실제로 뜬소문이 아닌 거짓말 같은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날이 갈수록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점점 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앞을 다투며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차례를 기다리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그 집 밖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다 못해 해가 떨어져 급히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가끔 보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루 전에 미리 와서 이 근처에 있는 여관이나 호텔에서 하룻밥을 묵고 새벽같이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자니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언제나 끊어지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 골목을 벗어나 번화한 거리까지 길게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아니, 이 골목 안에도 무슨 극장이 있었나?”


“그러게 말이야. 아마 모르긴 해도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있는 모양이지?”


우연히 이 부근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는 눈이 두 눈이 둥그렇게 되어 한 마디씩 지껄이곤 하였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여태 캄캄 소식이구먼. 그 유명한 ‘소원의 집’이 저 골목에 있다는 걸 아직 몰랐단 말이야?”

“아하! 소원만 말하면 약을 써서 해결해 준다는 바로 그 신기한 집 말인가?”


"아, 그렇다니까. 자네도 돈 좀 모은 것이 있으면 아까지 말고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가 보게나.“


이렇게 해서 ’소원의 집‘에 대한 소문은 마치 수소를 잔뜩 불어넣은 풍선처럼 자꾸만 자꾸만 멀리 번져나가곤 하였습니다.


소원의 집 안채


널찍한 방 한가운데에는 흰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 한 분이 부처님처럼 점잖게 앉아 있습니다.


노인의 머리는 명주실보다 더 하얗게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이 어깨까지 덮여 있었습니다. 하얀 수염도 길게 늘어뜨리고 마치 도사님처럼 위엄있는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자, 그럼 또 다음 손님을 모시도록 하여라!”


노인의 묵직한 목소리는 묵직하면서도 위엄이 있어서 마치 도사님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다음 손님 들어가십시오!”


노인의 지시에 따라 방문 앞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던 청년이 방문을 열어 주며 손님을 안내하였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말끔한 양복차림의 오십 대쯤으로 보이는 신사분이었습니다.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고?”


손님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고 있던 노인이 먼저 위엄있는 목소리로 신사를 향해 물었습니다.


“예, 저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 회사에서 현재 중역직을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서 주저하지 말고 말을 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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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좀 지나치다는 것은 제 자신도 알고 있지만, 제가 죽기 전에 그 회사를 송두리째 제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주물러 보고 싶은 생각에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신사는 매우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싹싹 비비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사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이해가 간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허어, 욕심이 대단하시군, 그럼 그 회사의 회장이 되는 게 소원이라 이 말이렷다?”

"예예, 그렇습니다만…….“


"그래요? 그런 일이라면 이주 간단하고 말고……. 그러나, 이것만은 꼭 알아 두어야 하오. 그 소원이 이루어진 다음에 다시 다른 엉뚱한 욕심이 생겨도 그땐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말이오. 내가 지어 드리는 약은 단 한 번의 효과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다시 다른 소원으로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하오.”

“예예,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 일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사는 벌써부터 그 회사를 손아귀에라도 넣은 듯 매우 황송하면서도 들뜬 표정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정말 이다음에 다른 욕심이 생겨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꼭 약속할 수 있겠소?”


"예예, 약속하고 말굽쇼.”


“좋아요.”


노인은 곧 종이쪽지에 처방전을 적어 심부름하는 청년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쪽지를 받아 쥔 청년은 방안 가득히 빽빽이 진열된 약 서랍을 뒤져 가며 삽시간에 약을 지어 손님 앞에 내밀었습니다.


“자, 그럼 또 다음 손님!”


신사는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처방전을 받아가지고 나가고, 이번엔 매우 아리땁게 생긴 아가씨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대의 소원은?”


노인은 녹음기에서 나오는 목소리처럼 이번에도 똑같은 어조로 물었습니다.


아가씨는 유난히 길고도 아름다운 눈동자를 깜박거리며 고운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오직 미스 코리아가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세 번이나 대회에 나갔다가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꼭 한 번만 미스 코리아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아가씨의 말을 들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 소원만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 이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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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알겠다는 듯 이번에도 서슴없이 쪽지에 글을 적어 청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약을 받은 아가씨는 너무나 좋아서 활짝 핀 얼굴로 방을 나섰습니다.


“자, 또 다음 손님!”


노인의 부름에 따라 이번엔 다시 한복 차림의 젊은 부인이 성큼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젊은 부인은 결혼을 한 지 5년이 되도록 아기를 못 얻었다고, 아기를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엔 로또에 당첨되어 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또 그다음에는 높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는 새파란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손님들은 잠시도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저마다의 소원을 말하고 약을 받아갔습니다.


정말 손님들이 요구하는 꿈이나 소원은 모두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그날도 손님들을 정신없이 받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을 선 채 자기의 차례가 오기를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이쯤에서 손님을 그만 받고 내일 또 받으심이 어떠실는지요?"


청년 역시 하도 피곤했음인지 터져 나오는 하품을 간신히 꿀꺽 참아가며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청년의 말에 노인은 문득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어이구,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자, 그럼 오늘은 한 사람만 더 받고 끝내도록 하지.”


청년은 다시 방문을 열고 오늘의 마지막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손님은 헙수룩한 차림의 시골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의 모습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순진하면서도 성실한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듯했습니다.


한동안 청년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던 노인이 여느 때처럼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자, 젊은이는 무슨 소원이 있기에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는고?“


“예. 저는 지금까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온 무식한 청년이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농사를 짓고 살아갈 생각입니다.”


"음, 그런데?”


노인은 뜻밖에도 매우 흥미있는 손님을 만났다는 생각에 정심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예, 생각같아서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으나 이놈의 건강이 좋지 않아 가끔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몸이 말을 안 듣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노인은 더욱 흥미롭다는 듯 다시 물었습니다.


“예, 사실은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도 제 몸이 좀 약해서 일을 못하고 누워있어야 할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이 가장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 그래서?”


"그래서 건강하고 튼튼한 몸이 되어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럼, 젊은이의 소원이 고작 그것뿐이란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몸만 튼튼하고 건강하여 부지런히 일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서 또 무엇이 더 부럽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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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청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매우 만족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허허, 과연 갸륵한 청년이로군! 자, 그럼 이 청년에게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약을 지어 드리도록 하여라. 그리고 절대로 병에 걸리지 않고 힘이 부쩍부쩍 샘솟을 수 있는 특별한 약도 잊지 말고 같이 넣도록 하여라!”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청년의 믿음직한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남은 손님들은 내일 받기로 하고 문을 닫은 다음 노인과 청년은 함께 잠자리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손님들은 모두가 지금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겠죠?”


청년은 느닷없이 노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천만의 말씀, 사람의 마음속은 오만 가지 소원이나 욕심으로 가득차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고 나면 꼭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걸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욕심이 머리를 들고 일어나곤 하지.”

“예에, 그럼 이곳에 왔던 손님들은 머지않아 다시 이곳을 찾아오겠군요?”


“아마 그럴는지도 모를 일이지. 그러나 나에게는 한 가지 소원 외에는 더 이상 이루어 줄 수 있는 재주가 없으니 그 사람들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셈이지.”


“그럼 이곳에 찾아왔던 손님들은 얼마 후엔 다시 모두가 불행해지겠군요?”


“그렇지. 그렇게 될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단 한 사람, 그 사람만은 꼭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그게 누군데요?”


“바로 조금 전에 다녀간 시골 청년 말일세. 이 세상에 몸만 건강하다면 그 무슨 소원도 이룰 수 있게 마련이거든. 정말 그 청년 한 사람만 빼놓고는 모두가 어리석은 손님들이었단 말이야.후유우~~~”


노인은 갑자기 마음속이 답답했음인지 가슴 속 깊이 응어리졌던 긴 한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어리석기 그지없는 손님들을 받기 위한 ‘소원의 집' 의 새벽은 다시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