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지레 짐작이 화를 부르기도 한다]
지방에 있는 작고 아담한 학교입니다.
그날, 둘째 시간은 수학이 들어있는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자리 뺄셈을 푸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칠판 가득 수학 문제를 내주셨습니다.
“수학이란 선생님의 설명도 중요하지만 자기 힘으로 많은 문제를 자꾸만 풀어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요. 자, 그럼 이제부터는 여기 칠판에 있는 문제를 풀어 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잘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서슴지 말고 질문을 하도록 해요.”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저마다 공책에 문제를 풀기 시작하였습니다.
수학 공부는 언제나 어렵기도 하고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입니다.
연필 끝에 연신 침을 묻혀 가며 계산을 하는 아이, 열 손가락을 있는 대로 펴 놓고 접었다 폈다 하며 그래도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연신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지 계속 뒤통수를 벅벅 긁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앉아 있는 아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지 앞과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조금만 보여 달라고 졸라대는 아이 등등…….
문제를 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모두가 수학 박사라도 된 듯, 귀엽고도 진지하기만 합니다.
평소에도 남달리 성적이 뛰어난 윤숙이는 누구보다도 먼저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되겠다는 욕심에서 부지런히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막히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조금 전에 선생님의 설명을 머리에 떠올리며 열심히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윤숙인 오늘 새로 배운 뺄셈이 먼젓번에 배운 덧셈과는 달리 약간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 문제, 두 문제 풀어나가는 동안 차츰 깊은 재미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윤숙인 드디어 칠판 가득히 내준 문제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다 풀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검사를 받기 위해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언니! 언니이……!”
복도 쪽에서 갑자기 윤숙이를 부르는 고함이 들려왔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까지 문제를 풀기에 정신이 없던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난 복도 쪽을 바라봅니다.
언제 어느 틈에 왔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 교실 밖 복도에는 윤숙이의 동생인 윤정이가 언니를 부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언니, 빨리 나와 봐, 어서!”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그만 저마다 한 마디씩 지껄이며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히야아~~~ 우리 반 단골손님이 드디어 또 나타나셨군, 하하하…….”
“출석부에도 이름이 없는 아이가 또 오셨단 말이야, 호호호…….”
"그러게 말이야. 저 애는 드문드문 학교에 나오니까 개근상을 받기는 다 틀렸다. 그치? 호호호…….”
“정말 웃기는 아이야. 하하하…….”
윤숙인 순간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책상 위에 푹 엎딘 채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윤정이는 언니의 속도 모르고 여전히 소리소리 지르며 어서 나오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윤정이는 툭 하면 학교에 자주 찾아오는 단골손님입니다.
아직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안된 윤정이는 언니가 학교에 가고 나면 빈 집에 혼자 남게 됩니다. 이웃에 친구도 별로 없기 때문에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학교로 쪼르르 달려와서 언니를 귀찮게 하곤 합니다.
아니 귀찮은 게 문제가 아닙니다. 동생이 학교에 오게 되면 그날 윤숙이 반의 수업은 엉망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윤숙이는 그럴 때마다 제발 학교에 찾아오지 말라고 그렇게 타일러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윤숙아! 동생이 저렇게 부르는 걸 보니 몹시 급한 모양인데 어서 나가 보렴.”
그러자 선생님도 답답했는지 윤숙이에게 달래듯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숙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복도를 향해 급히 걸어 나갔습니다.
화가 잔뜩 난 언니를 보자 윤정이는 조금 겁이 난 표정으로 슬금슬금 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언니! 빨랑 집에 가자, 응? 지금 집에는 말이지, 집에는 으응…….“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난 윤숙인 더듬거리며 말하는 윤정이를 보자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순간 윤숙이는 주먹으로 동생의 머리통과 등을 사정없이 마구 때리며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합니다.
“누가 너더러 학교에 오랬어? 오지 말라는데 왜 자꾸만 와서 이렇게 속을 썩이는 거야, 응? 엉엉엉…….“
윤정이는 뜻밖의 언니의 주먹 세례를 받자 덩달아 울면서 매를 맞고 있습니다.
복도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자 교실마다 문이 열리면서 수업을 하던 선생님들이 둥그렇게 된 눈으로 모여듭니다.
윤숙이 선생님도 계속 주먹질을 하고 있는 윤숙이를 떼어놓기 위해 진땀을 뺍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성이 풀리지 않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윤숙일 간신히 교실로 들여보내 놓고 이번에는 울고 있는 윤정이를 달래주기 시작합니다.
“윤정아, 뚝 그쳐! 언니가 참 나쁘구나. 이렇게 예쁘고 착하게 생긴 동생을 마구 때리다니 말이야. 선생님이 이따가 언니를 혼내 줄 테니까 오늘은 그냥 돌아가렴. 응?”
선생님이 하도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는 바람에 윤정인 더욱 목청껏 엉엉 소리내어 웁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발길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날 윤숙인 하루 종일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동생이 밉기도 했지만, 너무 심하게 때렸다는 생각에 문득 동생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엄마한테 혼이 나겠다는 생각도 들어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윤정인 지금 얼마나 아플까? 그리고 얼마나 언니를 원망하고 있을까?‘
그날 수업이 모두 끝났지만, 윤숙인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윤정이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무서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윤숙아, 너 집에 안 가고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니?”
그때, 윤숙이와 가장 친한 정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어?, 으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윤숙인 화들짝 놀란 얼굴로 이렇게 얼버무리고는 그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너 오늘 동생을 때린 일 때문에 걱정이 되고 후회가 돼서 그러는 거 아니니?”
"아, 아니야. 그게 아니란 말이야.“
정미는 정말 눈치도 빠릅니다. 어떻게 그렇게 남의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모를 줄 알고? 그건 그렇고 너 오늘 우리 집에 안 갈래?”
"……?”
정미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윤숙이 곁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갑자기 무슨 비밀 얘기라도 하려는 듯 귓속말로 소곤거리고 있었습니다.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알았지? 오늘이 마침 내 생일날이라 너를 특별히 초대하고 싶어서 그래. 어때, 우리 집에 같이 가 주는 거지?”
정미의 말에 윤숙이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가야하고말고.”
윤숙이는 정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으로 가기가 두려워서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던 윤숙이었습니다. 윤숙이는 마침 잘 됐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어느새 정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정미하고 사이좋게 지낸다니 정말 고맙구나. 차린 건 변변치 않지만 많이 먹고 재미있게 놀다 가렴.”
정미 엄마는 윤숙일 보자 반색을 하면서 생일 케이크와 과일 등을 푸짐하게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푸짐한 대접을 받아보기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은 윤숙인 이제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윤숙아, 우리 이번엔 장난감 놀이하러 가지 않을래?”
정미는 곧 윤숙이의 손을 이끌고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
윤숙인 그만 저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방 안에는 예쁘고도 값진 장난감들이 그득하게 진열되어 있어서 마치 장난감 가게 같았습니다.
정미는 장난감들을 하나씩 들고 태엽을 감기도 하고 스위치를 넣기도 하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법을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정미의 손이 닿자 장난감들은 저마다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북을 신나게 치고 있는 곰 인형, 요란스럽게 사이렌을 소방차와 경찰차, 그리고 각종 미니카와 레일을 따라 신나게 돌며 기적을 울리는 기차 등등…….
윤숙인 너무 신기하다 못해 얼이 빠진 채 장난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윤숙이가 부럽다는 표정으로 문득 물었습니다.
“우와아~~~ 이 장난감들이 모두 다 네 꺼니?”
“응, 우리 아빠가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선물로 사다 주신 거야.”
"으응, 그랬었구나!”
윤숙이는 그런 아빠를 둔 정미가 몹시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문득 외삼촌의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윤숙이 외삼촌도 작년에 기술자로 뽑혀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평소에 윤숙일 몹시 귀여워하던 외삼촌은 외국으로 떠난 후에도 가끔 예쁜 사진이 담긴 엽서에 편지를 써서 보내주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잠깐 귀국했다가 다시 외국으로 간다는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귀국할 때는 선물을 사다주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외삼촌은 정말 언제 올까, 그리고 무슨 선물을 사 올까?‘
그날 저녁, 정미네 집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놀던 윤숙이는 오후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한테 야단맞을 생각에 불안하고 초조하여 살금살금 조용히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너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늦었니?”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있던 엄마가 어느 틈에 윤숙이가 들어오는 것을 알고 먼저 물었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두려운 마음에 고양이 걸음을 걷고 있던 윤숙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발걸음을 멈춘 채 엄마의 표정을 살핍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처럼 엄마는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윤숙인 그제야 겨우 마음이 놓였습니다.그러자 엄마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왜 무슨 일로 심부름을 보낸 동생을 그렇게 흠뻑 때려서 울려 보냈니?”
“……?”
오늘 윤정이를 시켜 심부름을 보냈었다는 엄마의 말에 윤숙이의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까 외삼촌이 왔었단 말이야. 시간이 없어서 금방 가야 된다기에 공부가 끝나는 대로 얼른 집으로 오라고 윤정일 보냈었는데 얘기할 틈도 주지 않고 때렸다면서? 도대체 왜 그런 거니?”
엄마의 말에 윤숙인 더욱 놀란 얼굴로 엄마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럼 외삼촌은……?“
”네가 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막 떠났단다. 그런데 오늘따라 도대체 왜 그렇게 늦게 왔니?”
윤숙인 그만 맥이 탁 풀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심부름을 왔던 것도 모르고 동생을 만나기가 무섭게 때려서 울려 보낸 제 자신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 보렴. 뭔지는 모르지만 네가 오면 주라고 외삼촌이 선물을 사 왔더라.“
윤숙인 급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한쪽 구석에는 예쁜 포장지로 싼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랫목에는 윤정이가 예쁜 인형을 껴안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 인형 역시 보나마나 외삼촌이 사온 선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윤숙인 선물 상자는 풀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살그머니 무릎을 꿇고 앉아 윤정이의 자는 모습을 내려다 봅니다.
윤정인 얼마나 울었던지 지금도 눈두덩이 부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뺨과 이마에는 군데군데 매를 맞은 자국이 아직도 벌겋게 얼룩이 져 있었습니다.
윤숙인 순간 동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옵니다.
‘윤정아! 용서해 다오, 응? 그런 줄도 모르고언니가 정말 나쁘다, 그치?’
윤숙인 어느새 동생의 뺨에 얼굴을 비비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런 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잠이 든 윤정이의 얼굴에도 생긋 귀여운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