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 학생 중, 프래더윌리 증후군을 갖고 있는 지적장애 학생이 있다. 프래더 윌리 증후군은 식탐조절이 잘 안되 비만과 다른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희귀 유전병이다.
평소에도 먹을 것을 보면 잘 못참고 친구 먹을 것을 가져간다거나, 급식실에서 떨어진 치킨 조각을 집어먹기도 하고, 고집도 센 특징이 있어 갑자기 자리 이동을 해야하거나 챙겨야 되는 준비물을 못 챙겨면 그 순간 망부석이 되어 한 발짝도 이동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1학년 초, 이 친구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고집을 피우는 일로 애를 참 많이 먹었다. 특성을 파악하고, 나름 잘 대처한다고 해도 통합학급에서의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순 없었다. 간혹 망부석이 되 통합학급이나 특별실에 불려갈(?)때면 그야말로 온 몸이 굳어 있는 채로 땀을 흠뻑 흘리고 있다. 처음엔 소리도 꽥 질러보고, 가만히 나둬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일단 잘 달래서 상황을 벗어난 뒤 지도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아무튼, 자주는 아니지만 고집을 피울때면 곤혹스러울 때가 꽤 있었다.
먹고싶은 충동을 잘 참지 못하니 친구들 과자나 먹을 거리를 슬쩍 가져가는 버릇도 있었다. 가져간 것이 걸려서 타일러도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 보여주기 전까지는 끝까지 안가졌다고 부인한다. 대신 코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지만.. 시간이 지나니 먹을 것 뿐만 아니라, 친구들 학용품, 선생님 물건 등 잡다한 것까지 가져가기도 했다. 여러번 혼이 나고, 경찰서에 가려는 퍼포먼스까지 해서 겨우 줄어들긴 했지만, 욕구불만인지 정말 그 물건을 갖고 싶은 건지 그런 행동이 없어지진 않았다.
몇 주전에 또 일이 났다.
방과후 수업을 마친 뒤 교실에 남아 있는데 학생부 선생님과 학생들이 특수학급에 들어왔다.
"이 학생이 특수학급 학생 맞나요?"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던 학생들이 옆에 벗어놓은 조끼가 없어졌다고 학생부에 가서 신고한 뒤 cctv를 살펴보니 우리 학생이 가져간 것 같다는 이야기었다. 챕쳐된 사진을 보니 실루엣만 봐도 방부석 그 친구였다. 일단 정확한 확인을 위해 학생부 cctv를 돌려봤다. 화면에 나타난 그 친구는 조끼를 슬쩍 들어 가져가더니 학교정문에 차가 들어오자 바닥에 조끼를 던졌다. 잠시 머뭇 거리더니 이내 조끼를 집어 정문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또렷이 찍혔다.
"휴.. 우리 학생 맞네요. 일단 제가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지도하겠습니다"
어머니께 전화드리니 집에 들고온 조끼가 없다고 한다. 아마도 조끼를 오는 길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 다행히 어머니가 추궁하고 학생이 이야기했는지 다시 조끼를 찾았다는 전화가 왔다.
'에고, 다행이네..'
조끼를 못찾았으면 일이 더 복잡해졌을텐데 이제 조끼 돌려주고, 사과시키고, 적당히 벌 주면 되겠구나 생각하던 터에 다시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우리 애가 그러네요. 그 조끼입은 애가 자기 괴롭혔다고...."
'아이쿠...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겠구만..'
순간 학교폭력 사건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일단 상황파악을 해보겠다며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상황이 순간 역전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냥 사과시키고 타일러서 마무리할 일이었는데 장애학생 피해자, 가해자 일반학생인 골치아픈 학교폭력 사건을 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짜증이 팍 났다. 웬지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면 이 친구가 그냥 조끼가 갖고 싶어서 또는 그냥 순간적인 충동에 조끼을 집어 나온게 뻔한데 조끼가져간게 걸리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핑계를 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기를 한번에 반전시킨 그 친구의 임기응변에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다.
'아.. 놔.. 진짜'
일단 학교 오면 무섭게 추궁하겠다 다짐하며, 조끼 주인 이름을 모르면 이 친구가 거짓말한게 들통나겠다는 생각에 아침이 되자 마자 그 친구를 불렀다. 조끼 누구 것인지 아냐고 묻자, 이름이 쭉쭉 나온다. 심지어 어머니랑 통화해보니 조끼 주인과 다른 친구들이 우리 학생에게 짖굳은 장난을 친 정황히 비교적 자세했다. 심하게 괴롭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 별명을 부르게 시킨다던지, 볼을 만진다든지 하는 장난이었다. 우리 학생이 평소에 친구가 자기에게 어떤 행동을 했다는 말이나 표현을 잘 안하는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쌓였던 것 같다. 통합학급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서 그 반 학생들과 소통하며 쉬는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그 통합학급 분위기나 학생들 관계도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터라 나도 나름 충격이었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장애학생들과 지내다보면 긍정적으로는 학생들을 대할 때 비장애학생과 다름없는 태도로 대하기도 하고 단점으로는 장애의 고유한 특성에 무뎌진다는 점이다. (특수교사가 장애 특성에 무뎌진다니 참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통합된 환경에서 학생 모두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과 장애 특성을 고려해 어느정도 배려해야 하는 점 사이에서 간극을 적당히 조절하는 것은 특수교사의 몫이다. 최대한 모든 학생이 지키는 틀에 들어가게끔 하고, 가능하면 모든 룰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은 통합을 위해 매우 중요한 작업이지만, 이들이 특별한 요구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한다. 그런 간극에서 간혹 장애 특성을 악용(?)하려는 귀여운 친구들이있어 그 분별 지점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안사안마다 학생 개인에게 어떤 조치가 가장 효과적인지, 긍정적인 대처인지를 고민하는 수밖에.
일이 터지고, 몇일 후 당사자 학생을 불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갑자기 분위기 잡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서 그런지 그 학생이 혼나는 상황인줄 알고 바짝 긴장했다. 간식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글로도 적게 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이정도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던 지점까지 그 학생은 느끼고, 생각해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여긴 내가 이런 감정까지도 잘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통합을 위해 특수성이 옅어진 특수교사. 다시 한번 반성과 고민이 드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