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개새끼'의 시대

by pdh

다시 ‘개새끼’의 시대다. 누구나 다 아는 그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내란 실패 이후 보무(步武)도 당당한 국방장관, 방첩사령관 등을 위시한 내란 세력들과 탄핵을 거부한 보수 정당을 두고 하는 말이다. 탄핵 트라우마 때문에 탄핵에 찬성할 수 없다는 보수 정당은 한 번도 계엄의 트라우마를 시달려 본 적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그들은 계엄령의 시대를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다. 계엄의 시대에 부역하면서 기득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자기들만의 성채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1980년대의 군부세력은 ‘개새끼들’이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도 부들부들 떨려왔던 것은 개새끼들로 가득한 장면 때문이었다. 그 장면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한 시인은 그들의 모습을 ‘개새끼’로 형상화했다. 박상우의 「상소리 해부도」다. 그 시의 일부를 보자.



1. 개 같은 새끼에 대하여


개 같은 새끼는 개새끼까지는 안 되고 개와 거의 비슷한 사람새끼이고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새끼이고

또 개 같은 새끼는 개새끼적인 너무나 개새끼적인 사람새끼이고

사람새끼가 개새끼화된 사람새끼이고

개새끼와 이란성쌍생아인 사람탈만 쓴 사람새끼이다.


2. 개새끼에 대하여


개새끼는 당연히 사람새끼가 아니고 개새끼와 똑같은 사람새끼이고

사람새끼와는 2억 광년쯤 떨어져 있는 사람새끼이고

또 개새끼는 개새끼 자체인 너무나 개새끼 자체인 사람새끼이고

개새끼가 사람새끼로 환생한 개새끼 탈을 쓴 사람 새끼이다.


-박상우, 「상소리 해부도」 부분, <<우리들 사랑-60년대생 시집>>(청하, 1988)



‘개 같은 새끼’가 있고 ‘개새끼’가 있다. ‘개 같은 새끼’는 “개새끼까지는 안 되고 개와 거의 비슷한 사람새끼”,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새끼”, “개새끼적인 너무나 개새끼적인 사람새끼”, “사람새끼가 개새끼화된 사람새끼”, “개새끼와 이란성쌍생아인 사람탈만 쓴 사람새끼”라는 게 시인의 개념 정의다. 물론 시인의 이런 말장난은 ‘개새끼’라는 말을 무작정 반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래야 속이 풀리는 것이다.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으므로, 그다음은 ‘개새끼’다. ‘개새끼’의 개념 정의는 “당연히 사람새끼가 아니고 개새끼와 똑같은 사람새끼”, “사람새끼와는 2억 광년쯤 떨어져 있는 사람새끼”, “개새끼 자체인 너무나 개새끼 자체인 사람새끼”, “개새끼가 사람새끼로 환생한 개새끼 탈을 쓴 사람새끼”로 진술된다.


‘사람새끼’와 ‘개새끼’를 오가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런 욕설을 불러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는 그가 1980년대의 ‘개새끼’, 혹은 ‘개 같은 새끼’였음에 대한 선포다. 개새끼가 갑자기 출현한 것인가? 개새끼는 우리 사회 도처에 각 기관마다 도사리고 있다. 사람새끼의 얼굴을 하고 개새끼가 아닌 척하면서 우리 사회의 개새끼화를 시도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윤석열은 보수세력의 악마적인 무의식이다. 억압되어야 할 무의식이 현실원칙의 통제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활보하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무섭지 아니한가. 미친 개새끼의 지배를 받는 개 같은 일들이 은밀히 진행 중이었고 결국 현실화되었고 가까스로 그 진행이 멈추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여전히 그 개새끼들이 활보하고 있고, 가장 개새끼다운 개새끼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1980년 광주의 죽음이 서울에서 일어날 뻔했다. 계엄령이 해제되지 못했더라면, 과연 시민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시민들의 격분을 온몸으로 막아야 하는 계엄군들은 차분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개새끼들’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 손으로 선출해 낸 ‘개새끼’를 ‘질서 있게’ 야생으로 돌려보내자는 이들 역시 개새끼 같은 사람새끼, “개새끼 자체인 너무나 개새끼 자체인 사람새끼”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