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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향기 Aug 09. 2021

여름꽃 금화규, 대단하다

시골 요양병원의 꽃밭을 기록합니다


요양병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곳, 죽음이 가장 가까이 있는 곳, 죽음이 일상인 곳입니다. 그런데도 매 번 임종이 가까운 분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런 걸까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죽음입니다. 


매일 나고 죽는 요양병원의 꽃밭


안 좋은 머리로 고민하다 보면 마음이 길을 잃어 꽉 막힙니다. 그럴 때는 요양병원 산책로를 걷는 것이 상책입니다. 저희 요양병원은 시골 논바닥 한가운데 있습니다. 사방이 초록이고 꽃이 많습니다. 봄이면 고민 고민해서 꽃씨를 뿌리는 분이 계신 덕입니다. 어느 해에는 백일홍이 무성하게 피고 지더니, 어느 해에는 패랭이꽃이 병원을 가득 채웠습니다. 허브가 많은 밭도 해마다 판도가 달라집니다. 작년에는 박하가 뿌리를 죽죽 뻗어가더니, 올해는 민트가 밭 한쪽을 다 뒤덮었습니다. 그리고 올여름에는 금화규가 우뚝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자연은 한 번 밖에 없는 생애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살고 죽는 문제 앞에서 한치의 양보가 없고, 치열하고 얄짤이 없으며, 어떻게든 살아내는 자연입니다. 단 하나의 풀도 배짱을 부리지 않고, 요행을 바라지도 않으며, 헛꿈도 꾸지 않고, 고집도 부리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자연입니다. 누구도, 절대로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는 것처럼 꽃밭의 꽃과 풀도 이 순간이 전부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여름, 첫선을 보인 금화규


흙이 좋으면 뿌리도 튼튼합니다. 뿌리가 튼튼하면 꽃도 실하고 상처가 없으며 아름답습니다. 처음으로 꽃밭에 자리를 잡은 금화규가 그랬습니다. 7월이 되자 곧게 키가 자라기 시작했고, 7월 말 여름 더위와 함께 보드라운 연노랑 꽃이 피었습니다. 꽃은 아침마다 활짝 피어났다가 해가 기울면 같이 저물었습니다. 


말없이 피고 지는 금화규를 지켜보면서 저도 덩달아 생사에 초연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피고 지는 일과 나고 죽는 일은 나의 소관이 아니다' 인정하게 되죠. 산책이 끝날 때쯤이면 '쓸데없는 고민 그만하고 이 순간의 삶에 충실할 것, 그것이 나의 할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금화규는 멸종 위기였으나 대량 재배에 성공하여 널리 알려진 꽃이라 합니다. 금화규 추출물은 달팽이 점액보다 점증성이 높다고 확인되었습니다. 피부의 탄력, 수분효과가 월등해서 화장품 원료로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JAKO202031064816620.pdf (koreascience.or.kr)


금화규의 효능은 시골 동네 어르신들이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꽃을 물에 우려내면 다시마같이 끈적한 콜라겐이 나옵니다. 그 물을 마신다는 어르신이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뜨거운 물에 꽃 한 송이를 담갔습니다. 몇 시간 지나자 미끈한 점액질이 우러나왔습니다. 쓴맛이나 신맛이 전혀 없어 마실만 했죠. 흐물거리는 꽃잎으로 팩을 하라 했지만 저처럼 게으르면 주는 밥도 못 얻어먹습니다.


닥풀(황촉규)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금화규와 성능과 모양이 거의 똑같은 꽃이 있습니다. 닥풀(황촉규)이라는 꽃입니다. 닥풀은 해열, 해독, 면역력 등에 쓰이는 한약재로 본초강목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닥나무로 한지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식물이었습니다. 닥풀의 점성이 없으면 균일하고 얇은 한지를 만들 수가 없다 합니다. 중국이 부러워했던 한지 보유국이 또 우리나라인지라 닥풀이 더 각별하게 다가왔습니다.

한지제조과정 | 한지산업지원센터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hisc.re.kr)




혼자 골머리 썩히며 좌절하고, 천지 간에 고아처럼 외롭다가 산책이 끝날 때쯤이면 기분이 좋고 얼굴이 확 펴집니다. 한껏 성장한 느낌입니다. 씨앗 하나가 왕성하게 성장하여 사람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철도 들게 했습니다. 자연의 막강한 힘을 경험하며 같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산책을 마친 저는 제 삶의 터전인 요양병원 문 안으로 돌아갑니다. 어르신들의 마지막 삶을 함께 하는 것이 저의 삶이고 과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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