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변해 가는 우리들의 도시 공간
이전 글에서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이 디지털 문화의 영향력을 가속화시켰고 이로 인해 인간관계, 시공간의 개념, 그리고 사회 전반의 분야에서의 변화와 혁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생활 패턴의 변화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도시의 진화로 이어질 것이다. 집, 직장, 학교, 관공서, 각종 문화 및 상업 시설들이 집중되어 우리의 일상을 유기적이며 복합적으로 담아내는 환경이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팬데믹 이후 우리들의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우선 도시 중심지의 기능이 지금과는 성격이 많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재택근무, 온라인 쇼핑, 배달 문화 등의 영향으로 소위 역세권 위주의 오프라인 공간의 필요성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사무실, 백화점, 은행, 식당, 학원 등이 완전히 없어진다거나 중심지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말은 아니다. 앞으로의 도시 중심가는 업무, 행정, 상업(쇼핑) 등의 필수적인 장소라기보다는 문화, 예술, 놀이 등 대인 간 교류와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기 위한 장소로 점차 그 성격이 진화할 것이다.
비싼 임대료와 관리비가 드는 오프라인 공간을 갖지 않더라도 다양한 온라인 방식을 통해서 업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공급자(회사, 스토어 등)들은 점차 중심가를 떠나거나 물리적인 공간을 줄여 나갈 것이다. 소비자(우리들)도 집이나 동네에서 대부분의 필수 업무를 해결할 수 있는데 복잡하고, 먼 중심가까지 갈 이유가 없다.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는 한 말이다.
도시 중심지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 1980년대 텔레비전에서 스포츠 중계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대형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이 줄어들었다. 오고 가는 고생을 하고, 입장료를 내가며 경기를 볼 필요도 없이 집에서 TV로 보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기장은 그곳을 직접 방문해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서비스와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고 있다. 이제 스포츠 경기장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고 기발한 응원 문화, 교육 프로그램, 어린이 놀이 공간, 클럽, 스위트, 바비큐 구역 등 다양한 이벤트와 경험을 체험하기 위해 찾는 문화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도시 중심가도 그곳을 방문해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해 갈 것이다. 온라인이나 동네에서 해결될 수 있는 기능들이 빠져나가면서 중심가는 조금 더 여유로운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유익한 공공 공간들이 건물 내외로 생겨나고 보행자 중심의 도심 광장과 야외 공원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중심가 안에서도 다양한 구역들이 형성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 개발의 키워드는 성장이 아니라 재생이다. 새로운 건물을 짓기보다는 기존의 건물의 잉여 공간과 인프라를 어떻게 변해가는 생활 패턴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느냐가 중요해진다 [1].
애플이나 삼성 매장처럼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보다는 경험의 기능을 중시하는 쪽으로 상업 시설이 변화할 것이고 업무 시설도 집과는 다른 경험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유동 인구가 코로나 이전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소규모 상점들은 많이 없어지겠지만 거리 상인, 포장마차, 푸드 트럭 등 가변적이고 이벤트 성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이러한 도시는 한 두 사람에 의해 계획(top-down)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만들어 나가는(bottom-up) 곳이다 [2].
도시 중심지의 기능이 변하면서 동네의 기능은 강화될 것이다.
도시 중심지가 다채로운 경험을 주는 공공 광장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 반면에 동네의 밀도와 기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될 것이다. 도시 중심가 내의 동네는 물론이거니와 도시 외곽의 동네들은 지금처럼 무한 확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밀집된 작은 동네로 구성되어질 것이다. 이러한 밀집형 다중심 동네 (compact polycentric neighborhood)들은 주거, 상업, 문화, 여가 등의 시설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영역(대략 15분) 내에 밀도 있게 존재하는 곳이다 [3]. 도시 중심지를 가지 않더라도 동네에서 대부분의 필수 기능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김난도 외 8명의『트렌트 코리아 2021』에서 말하는 슬세권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영역)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네는 자동차보다는 걷거나 자전거나 스쿠터 (micromobility)를 타고 다니기 좋은 곳이다. 미래에 무인 자동차나 자동차 공유 시스템(vehicle sharing system)이 일상화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입할 필요성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밀집형 다중심 동네는 미국의 교외 주택가(suburban residential neighborhood)와는 성격이 다르다. 미국의 교외 주택가는 자가용이 필수인 도시 유형이기 때문이다 [4]. 오히려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기능들이 비교적 밀집된 여러 개의 동네로 이루어진 뉴욕시티에 더 가까울 것이다. 도시 중심가인 맨해튼에는 22%의 가구만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퀸즈, 브롱스, 브루클린 등을 합친 뉴욕시티 전체의 평균은 45%이다. 이는 2020년 기준 93.3%인 미국 전체에 비해서 상당히 낮은 평균이다.
우리나라의 신도시들도 자족 기능을 갖춘 도시 형태로 개발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규모가 너무 크다는 느낌이 든다. 보행자 스케일이 아닌 자가용 스케일의 단지 계획이어서 여러 개의 슬세권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다.
입주자들을 위한 주민 공용시설과 단지 외부와의 경계를 형성해서 안전하다는 등, 규모로 인한 이득도 있다. 하지만 도시의 맥락에서 볼 때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그 덩어리가 너무 크다. 걸어 다니기 좋은 동네는 다양한 상업, 문화, 주거, 공공시설이 밀도 있게 배치되는 곳인데 아파트 단지로 인해서 그 흐름이 끊어지는 것이다. 바다에 떠 있는 섬이나 평지에 우뚝 솟은 산처럼 주변의 흐름을 단절시킨다. 다양한 형태의 주거, 근린 생활, 문화, 종교, 판매, 의료, 교육 시설이 밀도 있게 형성되는 콤펙트하고 밀도 있는 동네들이 만들어지는 미래를 그려본다.
코로나 사태로 가속화되는 디지털 문화의 확산은 우리의 도시를 한 층 더 진화시킬 것이다. 도시 중심지는 시민들의 경험을 중시하는 공공 영역으로서의 기능이 중요해진다. 무분별한 재개발보다는 기존의 건축물과 인프라를 창의적으로 재생하는 것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고 시민을 위한 양질의 외부공간(공원, 수변공간, 광장 등)을 만드는 데 힘을 쓸 것이다.
이에 반해 동네는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슬세권 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동네가 작아지면서 밀도 있게 진화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서 아파트 단지보다는 공동주택, 단독주택, 상가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 시설이 다른 시설과 함께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아파트의 놀이터와 녹지 공간 등, 사유화된 부대시설 대신에 작지만 다양한 형태의 동네 공공 공간들이 생겨 나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동네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다음 글에서는 코로나로 변해가는 우리들의 집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상단 이미지] 버려진 고가철도를 도심 공원으로 재생한 뉴욕 시티의 하이라인 파트 (https://ny.curbed.com/2019/5/7/18525802/high-line-new-york-park-guide-entrances-map)
[1] 도시 디자인 관점 중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Landscape Urbanism)의 접근 방식과 맥락이 같다. 뉴욕 시티의 더 하이라인 (The High Line) 프로젝트와 서울의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도 좋은 예시들이다.
[2] 택티클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의 접근 방식을 참고하기 바란다.
[3] 제인 제이컵스(Jane Jacobs)의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를 읽어보길 바란다.
[4] 이와 관련해서 더 알고 싶다면 뉴어바니즘(New Urbanism)의 이론들을 찾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