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면 훌륭한 예술인가?
2021년 3월 11일 세계 최대 경매회사인 크리스티(Christie)의 온라인 경매에서 비플(Beeple)의 대체 불가능 토큰(NFT, Non-Fungible Token) 기반 디지털 아트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6930만 달러, 약 772억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2007년 5월 1일부터 2021년 1월 7일까지 5000일 동안 비플(Beeple)이 온라인에 올린 디지털 사진들을 콜라쥬(collage)한 것이다[1].
본명이 마이크 윙클만(Mike Winkelmann)인 비플은 이 경매로 전세계 생존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 세 번째로 비싼 작품의 주인공이 됐다. 참고로 생존 작가 작품 최고가는 제프 쿤스(Jeff Koons)의 ‘토끼(Rabbit)’, 2위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예술가의 초상: 수영장의 두 인물(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이다.
낙찰자는 세계 최대 NFT 펀드의 공동 설립자인 인도 출신 비네쉬 순다레산(Vignesh Sundaresan)으로 밝혀졌다. 그는 비플 작품의 최대 투자자로 알려져 있다.
이 경매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예술 전문 팝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비플의 작품을 두고 “바보 같다(silly)”고 밝혔다.
이러한 반응은 예술에 대한 오랜 논쟁을 상기시킨다. 비플의 작품은 예술인가? 예술이라면 어떤 면에서 훌륭한가?
NFT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아트, 즉 NFT 아트가 비플의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많은 디지털 아트 작가들이 NFT를 예술에 접목시키고 있다. 따라서 비플 작품에 대한 논쟁은 NFT 아트 일반으로 확대할 수 있다. 즉 NFT 아트는 예술인가, 예술이라면 좋은 예술인가를 물어볼 수 있다.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우선 NFT 아트의 개념을 살펴본다. NFT 아트는 소유권 증서를 이더리움의 ERC721(Ethereum Request for Comments 721) 표준 또는 이와 유사한 표준에 따라 NFT로 발행한 예술로 주로 디지털 아트에 적용된다. NFT 아트는 미디어 블록체인(media blockchain)으로서 보다 세분화된 취향 공동체를 지속시킬 잠재력을 갖는다. 이와 함께 NFT 아트는 디지털 아트를 넘어서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이어 NFT 아트의 분류적 측면, 즉 NFT 아트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살펴본다. 분류적 의미의 예술 정의는 현대 예술 정의론에서 다루어왔다. 이 논문에서는 경험으로서 예술, 예술 정의 불가론, 예술제도론, 다원주의 미학 등의 현대 예술 정의론을 검토한 뒤, NFT 아트가 어떠한 방식으로 예술 분류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다음으로 NFT 아트의 평가적 측면을 살펴본다. 다원주의 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예술은 그 나름의 기준에서 좋고 나쁠 수 있다. 즉 NFT 아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NFT 아트의 기준에서 어떤 NFT 아트는 훌륭하고 어떤 NFT 아트는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NFT 아트의 평가적 기준은 NFT 아트가 어떤 심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벤야민과 그 이후 아우라(Aura) 이론을 검토할 것이다. 즉 회화의 아우라, 기술 복제 시대의 탈아우라(Entauratisierung), 오리지널 프린트(original print)의 의사 아우라(Scheinsaura), 디지털 이미지의 아우라 없는 아우라(Aura ohne Aura)로 이어지는 논의를 살펴보고 NFT 아트가 갖는 아우라의 특성을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NFT 아트는 미디어 블록체인의 탈중개화 속성을 바탕으로 세분화된 탈중앙화된 심미적 공동체를 보다 지속가능하도록 만든다.
NFT 아트는 분류적 의미에서 예술계를 탈중앙화한 심미적 공동체에 의해 NFT 기술을 활용해 예술 감상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평가적 의미에서 NFT 아트는 중앙화된 예술계의 상업화된 의도에 따라 오리지널 프린트와 유사한 의사 아우라를 디지털 이미지에 부여하고 고가 거래를 통해 의사 아우라를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NFT 아트의 잠재력은 디지털 이미지의 아우라 없는 아우라 특성을 계승한다. 탈중앙화된 다양한 규모의 심미적 공동체가 자신들의 일상 속 의미 있는 경험을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흔적으로 남긴다. 이러한 흔적 중 일부는 NFT 기반 인증을 통해 아우라를 부여 받고 공유된다.
요컨대 NFT 아트는 분류적 측면에서 제도를 스스로 혁파하는 다원주의 미학의 이상을 탈중앙화된 심미적 공동체의 NFT 기반 자격 부여를 통해 이루어내는 가능성과 평가적 측면에서 경험으로서 예술론에서 기술한 하나의 경험들을 심미적으로 승화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1]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 홈페이지에 올라온 비플 작품 개요는 전형적인 NFT 아트의 작품 개요 형태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는 작가 이름과 작가의 탄생 연도, 작품명, 토큰 ID, 지갑 주소,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주소, 토큰의 유형(NFT), 파일 포맷, 픽셀 수, 용량, 토큰 채굴 일자, 작품 수 등이 공개되어 있다.
출처: 박대민(2021). NFT 아트 : 예술계의 탈중앙화와 흔적의 아우라. <한국언론정보학회>. 109호. 127-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