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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Dec 30. 2020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4.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내 나이 세 살 때, 엄마가 깨소금 볶느라 정신없는 사이 어른 걸음으로 2,30분은 족히 걸리는 큰 집을 나 혼자 군자교를 건너서 갔단다. 마실 갔다 돌아온 큰엄마는 마루에서 혼자 ‘앙앙’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단다. ‘아니, 네가 왜 여기 와 있냐!’ 그 시각, 뒤늦게 내가 없어진 것을 안 엄마는 나를 찾아 시장을 헤매고 다녔단다. 그러다 나를 업고 온 큰엄마를 보고 열이 뻗쳐서 ‘왜 말도 없이 남의 집 애를 데려갔냐!’고 화를 내려는 찰나 큰엄마가 ‘이 언네가 혼자 군자교 건너 우리 집에 왔다’며 신동 났다고 소리소리 지르더란다. 그 바람에 시장 사람들이 죄다 쏟아져 나와 나를 신기하게 보더란다.   

    

그 신동이 다섯 살 때 일이다. 신동은 아버지가 참기름 판 돈을 돈통에 넣는 걸 보고 다짜고짜 ‘나 돈 줘!’ 이러더란다. 어린것의 돈타령에 아버지는 기가 차서 ‘없어!’ 하며 눈을 부라렸단다. 그랬더니 내가 하는 말이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하며 눈을 째렸단다. 그 현장을 목격한 작은 엄마는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냐며 저 나이에 저 말발이면 나중에 뭐가 돼도 되겠다며 욕 같은 덕담을 했단다.      


그 싸가지가 일곱 살 땐 전기도 안 들어오는 연탄 광에 합판으로 대충 만든 똥통에 빠졌더랬다. 세 살 때 혼자 군자교를 건넜던 신동이 고작 사과 궤짝만 한 크기의 똥구멍을 건너지 못한 것이다. 나는 죽기 살기로 엄마를 불렀고 내 절규에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마치 강에서 월척을 낚듯 나를 건져 올렸다. 엄마는 내 다리에 덕지덕지 붙은 똥 찌꺼기를 떼어내며 나중에 얼마나 큰 인물이 되려고 이젠 똥통에까지 빠졌냐며 마치 똥통에 빠진 게 특별한 일처럼 말했다. 그리고는 장차 크게 될 인물이 똥독 올라 죽기라도 할까 봐 똥떡을 만들어 동네에 돌렸다. 똥떡을 받아먹은 주인아줌마는 떡값으로 변소에 전기 다마를 달아 주었다.       


난 어른들의 말을 믿었더랬다. 그들의 말처럼 나는 싸가지 있는 신동이라 크게 될 거라고. 어린것이 뭘 알았겠는가! 그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한낮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난 그저 나이에 비해 길눈은 밝지만 싸가지는 없고 운동신경은 둔한 숏다리였을 뿐이다.     


내 나이 열네 살, 중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일이다. 종례시간에 옆 반 담임인 국어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와서는 다짜고짜 내 이름을 불렀다. “○○○이 누구야?”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내가 뭘 잘못했지?’ 겁에 질려 손을 들었다. 교실의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국어 선생님은 뜬금없이 며칠 후에 있을 글짓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라고 하고는 쌩하니 가버렸다. 담임을 비롯한 모든 애들이 ‘쟤 뭔데?’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황당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속으로 ‘내가 왜?’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어 선생님 반이었던 6학년 때 친구가 글짓기 잘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해서 내 이름을 댔다는 것이다. 6학년 때 글짓기 상 한 번 탄 걸로 친구 덕에 학교 대표까지 되다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됐든 기분은 좋았다. 대회도 나가기 전인데 왠지 입상을 할 것만 같았다. 그래, 이번 기회에 학교 명예를 세워 존재감 있는 학생이 되자. 그런 상상까지 했다.      


하지만 난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대회 하루 전 날 열이 펄펄 나서 학교도 못 갔다. 나 대신 대회에 나간 애는 상까지 타서 애국 조회 때 단상에 올라가 교장선생님에게 표창장까지 받았다. 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꼴이었다.   

   

내 나이 서른 때 ○○대학 문예창작과에 지원을 했더랬다. 딱히 뭘 할 줄도 모르고 잘하는 것도 없던 터라 더 늦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자 싶어 도전을 했다. 떨어질 때를 대비해 집에는 비밀로 했다. 그래도 합격을 간절히 바랐다. 실기시험 당일 아침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가족들은 모두 병원으로 달려갔다. 난 곧 가겠다고 한 후 실기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다.


시험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합격은 따 논 당상이라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폈다. 하필 실기시험 날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니, 아버지 임종 소식을 듣고도 경기에 나가야 하는 국가대표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 합격해서 할아버지 영정에 합격증을 바치자. 그리고 나중에 유명 작가가 되면 오늘 이 에피소드를 꼭 써먹자. 정말이지 난 다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내 상상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내 나이 마흔 살, 크리스마스이브 날 인생역전을 위해 첫 차를 타고 강북에 있는 로또 명당에 갔다. 특별한 날 로또를 사면 왠지 1등에 당첨될 것 같아 그런 날엔 반드시 로또를 구매한다.


저녁에 새벽에 산 로또를 가지고 성탄 전야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갔다. 미사는 길고, 지루했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수차례 하느라 몹시 피곤했다. 잠깐이라도 딴짓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다. 시계를 보니 로또 추첨이 끝났을 시간이었다. 스마트 폰으로 성가를 검색하는 척하며 로또를 검색했다. 당첨번호 대신 당첨판매점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1등 배출 판매점 이름 맨 위에 내가 새벽에 갔던 로또 명당 집 이름이 떡하니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 뜻이 이뤄지는구나. 성당 안에 환희의 찬가가 울려 퍼졌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왔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QR코드로 로또번호를 맞췄다. QR코드를 터치했는데 어마, 어째 이런 일이! 1등은커녕 30개 숫자 중에 딸랑 2개만 맞았다. 이런 젠장. 아까 성당에서 그 분위기는 뭐였는데! 습자지 같던 신앙심이 너덜너덜해졌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비록 내게 일어난 일들이 나 혼자 설레발만 치다 허무하게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이 거지 같은 세상, 그런 것마저도 없으면 어찌 살아가겠는가! 어쩌면 인생은 이런 착각들 덕분에 살아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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