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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Mar 03. 2021

자기  앞의  생

#5.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며칠 전 친구와 걷고 싶은 다리, 광진교를 걸었다. 발아래 흐르는 새파란 강물을 보니 뒤에서 누가 밀까 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 내 꼴을 보고 친구가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는다며 자기를 보면 알지 않냐고 했다. 그도 그런 것이 고등학교 때 천호대교에서 버스가 난간을 박고 강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버스는 친구가 타고 다니는 스쿨버스였다. 사고가 하교시간에 일어나서 우리 학교 학생들 몇 명이 죽었는데 친구는 담임에게 붙들려 생전 안 하던 자율학습을 하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담임 덕에 두 번 살게 됐다나.

내가 그렇게 고마운 줄 알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서 스승의 은혜에 보답 좀 할 것이지, 공부를 그렇게 안했냐고, 나 같았으면 그리했을 거라고 헛소리를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면 또 모를까 난 다시 태어나도 공부는 안 할 것 같다.    

  


다리 중간쯤 오니 난간에 드라이플라워가 묶여 있었다. 얼마 전 누가 이 다리에서 투신했다더니 바로 그 장소인 것 같았다. 한강이 얼어서 수색하기도 어려웠다고 하던데 그 사람은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바로 옆에 SOS 생명의 전화와 CC TV가 있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됐다니, 이게 다 한강 내려다보기 좋으라고 낮게 만든 다리 난간 탓이다. 난간에 가시철망을 두르던가, 아크릴판으로 가벽을 세웠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나도 난간에 매달려 탁 트인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저 강 속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나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절망에 빠진 사람은 오죽하랴! 햇살 받아 반짝이는 저 강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삼켰는지, 또 얼마나 많은 유가족의 눈물을 담고 있는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틱스 강이 떠올랐다.


      

예전엔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용기로 악착같이 살지, 바보같이 왜 죽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지금은 누가 자살했다고 하면 ‘오죽했으면!’이란 생각을 먼저 한다. 자살하는 건 그 사람이 독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절망적이란 얘기다. 사방이 검은 벽으로 둘러싸여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숨조차 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막다른 길…….


     

재작년 여름 지루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토요일 오후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쿵’하고 방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워낙 커서 손이 꼈으면 손가락이 절단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소리가 나고 몇 분 후 조카가 성당엘 간다며 집을 나갔다. 평소엔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하는데 그 날은 그냥 잘 갔다 오라고 인사만 했다. 조카가 나가고 몇 분 후 옆집 할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이웃에 살면서 인사만 나누는 그런 사인데 갑자기 찾아와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가자 할머니가 하는 말이 17층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며 나와서 보라는 거다. 처음엔 이게 뭔 소린가 싶었는데 복도로 나가 1층을 내려다보니 그녀의 말대로 경비실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20대 청년으로 체크무늬 반팔 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의 주변으로는 벽돌색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어머!”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방금 전 집을 나간 조카 생각이 났다. 시간상으로 분명 조카도 저 광경을 봤을 텐데 얘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설마 저 청년이 떨어질 때 부딪혀서 다친 건 아닌지, 죽은 사람 앞에  두고 산 사람 걱정을 했다.

  

나는 집으로 들어와 성당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하고 조카를 찾아보라고 했다. 언니는 내 얘기만 듣고도 놀라서 조카가 충격을 받았으면 어쩌냐고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조카는 사고를 목격한 걸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심지어 내가 사람 죽은 걸 보고도 어떻게 성당에 갈 수 있냐고 나무랐더니 그럼 미사 시간 다 돼 가는데 성당 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 마이 갓! 이리도 신앙심이 깊을 줄이야!      



그다음 날부터 청년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다. 누구는 408호에 사는 아들인데 엄마가 새엄마라 자살을 한 거라 했고 누구는 다른 동네 사는 삼수생인데 수능을 앞두고 성적이 안 올라 자살을 한 거라 했다. 그 말을 들은 어떤 이는 집값 떨어지게 왜 남의 아파트에 와서 죽냐며 욕을 했고 내가 아는 지인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 경비 아저씨가 사건 현장을 청소하느라 충격이 컸을 텐데 왜 휴가를 주지 않냐며 관리소 직원과 몇 날 며칠을 싸웠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산 사람들 말이 많았다.       


그가 떠난 자리엔 검붉은 핏자국만 남았다. 그 자국은 겨울이 오고 다시 여름이 와도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그 핏자국이 싫다며 절대 경비실 앞을 지나다니지 않았다. 경비실 바로 앞이 현관과 연결된 계단인데도 빙 돌아가야 하는 경사로를 이용했다. 경비실에서 택배 좀 찾아오라고 해도 싫다 했다. 그쪽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죽음을 보고도 성당에 간 열한 살 조카와 달리 엄마는 죽음의 흔적만 보고도 두려움에 떨었다. 살만큼 살았는데도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 일이 있고 몇 달 후 한강에서 또 다른 죽음을 봤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다 잠실대교 근처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뭔 일인가 싶어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검은 물체가 물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엔 누가 버린 검은 비닐봉지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검은 바람막이 점퍼였다. 순찰선에 있는 누군가가 긴 작대기로 그 점퍼를 끌어당기려 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선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만 한 인간의 죽음이 쓰레기 취급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죽어서도 대접을 못 받다니 나중에 돌봐줄 남편도 자식도 없는 내 미래처럼 보여 기분이 씁쓸했다. 제대로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죽은 후를 걱정하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枯신해철의 「절망에 관하여」란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

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어∕ 쓰러질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냥 가 보는 거야 ∕그냥 가보는 거야…….    

 

그래, 난 죽을 용기는 없지만 버틸 오기는 있다.

그러니, 당신도 버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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