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노(路) 선생을 처음 본 건 작년 봄이었다. 그는 철수세미 같은 장발에 검은색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와 흰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형태로 보아 빤 옷과 빨 옷을 구분해 담아 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못마땅했다. 한강은 내가 집 다음으로 좋아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노숙자라니, 그로 인해 한강이 훼손되는 것 같았다.
그는 왜 무료급식소가 있고 동료가 많은 서울역을 놔두고 한강에 온 것일까?
그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거나 노상방뇨라도 하길 바랐다. 그래야 그를 한강에서 쫓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내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더 자연친화적이었다.
어느 날은 나보다 더 좋은 자전거를 타고 강바람을 갈랐고 어느 날은 콧노래를 부르며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처음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처지에도 노래가 나오다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 꽃이 피기 시작한 나무 앞에 서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는 기대에 찬 얼굴로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꽃가지를 꺾는 줄 알았다.
눈빛이 반짝거리는 게 몹시 수상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범죄를 저지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꽃을 꺾지 않았다. 꽃향내만 맡았다. 코에 닿는 꽃들 모두를 맡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여태껏 바람이 불어야만 나무의 꽃향내를 맡아왔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부터 그의 행동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인생을 달관한 자의 모습이었다. 세상을 삐딱하게만 보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노(路) 선생은 날씨 예측도 AI 수준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어느 날, 투명 비닐우산을 들고 있길래 누가 버린 걸 주운 줄 알았다.
‘오, 득템 했군!’ 그의 재산 증식에 보는 내가 다 기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소나기였다. 오랜 길바닥 생활로 날씨에 대해 예지력이 생긴 모양이었다.
작년 여름 긴 장마와 폭우로 온 국민이 홍수 걱정을 할 때 난 흙탕물에 잠긴 한강을 보며 노(路) 선생 걱정을 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서울역으로 돌아갔을까?
그가 한강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가 없는 한강이 상상이 안됐다.
그로 인해 한강에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하루빨리 한강이 제 모습을 찾아 그를 다시 보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날 때까지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노(路) 선생을 다시 본 건 올봄이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하마터면 “안녕하세요!”하고 알은체를 할 뻔했다.
그는 한결 말끔해진 모습이었다. 철수세미 같던 장발은 C컬의 단발로, 검은색 점퍼는 카키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디 쉼터에라도 있다 나온 듯 보였다.
그는 한참 동안 강물을 보며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사람의 좋고 나쁨은 그 사람의 행색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함이 옳다.
하지만 생각만 그렇게 할 뿐이다. 난 사람을 만나면 그가 입은 옷과 그가 든 가방에 눈이 먼저 간다.
영락없는 속물이다. 지 꼬라지 우스운 줄은 모르고서 말이다.
이 글을 처음 쓴 건 3개월 전이다. 나는 노(路) 선생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를 보면서 비록 이룬 것 하나 없지만 나도 이만하면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자화자찬했다.
그걸 깨닫게 해 준 노(路) 선생이 고마웠다.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길 바랐다.
하지만 오늘 쓰레기통을 뒤지는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며칠을 굶었는지 초점이 없는 눈빛이었다. ‘아, 이런!’ 배신감마저 들었다.
나의 영웅은 온 데 간 데 없고 배고픈 부랑자만 있었다.
그래도 배고파 빵을 훔친 장발장에 비하면 양심적이라며 뒤돌아섰지만 기분이 씁쓸했다.
먹방과 쿡방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누군가는 굶주리고 있다니 불공평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