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작년 11월, 친구의 등쌀(?)에 못 이겨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가 2년 전에도 같이 하자고 했는데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2종 운전면허증만큼이나 많은 것 같아서 안 한다고 했다가 그래도 나중에 뭘 하게 되든 자격증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은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수해야 할 총 17개 과목 중 사회복지현장실습 과목은 사회복지기관에서 80시간 동안 직접 실습을 해야 돼서 지난 2주간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을 했다.
실습을 나가기 전까지 만해도 나름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겠거니, 했는데 막상 가보니 애들은 내게 관심이 1도 없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여자애들은 첫날부터 내 동료 실습생인 스물두 살 언니에게 “쌤, 쌤” 하며 착 달라붙었다. 이 언니도 통이 어찌나 큰지 자신의 최신형 패드와 아이폰을 갖고 놀라고 선뜻 내주었다. 심지어 애들이 아이폰 액정필름에 살짝 금 갔다고 떼어내는데도 가만있더라. 동료 실습생은 아이들과 패드로 그림 그리고, 넷플릭스 검색하며 애니메이션 얘기하고 스노우 어플 사진 찍고, 인스타 팔로우하고 그렇게 라포를 형성하는데 난 그 옆에서 엿듣고만 있었다. 애들이 동료 실습생을 어찌나 좋아라 하던지 당최 끼어들 수도 끼여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 나름의 역할을 찾고자 영어단어 외우는 초딩 남자애 옆에 붙어 앉아 쪽팔림을 무릅쓰고 된장 발음 구사하며 학습지도를 했다. 그래도 내 된장 발음이 나름 도움이 됐던지 그다음 날 영어단어 외울 때도 날 찾아오더라. 어찌나 고마운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센터에는 틱 증상이 있는 I가 있었다. 실습 첫날 I가 ‘킁킁’하고 내는 콧소리에 놀라 기침하는 줄 알고 코로나를 의심했었다.
'애가 저렇게 기침을 하는데 사회복지사쌤들은 왜 가만 계시지? 코로나 검사받으러 가야 되는 거 아냐?'
쥐뿔도 모르면서 혼자 흥분했었다. 나중에 틱 증상인 걸 알아채고ㅣ에게 너무 미안했다.
눈앞에서 틱 증상을 직접 보니 좀 당황스러웠다. I는 ‘킁킁’ 소리를 낼 때마다 머리까지 흔들었다. TV에서 보는 거와 달리 몇 배로 힘들어 보였다. I가 안쓰러웠다. 언제부터 틱 증상이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회복지사쌤이 I에게 약은 잘 먹고 있냐고 물었다. 약까지 먹는 걸 보면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틱 증상 때문인지 I는 늘 혼자였다. 센터에서 누구랑 같이 노는 걸 볼 수 없었다. 같이 센터를 다니는 친동생 하고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라도 말을 붙여볼까 했는데 나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서로 뻘쭘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실습 삼일 째 되던 날 동료 실습생 언니와 아이들이 ‘다빈치 코드‘를 하고 있었다. 난 그들 노는 옆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척하며 구경을 했다. 지들끼리 어찌나 재밌게 노는지 쫌 꼴 보기 싫었다.
I가 A룸에서 나오더니 내 앞 책상에 앉았다. I는 이면지에 뭔가를 그리며 보드 게임하는 무리들을 힐끗거렸다. I도 하고 싶은 눈치였다. 난 동료 실습생 언니에게 I도 끼워주라고 하려다 누가 누굴 챙기나 싶어 그만두고 대신 말을 걸었다.
“와, 너 그림 잘 그린다.”
빈말이었다. I는 중1인데 꼭 초딩이 그린 것 같았다. I는 내 거짓 칭찬에 좋아라 했다.
“뭐 그린 거야?”
“○○○이요.”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게임 캐릭터인 모양이었다. '겜알못' 티 날까 봐 잘 그린다는 말만 연신 해댔다.
"피아노를 더 잘 쳐요!"
I의 반응에 순간 당황했다. '오, 자기 자랑도 할 줄 이네...'
“그래? 피아노 배웠어?”
“아니요. 지난번에 센터에서 대학생 멘토한테 3개월 배웠어요.”
센터에서 피아노도 가르쳐주다니, 나 때는 이런데 없었는데... 지금이라도 다닐 수 있으면 다니고 싶었다.
“여기 피아노도 있어?”
“네. A룸에 디지털 피아노 있어요...”
I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A룸으로 갔다.
‘저건 따라오라는 제스츄어?’
I의 행동 언어에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뒤따라갔다.
내가 들어가자 I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곡인지도 모르면서 ‘진짜 잘 친다.'라고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거짓 칭찬을 해서라도 I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락을 좋아하는 내가 듣기엔 너무 지루했다.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이거 혹시 10분 넘어가는 클래식 아냐?'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나가고 싶은 욕망이 더 커졌다. I는 이런 내 속마음도 모른 채 열정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때 A룸에 다른 아이가 들어왔다. 이때다 싶어 화장실로 도망쳤다. I에게 미안하면서도 방금 들어간 아이와 재밌게 놀기를 바랐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다목적실에 나와 있는 I를 발견했다. I는 책장을 기웃거리다 게시판 메모지를 읽다가 다시 A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목적실로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다시 '킁킁' 콧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탓만 같아 너무 미안했다.
'그냥 계속 A룸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쳐보라고 할걸. 그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결국 I는 집으로 돌아갔다. 난 귀가하는 I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잘 가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언제부터 I에게 틱 증상이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옆에서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 줬더라면 지금보단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이 I의 틱 증상을 개선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그날 이후 난 I와 다시 말할 기회가 없었다. 난 미안함에 I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러다 이 주간의 실습이 끝나버렸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난 I가 진짜 잘 자랐으면 좋겠다.
인간은 누구나 관종이다. 누구나 칭찬받고 싶고 우쭐하고 싶고 남보다 돋보이고 싶다. 그렇다고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게 인싸 급일 필요는 없다. 가짜 관심도 차고 넘치는 시대니까...
비록 내 인스타 방문객이 빵 이어도 내 브런치 글에 달린 좋아요, 가 제로여도 표현하지 않는 무언의 독자가 있다면 '나는 행복한 아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