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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Oct 01. 2021

참을 수 없는 관계의 서글픔

#8.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난 늘 인간관계가 어렵다. 나이를 먹어도 낯가리는 성격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한 두 번 보고 말 것 같은 사람에게는 내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는다. 몇십 년 지기 친구도 잘 못 챙기는데 그냥 스쳐 지나갈 사람들까지 챙길 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난 '내 이야기' 하는 게 싫다. '내 이야기'는 내겐 상처다.  난 아직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창피하고 무능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런 이유로  한, 두 번 만난 사람이 내 개인 신상을  물으면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말하기 싫다는 투로 현재 백수고 결혼도 안 했노라 말하면  왜 여태 결혼도 안했냐, 그럼 뮐 먹고 사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참 눈치도 없지 싶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리 살면 안 된다고 지적질에, 빨리 노후대책 세우라고 훈수질까지 하면 정말 최악이다. 자기가 나 먹여 살릴 것도 아니면서 웬 참견이람.


지적질도 ‘급’이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25억짜리 집을 증여받아 사는 금수저가 빌라 전세 사는 흙수저에게 대출받아 집사라고 하는 건 조롱이나 다름없다. 흙수저가 집을 사지 못하는 데에는 ‘집’보다 더 급한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식에서도  흙수저 출신 슈퍼개미가 존경을 받는 게 나랑 같은 처지에서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을 만나면 참을 수 없다. 한 번은 수십 억대 부동산을 소유한 구두쇠가 오천 원짜리 한식뷔페를 자주 가는데 오백 원 올랐다고 투덜대길래 그 가격대의 맛있고 싼 밥집을 알려줬더니 그 인간 왈,

“너 싼 거 좋아하지? 사줄게, 나와!”

이러는 거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리. 바로 “아니, 난 싸고 맛있는 집을 좋아해.”라고 쏘아붙였지만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다. 요즘 오천 원짜리 밥집이 어딨다고 오백 원 올렸다고 투덜대나? 식당 주인은 땅 파서 장사하나? 그 오 천원도 아까우면 편의점 삼각 김밥이나 사 먹던가!

난 아무리 싸도 맛없으면 안 먹는다. 반대로 아무리 비싸도 내 입에 안 맞으면 안 먹는다. 난 ‘회’도 안 먹는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먹기 싫다. 설렁탕, 곰탕도 맹물에 고기가 빠진 것 같아 싫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란 책이 있다. 인간관계 좀 잘해볼까, 하고 수시로 들춰 보는데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 책의 결론은 이건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친절하고, 친절하고 계속 친절하라, 그럼 이익을 얻으리라!’

 책의 제목을 ‘사람을 이용하는 기술’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 때 한동네 살던 A가 있었다. 등, 하교 때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자연스레 친해졌는데 A는 나보다 먼저 친한 B가 있었다. A는 B랑 있으면 나랑 데면데면하다가도 B가 없을 때는 유독 친절했다.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서 들었는데 B가 A를 대하는 게 거의 스토커 수준이라고, A랑 말하고 있는 애가 있으면 교탁에 서서 째려볼 정도라고, 모르긴 몰라도 A가 B 때문에 골치 좀 아플 거라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반신반의했다. 여고시절 인기 있는 여자애는 보통 운동 잘하는 애들인데 A는 키 작고 뿔테 안경에  운동은 젬병이었다. 그런 A를  그렇게까지 좋아한다고? 도대체 B는 A의 어디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다가 A와 틀어질 일이 생겼다.  A가 대학입시 원서 내러 같이 가달라고 하길래 두, 서너 번 같이 갔더랬다. 그러다 내 원서 낼 때 A에게 같이 가달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뭘 부탁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나도 같이 가줬으니 A가 한 번쯤은 가주지 않을까 싶어서 연락을 했다. 하지만 A에게서 들은 대답은 B 원서 내는데 같이 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순간 기분이 너무 나빴다. 물론 나보다 먼저 B랑 약속한 걸 수도 있지만 그럴 거면 처음부터 B랑만 다니던가, 그동안 난 왜 부른 건데! 날 이용해 먹은 거 아닌가.

 

그 뒤로 난 A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딱히 연락할 일도 없었다. A도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다른 친구에게서 A가 내 안부를 묻더라는 말을 들었다. 날 보고 싶어 한다나, 뭐라나. 또 한 번 어이가 없었다. 그리 궁금하면 나한테 직접 전화해 물어볼 것이지, 누가 들으면 내가 전화도 못하게끔 철벽이라도 친 줄 알겠네. 지가 먼저 날 이용해 놓고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야!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평소 교류가 없으면 한 순간의 상황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난 안경을 안 쓰면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본다. 그래도 안경 쓰는 게 불편해 낮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자기를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고 오해를 자주 받는다. 이럴 땐 정말이지 어찌해야 할지 한숨부터 나온다.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쓰기 싫어도 안경을 써야 하나? 아님 나 눈 나빠서 사람 얼굴 못 알아본다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녀야 하나? 아예 카톡 프로필 문구에 적어 놀까? '안경 안 쓰면 얼굴 못 알아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아니, 내가 못 알아보면 지가 먼저 아는 척을 하면 될 것을...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기분 나빠하다니, 완전 ‘지 속 편한 세상’이다.     


난 가끔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요.”     



정말이지 성격도 지랄 맞고 보탬될 일 하나 없는 나에게 먼저 연락하고 챙겨주는 내 친구들이 너무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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