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뷰티월드와이드 시즌1의 기록
time to restart.
지난달 우리 팀이 함께 내린 결론이다. 첫번째 아이템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폭망하고, 두번째 아이템으로 피봇한 지 2년이 지났다.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다행히 두번째 아이템은 초기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가며 순항하고 있다. 이제 시스템 차원에서 새로운 매출 증대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금전적인 여유가 확보되었다. 그렇다. 다시 한번 움직일 시간이다. 지금까지의 과정과, 새로운 출발을 기록한다.
첫번째 사업 아이템은 꽤 도전적이었다. 2019년, 오랜 시간 꿈꿔왔던 나만의 사업을 시작할 때 나는 꽤나 혈기왕성했던 것만 같다. 사업기획은 그 포부가 대단했다. 사업개발은 꽤나 열정적이었다. 베트남에 몇 주씩 체류하면서, 외국인에게는 낯선 온갖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우리는 베트남의 높은 오프라인 결제 비중에 주목했다. 모바일 퍼스트 mobile-first 국가이면서도 온라인 결제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진, 정확히는 은행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가진 베트남의 독특한 문화에 주목했다. 베트남의 2018년 온라인 소매결제는 전체 소매결제의 3% 수준, 당시 한국은 40%에 육박했던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아니 그럼 인터넷 빅뱅 속에서 베트남 혼자 다른 길을 걷는다고?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사정이 있었다. 확실히 지역 소매점 retail 이 유통의 최뒷단을 꽉 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각 지역의 소매점들이 페이스북 기반의 단단하고 촘촘한 C2C 커머스를 갖고 있었다. 동네 카페 주인은 이웃 주민들에게 홍삼과 바디워시를 팔고 있었다.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스템을 배제하기 위해 민초들이 만들어 온 베트남의 오래된 문화였고, 한국의 브랜드들이 베트남에 들어가서 아무런 힘을 못쓰는 근본적인 이질성이었다.
우리는 지역 소매점을 공략해야겠다고, C2C에 바짝 붙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브랜드들이 베트남의 지역 소매점에 바로 입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생각했다. B2B 온라인 몰인데, 크로스보더를 근간으로 했다. 우리는 이걸 크로스보더 D2R; Cross boarder Direct-to-Retails 로 명명했다. 한국에서 제품을 입고하면, 베트남의 소매점이 주문해서 가져다가 팔아보는 시스템이다. 영세한 소매점이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도록 선판매-후정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급사이드와 수요사이드 모두가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위생허가, 행정, 통관, 풀필먼트, 결제까지 최대한 우리가 다 알아서 맡겠다고 했다. 근사했다.
우리는 피부과, 피부클리닉, 미용실, 카페 등 수개의 이니셜 파트너들, MVP를 검증했다. 점포당 주 70만원의 매출이 확인됐다. 판관비는 미미했다. 값싼 인건비와 렌트비는 베트남의 운영비용을 현저하게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수익성 검증법 중 [점포 수 X 점포당 이익] 에서 이익이 검증됐다. 점포 수를 늘리기는 대단히 자신있었다. 이거다. 이 아이템으로 가자. 우리는 6개월의 사업개발 끝에 마침내 아이템을 확정했다.
2020년 1월,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투자를 받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케일업을 위해서, 투자는 필수적이다. 사실 굳이 시드 투자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리즈C까지 step by step 으로 진행하려면 이들이 필요하다. 투자자가 다음 라운드 투자자와의 만남을 주선해줄 테니까. 지금 우리 단계에서는 엑셀러레이터들을 만나 시드를 받고 시작하는 게 맞았다. 설날을 반납하고 피치덱 pitch-deck 을 준비했다. 수년동안 밥 먹듯이 썼던 기획서다. 시드 투자에 맞게 디테일함을 줄이고 스토리텔링을 부각하여 첫번째 피치덱을 완성했다.
2020년 2월, 첫번째 피치에서 바로 투자를 받았다. 투자사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컴퍼니비였다. 감사하게도 당시 이사셨던 배성환 이사님께서는 현장에서 발로 뛰는 우리들을 높게 평가해주셨다. yay.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이제 아이템도, 피치도 자신만만했다. 6개월 뒤 Pre-A를 진행해야 하니 미리 준비해주십사 부탁도 드렸다. 딜 과정에서 중국 우한에서 폐렴이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지나가는 이벤트 정도라고 생각했다. 베트남으로 바로 다시 돌아갔다.
2020년 3월, 호치민에서 6층 건물을 통으로 임차했다. 꽤 비싸지만,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D2R을 위한 쇼룸이자, 풀필먼트 센터가 될 곳이었다. 사무실이면서 베트남 법인장과, 나, 석주대표의 숙소이기도 했다. 꿈에 부풀었다. 근사한 빌딩이 예상됐다. KBWW 타워라고 명명하고, 들뜬 마음으로 사업을 준비했다. 코로나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지만, 잘 마무리되기만을 빌었고, 우리 사업은 우리 사업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2020년 4월, 호치민은 멈췄다. 셧다운과 락다운이 진행됐고, 오토바이 경적음으로 가득 찼던 도로는 텅텅 비었다. 이니셜 파트너였던 소매점 친구들은 연락이 끊겼고, 몇몇은 혹시 돈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묻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경제 수도 호치민은 완전히 문을 닫았다. 지역 소매점, 그러니까 오프라인 점포들은 문이 열릴 기미가 아예,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코로나는 언젠가 지나가겠지만, 우리의 현금은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케이뷰티월드와이드 첫번째 아이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우리의 D2R 모델은 지역 소매점이 영업을 할 때를 전제로 했다. 지역 소매점이 모두 문을 닫고, 정상적인 물류가 불가능해지고, 오프라인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었으니, 우리 사업은 끝난 거였다. 누군가 오프라인 경제가 멈췄으니, 오히려 소매점에게는 우리 같은 온라인 기반의 B2B 커머스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그건 당시 베트남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외출과 통행 자체를 허가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경제활동 자체가 굉장히 억제된다. 당시에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활동만 가능했다. 우리가 걸어가던 길은 완전히 막혔다.
이제 우리에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time to pivot, to survive.
ps.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고 싶지만 매번 실패했던 기억이 있다.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다 그 피드의 번잡함에 떠났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기다 그 텍스트의 힘이 미약함이 아쉬워 떠났고,
티스토리에 글을 남기다 그 고독함(?)이 아쉬워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브런치 작가로 승인받아,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해 본다.
부디 이번에는 꾸준함을 달성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