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잔소리

30대가 되어 20대에게 보내는

by 오솔

‘공감‘이 중요한 시대에 ‘충고‘나 ’조언‘은 썩 좋은 어감은 아니다. 잔소리는 소위 꼰대들의 언어이고, 본인의 생각과 태도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던 20대 시절엔 꼰대, 잔소리라면 딱 질색이었다. 그런 내가 30대가 되고 아기엄마가 되어보니 누군가의 잔소리를 곱씹어보고, 그 잔소리를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어졌다.


임신을 했을 때였다. 불룩해진 배를 부여잡고 뒤뚱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대학생쯤 보이는 한 여성분이 지나갔다. 짧은 치마에 높은 힐까지 신은 것을 보니 꽤나 신경써서 차려입은 모양이었다. 그 옆에 역시나 예쁘게 차려입은 친구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꺄르르 웃으며 횡단보도를 걸어갔다. 그 순간 그 모습이 참 반짝거리고 예뻐보였다. 같은 여성으로서 예쁜 여성을 보면 동경과 부러움이 일면서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기도 했는데, 그 때는 달랐다. 마냥 예뻤고 그 자체로 왠지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20대 대학원생이었던 나를 바라보며 40대 대학원생인 동기샘이 하던 얘기가 떠올랐다. “다은샘은 지금 젊은게 얼마나 귀하고 예쁜건지 모르지. 마냥 예뻐. 그래서 부럽기도 하고. 내가 다은샘 나이로 다시 돌아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니까 이 시간을 충분히 즐겨.“


그 때는 그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꼰대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나이이든, 현재는 마냥 좋지만은 않고 힘들고 아프기도 하니까. 지금 나는 젊어서 얼마나 힘든데 왜 사람들은 젊은 것을 부러워할까. 얼른 더 나이를 먹고 삶에 대해 좀 초연해지고 싶었다.


20대의 나는 젊음이 벅찼다. 그동안 정규교육과정 안에서 잘 억누르고 살아왔던 나자신이 분출되면서 혼란스러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채 사회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관계에도 서툴렀고,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도 몰랐다. 의존과 독립, 우울과 분노의 파도를 타면서 불안정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랬던 내가 아줌마가 되고나니, 20대가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다고 생각이 든다. 카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을 보면 참 멋져보인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 카페에서 밤샘공부를 하던 내가 떠오른다. 길에서 연인끼리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도 사랑스럽다. 여름에 무더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손을 꼭 잡고 버스를 3번 환승하면서 데이트를 다니던 젊은 날의 사랑이 아른거린다. 지금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열정과 순수함. 그 때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서툴고 찌질했기에 날것 그대로의 예쁨이었다. 혼란스러운 자기탐구가 있었기에 지금은 조금이나마 나를 알고 편안해졌다. 무엇보다도 4-50대의 누군가에겐 지금의 내 시절이 예뻐보일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30대로 살아가는 힘듦안에도 아름다움이 있으리라 믿는다.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깔끔하게 인정하면서 20대의 누군가에게, 그리고 20대 시절의 나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한 계절이 지나고 다른 계절이 오듯이, 좋은 것도 힘든 것도 다 지나간다고. 흔들리며 피는 꽃은 개뿔! 외치고 싶겠지만, 솔직히 그때는 흔들려야 아름답다고. 무엇보다 흔들리느라 너무 애쓰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잔소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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