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난 뒤 되새겨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처음 뒤집기를 하던 날, 몸을 꼬물거리며 발을 뻥뻥 차대는 순간, 온 얼굴에 힘을 주며 응아를 싸고, 조그만 손가락으로 책을 넘긴다. 이전 같으면 별다른 감흥이 없을 인간의 움직임이 아이를 키우면서 놀라운 순간들이 된다.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 올리듯, 때로는 계단을 두세 칸을 한 번에 뛰어오르듯 성장이라는 것을 해나가는 아이를 보면 기특하면서도 애틋하고 아쉬운 온갖 마음들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아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처음 이 아이와 눈을 맞추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날, 날씨는 어땠더라. 한여름이 되어가는 길목에 있는 듯 거센 무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했었다. 자연분만을 원했던 터라 며칠 째 자연진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도분만 날짜를 잡아놓았는데, 자연진통이 오지 않으면 자연분만으로 아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건 또 싫어서 억지로 아가에게 빨리 나와달라고 재촉하던 성격 급한 엄마였다. 진통오기 좋은 자세들을 해보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짐볼도 타면서 아기가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나와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왠지 모를 통증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새벽으로 넘어가자 진통은 점점 심해졌고 이게 진짜 진통인지 가진통인지도 헷갈렸기에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자궁문이 아직 덜 열려서 좀 더 있다 오셔야 할 것 같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그때부터 진짜 진통이 시작되었다.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찾아오던 엄청난 고통. 허리가 끊어질 듯, 배가 부서질 듯 한 설명 못할 고통들이 몇 분간 이어졌다. 그러다 이내 진통이 가면 멀쩡하게 괜찮아졌다. 이러한 주기가 반복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아가와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우선 호흡을 했다. 임신하던 순간부터 몸의 평화를 찾고 싶어서 연습한 호흡이었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준비가 됐어 아가야. 너도 준비가 되면 이제 나오렴.” 나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더 큰 고통과 함께 양수가 터졌고 즉시 병원으로 갔다. 아가도 나를 닮아 마음이 급했는지, 엄마의 급한 마음을 배려해 준 것인지, 출산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분만준비가 시작되었다. 나는 당황해서 간호사님께 무통주사는 안 하는지, 관장은 안하는지 애원하듯 물었다. 간호사님은 지금 그럴시간이 없고 분만 힘주기를 시작해야한다고 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너무 아파서 괴성을 지르는 와중에, 관장을 못했는데 출산하면서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수치심에 눈앞이 흐려졌다. 인간의 수치심은 이렇게 강력한가 싶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배와 질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아가도 빨리 나오려고 애쓰고 있었나보다.
몇 번의 힘주기 끝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감동의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그와중에 ‘우와 신기하다.’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남편과 그때서야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이전까지의 정신없는 기억들은 어디로 갔는지 서로를 차분하게 바라봤다. 뭔가 울컥했다. 탯줄을 자르고 아이를 내 품 옆에 놓아주었다. 너무 작고 너무 예뻤다. 초음파 사진이 못생겨서 내새끼인데 내가 안이뻐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한껏 구겨진 얼굴로 울어대다가 나를 보고 눈을 겨우 뜬 핏덩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떠한 말로도 어떠한 단어로도 설명이 어려운 순간. 단순히 행복하다라는 말로도 설명이 안되는 순간. 하얀 백지같았던 내 삶에 다채로운 그림들이 그려졌던 순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라 유영하던 나에게 곧은 길하나가 놓여진 순간이다. 한번 제대로 안아보고 싶었는데, 너도 나오느라 고생했다고 안아주고 싶었는데 아가는 하얀 면보에 쌓여 신생아실로 갔다.
새벽공기가 지나가고 해가 떴다. 후처치를 마치고 나도 병실로 왔다. 뱃속의 무겁던 무언가가 빠져나가니 허기가 졌다. 아침식사로 미역국이 나왔다. 밥까지 말아서 한그릇을 해치웠다. 살면서 그때보다 미역국을 맛있게 먹은 적은 없을 것이다. 밥을 한숱갈씩 뜨면서 그제서야 내 삶의 무언가가 뒤집혔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나는 없다. 이제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지. 우리 엄마도 이랬을까. 시큰한 무언가가 올라올 때마다 국물을 들이켰다. 병실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은 뜨거웠다.
그날로부터 1년이 다 되어간다. 뜨거웠던 출산의 현장을 보내고 난 후, 아이와 보내는 일상은 소소하고 따뜻하다. 요즘 아이는 한창 걷기 연습을 하고 있는데, 옹골찬 두 다리로 집안을 신나게 활보하는게 너무 사랑스럽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걸음마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고 있는 아들과 함께 나도 다시 뜨거움을 되찾을 필요가 있겠다고. 고통과 인내를 딛고 섰던 출산처럼, 나만의 큰 장벽을 뛰어넘는 뜨거운 노력이 또한번 필요할 것 같다. 아이를 새로운 세상에 내놓던 그순간처럼, 더 넓은 엄마가 되어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