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난 후 부부사이란
얼마 전 남편에게 받은 꽃다발이 시들었다.
이 꽃다발이라 하면, 남편과의 한바탕 다툼 끝에 화해와 사과의 의미로 남편이 준 (사실 반강제로 받아낸) 것이다.
결혼 전 주변 친구들에게 남편을 처음 소개할 때, 친구들은 남편과 내가 인상이 닮았다고 했다. 눈빛, 표정, 말투 같은 것들. 그런게 둘이 비슷하다고.
그런데 사실 우리 둘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운동과 야구,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남편과 책읽고 글쓰고 요가하는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 영화 취향도 달라서 함께보고 둘다 재밌다고 한 영화는 별로 없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걸 싫어하고 변화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일관되고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남편. 여행을 가거나 여가생활을 할 때, 드라마를 정주행할 때도 우리 둘은 흥미있어 하는 게 다르다. 그나마 요즘 같이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은 <나는솔로> 정도?
다른 만큼 부딪히는 일이 많고, 육아에서도 충돌이 있다. 사실 부부라면 누구나 싸우면서 지낼 것이지만, 결혼 후에 크게 한바탕 싸우고 나면 연애 때와는 또다른 차원의 감정이 휘몰아쳐 힘이 든다.
그런 갈등의 시간이 지나가고 안정된 시기가 오고나면, 우리는 함께 아기를 보고 일상을 살아간다. 결혼 생활은 이런 파도타기의 연속 같다.
시든 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처음 연애할 때의 우리가 떠오른다.
연애 초반 남편이 내 생일날 처음 준 빨간 장미 한다발. 서로에게 열정적이고 서로가 전부가 되기도 한 시간들이 아니었나. 그 때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힘들고, 더 함께하고 싶어 아프고, 질투심으로 괴롭기도 했었다.
우리의 사랑은 남들과 달리 특별한 것 같고, 영원할 것만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삶의 주인공이 되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우리가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었다. 그런 강렬한 감정들로는 가정을 꾸려갈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 전세집을 알아봐야 하고, 물가가 오르면 생활비를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 육아용품을 알아보고, 아기를 먹이고 재워야 한다. 명절에 양가 부모님들의 선물을 고르고, 종종 손주의 재롱도 찍어서 보내드려야 한다.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고, 한 끼 한끼 너무 모자라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챙겨먹어야 한다. 생계를 위해 언제나 출근을 해야하고, 출퇴근 없는 육아도 해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그때와는 달라져가는 우리를 종종 발견한다. 내가 처음 반했던 그 사람의 넓은 등은 말라서 작아져있고, 풍성한 머릿결을 자랑하던 나는 얇아진 머리카락과 산후탈모로 숭덩한 앞머리를 자랑중이다. (그 외에도 몇 년새 변한 것은 많지만 슬프니 일일히 나열하진 않겠다.)
우리는 치열한 삶의 전투를 함께 헤쳐나가는 전우와도 같고, 최장기 조별과제의 미션을 함께 수행해가는 팀플의 팀원과도 같다. 그래서 뜨거울 틈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질투할 틈도, 더 함께하고 싶어 안달날 틈도 없다.
예전 같았으면 시들고 말라버린 꽃을 보며 아쉬워하고 싱싱하던 꽃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든 꽃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것대로 예뻤다. 이전과 다른 듯 하면서도 여전히 꽃잎 하나하나가 남아있고, 그것대로 빈티지하면서 은은한 색감과 운치있는 매력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나는 알고 있다. 열심히 운동해서 키운 그의 넓은 어깨보다 지금의 마른 몸이 되기까지가 그에게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매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나가던 남편. 임신과 출산을 거듭한 아내, 새로 태어난 아가까지, 자신이 꾸린 가정을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책임의 무게가 있었을거라는 걸.
나의 산후탈모는 풍성한 머릿결에 있던 영양분을 소중한 우리 아가에게 나눠주는 희생이었다는 걸. 그리고 매 순간 나는 아가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주면서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서로 반짝반짝 빛나던 우리가 시들고 있다. 책임과 희생이란 것을 배워가면서 말이다. 상대에게 더 사랑받고 싶어서 싸우던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애쓰고 견뎌내고 희생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난 그와 내가 시들어가는 요즘도 좋다. 그리고 이게 더 사랑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우리는 점점 시들고 저물어가겠지만, 우리의 시듦 안에서 소중한 사랑둥이 아들이 더 활짝 만개해갈 수 있길 바란다.